다크 워터스-거대기업 횡포에 맞선 변호사의 끈질긴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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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크 워터스

원제 Dark Waters

제작연도 2019년

제작국 미국

장르 드라마

감독 토드 헤인즈

주연 마크 러팔로, 앤 해서웨이, 팀 로빈스 외

상영시간 127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0년 3월 11일

㈜이수C&E/CJ엔터테인먼트

㈜이수C&E/CJ엔터테인먼트

아주 어린 시절, 동산에서 뛰놀던 기억이 있다. 붉은 흙더미가 대부분이었지만 군데군데 풀이 우거지고 나무도 있던. 그곳은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공간이 되었다. 8차선 도로가 뚫렸고, 야트막한 야산이 통째로 사라졌다. 롭 빌럿은 잘나가던 기업전문 로펌 변호사다. 어느 날 두 노인이 그를 찾아왔다. 한 기업의 환경파괴를 고발하겠다며 자신들이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산더미만큼 들고 왔다. 롭은 “다른 변호사를 소개해주겠다”며 자리를 피하려 한다. 그의 전공, 기업전문은 주로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등을 돌린 롭에게 그의 친할머니 소개로 왔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주인공. 실제 마을을 방문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피해가 발생한 농장은 롭 자신이 어린 시절, 소중한 체험을 간직하고 있는 농장이었다.

10년 넘게 계속된 환경소송

사건을 맡는 순간, 그의 운명도 꼬인다. 화학회사 듀폰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업계에서 퇴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통한 것은 이 사건을 대하는 로펌의 자세다. 듀폰이 자신의 고객사가 아니기도 했지만, 로펌 대표는 듀폰을 “회사를 인격체로 간주해온 자신의 철학에선 인정할 수 없는 악당”이라며 롭의 손을 들어준다. 그러나 거대기업에 맞선 소송은 쉽지 않다. 집단 소송에 앞장선 마을 주민도 다른 마을 주민의 눈총을 받는다. 듀폰은 이미 마을 사람들 대다수를 고용하고 있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듀폰 회장을 상대로 심문을 마치고 나온 롭이 자신의 차에 혹시 폭탄이 설치되어 있을까 봐 시동을 켜는 것을 망설일 정도다. 무엇보다 1998년에 시작한 소송은 세월이 흘러 2012년까지 계속된다. 어찌 괴로운 사연이 없으랴.

듀폰이 은폐한 것은 그들이 생산하는 물질, 테프론의 인체 유해성이다. 실제 인물 롭이 밝혀낸 것에 따르면 듀폰은 이미 1950년대부터 자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비밀실험을 통해 유해성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실험결과는 은폐되었다. 할머니가 살던 마을 인근의 야산에는 이 유해 합성물이 드럼통에 폐기되어 매립되었는데, 시간이 흘러 지하수와 냇물에 스며들었다. 테프론이 불소계 화합물이라 중독 증상은 이가 검게 착색되는 것이다. 처음에 롭을 찾아온 노인들의 소가 그랬고, 나중엔 씩 웃는 동네 아이들의 이도 검게 착색되어 있었다.

사전에 영화에 대한 정보는 거의 검토하지 않은 편이라, 영화 포스터나 전단을 보면 환경고발 다큐멘터리인가 싶었다. 그러나 극영화다. 굳이 장르를 분류하자면 스릴러 미스터리물 정도? 비슷하게 집단 고발 사례를 다룬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에린 브로코비치>(2000) 같은 영화를 떠올리면 되겠다. 자신의 커리어를 내던지고 환경전문 변호사로 거듭난 롭 빌럿 변호사 역으로는 우리에겐 어벤져스 시리즈의 <헐크> 부르스 배너 박사로 각인이 된 마크 러팔로가 열연하고 있다. 그의 부인 역으로는 앤 해서웨이가, 테프트 로펌의 토마스 터프 대표 역으로는 팀 로빈스가 나오고 있다. 1급 배우들이다. 연기력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을 인물이다.

