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았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영국의 인기 연애 서바이벌 프로그램 <러브 아일랜드>의 진행자였던 캐롤라인 플랙(40)이 2월 1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플랙은 인기쇼 진행자로서뿐만 아니라 해리 왕자, 인기 팝가수 해리 스타일스와의 연애로 자주 타블로이드지 1면을 장식하곤 했다. 플랙의 극단적인 선택은 연인이었던 테니스 스타 루이스 버튼을 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던 중 나온 것이어서 더욱 이목을 끌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른 셈이다.

영국의 인기 연애 서바이벌 프로그램 <러브 아일랜드> 진행자 캐롤라인 플랙의 생전 방송 모습. / ITV 화면캡처

영국의 인기 연애 서바이벌 프로그램 <러브 아일랜드> 진행자 캐롤라인 플랙의 생전 방송 모습. / ITV 화면캡처

많은 사람이 궁금해했던 플랙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망 몇 주 전 오랫동안 신경쇠약을 겪고 있다고 밝힌 소셜미디어 게시물이 가족에 의해 공개됐다. 플랙은 지난해 말 폭행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뒤 연인 버튼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이 각종 타블로이드지에 낱낱이 공개되고, 결국 <러브 아일랜드>에서 하차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런 사실이 속속들이 알려지면서 타블로이드지의 저열한 보도행태가 플랙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았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연예인과 주변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해칠 수 있는 기사를 신문사들이 내보내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자는 온라인 청원에 2월 17일 현재 40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한 네티즌은 트위터에 플랙의 이름에 해시태그를 달고 “영국 언론은 우리 사회 부도덕의 소굴이다”라고 비난했다. 정치인들도 비난 행렬에 가세했다. 유력한 노동당 차기 대표 후보인 케어 스타머 의원은 “언론도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언론이 부정적인 소셜미디어 대화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타블로이드지들은 재빨리 대응에 나섰다. 불매운동의 표적이 되고 있는 <더선>은 플랙 사망 소식에 7개 면을 할애했다. 1면은 플랙을 재판에 회부한 검찰의 허술한 조사를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플랙에게 불리한 일방적인 주장을 상세히 소개하고, “괴력의 캐롤라인”이라며 그의 폭행을 기정사실화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타블로이드지에 대한 비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플랙 사망 이전 가장 최근에는 해리 왕자와 부인 메건 마클이 영국 타블로이드지의 도를 넘는 사생활 침해를 문제 삼았다. 사생활 노출 사진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도 경고했다.

하지만 미디어 종사자 혹은 역사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타블로이드지로부터 사생활을 보호하려는 캠페인이 성공하리라고 보지 않는다. 유명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누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가디언> 칼럼니스트 로이 그린슬레이드는 “대중은 일이 잘못되면 언론에 화살을 돌려 모두 언론의 잘못이라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역사가 아드리안 빙햄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1930년대 영국 신문의 특종경쟁이 격화되면서 유명인들의 사생활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당시 기자들은 무슨 일이든 했을 것이라면서 “아마 그때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그들도 스마트폰을 해킹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결국 대중의 관심과 그를 충족시키려는 행동들이 제2, 제3의 플랙 사건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효재 국제부 기자 mann6161@kyunghyang.com>

해외문화 산책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