사회학적 훈련이 된 사람이라면 올슨의 집합행동 곡선이 떠오를 것이다. 사회변화를 위한 조직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가치 내지는 공공의 이익은 끊임없이 의심의 대상이 된다. 결국 ‘저것도 다 명예욕이나 사욕 때문 아닌가, 알고 보니 우리는 그들에게 속았다’와 같은 의심을 뚫고 나가야 한다. 여기에 무임승차자를 해결하는 것은 집합행동 내지 동원에서 고질적인 문제다.

1급 배우들 연기대결도 볼거리

영화에 묘사된 여러 갈등, 예를 들어 소송이 장기화되면서 회사의 생존을 위해 이익을 내야 하는 로펌과 개인의 갈등 그리고 기약 없는 싸움에 골몰하는 남편이 내팽개친 가정사와 육아스트레스에서 터져 나오는 부부갈등, 서로 반목하는 주민 사이의 갈등과 같은 문제를 조정하는 일이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에 묘사된 것은 일부일 것이다. 극장 좌석에 앉은 구경꾼인 우리로서는 막연하게 짐작만 할 수밖에.

마찬가지로, 영화는 주인공 롭의 심리에 주도면밀하게 포커싱하는데, 반대편에 맞선 악의 실체, 즉 듀폰사는 어떤 논리로 수십 년간 소송을 끌었는지 역시 어렴풋이 넘겨짚을 수밖에 없다. 뭔가 도수 안 맞은 안경을 쓰고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벨벳 골드마인>(1998), <파 프롬 헤븐>(2003)의 감독 토드 헤인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는 당연히 탁월하다. 추천할 만한 영화다. 듀폰사가 환경오염을 일으킨 동네가 웨스트버지니아 파커스버그라는 설명을 듣고 존 덴버의 노래 <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떠올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노래가 영화 중간에 나온다. 황폐해진 동네 모습과 오버랩되는 존 덴버의 노래 가사가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테프론 인체 유해성 논란의 현실

테프론의 정식 이름은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olytetrafluoroethylene·PTFE)’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테프론은 듀폰사의 상품명이다. 영화를 보면 빌은 듀폰사와 미국 환경관리국의 문서에서 암호처럼 사용되는 PFOA가 무슨 말인지 물어보는데, 당시엔 인터넷 검색으로도 안 나오고 주위에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PFOA는 퍼플루오로옥탄산염으로, 테프론이 가열되면 나오는 물질이다. 문제는 이 PFOA의 독성이다.

롭 빌럿 변호사(왼쪽)가 영화 <다크 워터스>에서 자신의 배역을 맡은 마크 러팔로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 유니버셜스튜디오 캐나다 페이스북

롭 빌럿 변호사(왼쪽)가 영화 <다크 워터스>에서 자신의 배역을 맡은 마크 러팔로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 유니버셜스튜디오 캐나다 페이스북


이 물질은 동물실험에서 기형·성적 미성숙·간 독성 등을 유발했으며, 실제 사람에게도 직접 노출 시 폐부종·호흡기 질환 등을 야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듀폰의 내부 비밀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실험결과에 따르면 암·기형 등을 유발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테프론이라는 것, 다 아는 물질 아닌가.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프라이팬에 코팅되어 있는 물질이다.

롭의 소송과 폭로를 통해 테프론의 유해성이 알려진 것이 2000년대 중반쯤이다. 영화에서는 파커스버그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 결과까지 롭이 받아보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찾아보니 이 결과는 아직 학계의 공인을 받진 못한 모양이다. 다시 말해 인체 유해 가능성은 아직 공식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아마 그것도 여전히 거대 다국적 화학기업으로 현존하는 듀폰의 로비력 때문일 수도 있다. 영화의 말미에 덧붙여진 자막에 따르면, 이미 전 세계 인류의 99%의 체내에서 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영구적인 화학물질, 테프론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책임져야 할 누군가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암 유발 등 인체 유해성의 상관관계는 이미 밝혀진 이상, 가급적 테프론 코팅 프라이팬은 피하는 게 좋을 듯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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