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운동의 추억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20년 전 일입니다. 한 곡의 가요가 장안의 화제를 몰고 왔습니다. ‘바꿔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바꿔 바꿔 거짓은 다 바꿔/ 바꿔 바꿔 세상을 다 바꿔….’

[편집실에서]낙선운동의 추억

가수 이정현이 부른 <바꿔>라는 노래였습니다. 자그만 체구에서 뿜어내는 열정적인 창법도 인상적이었지만 ‘모든 걸 바꾸라’는 가사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습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가 중심이 돼 전개한 낙천·낙선운동은 그해 4월 13일 치러진 16대 총선의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전 해에 발표한 <바꿔>라는 노래가 낙천·낙선운동과 맞물려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을 퇴출하고 정치판을 새로운 얼굴로 바꾸자는 시민운동은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정치에 대한 불신에 더해 반민주적인 국회의 행태에 유권자들은 분노했습니다. 이전까지 ‘공정선거 감시’를 주로 펼쳐오던 시민단체들은 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낙천·낙선운동이었습니다.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 따라서 유권자 스스로가 나서 정치를 개혁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시민단체가 발 벗고 나서게 된 것입니다. 참여연대가 중심이 된 총선시민연대는 부패행위, 선거법 위반, 반인권 전력, 불성실한 의정활동 등으로 낙인찍힌 부적격 후보가 총선에 나설 경우, 이들을 시민의 힘으로 심판하자고 했습니다. 총선시민연대가 지목한 86명의 낙선대상자 중 59명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적지 않은 성과였습니다. 하지만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한 지도부 30여 명은 이후 선거법 위반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일부 대표자들은 대법원에서 벌금형이 확정됐습니다.

2020년 21대 총선을 불과 두 달 남짓 앞둔 현재 각 정당은 새로운 인물 영입과 공천 준비로 분주합니다. 이에 발맞춰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도 서서히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총선은 결이 좀 다릅니다. 여러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총선시민연대는 구성되지 않고, 시민단체별로 ‘미투’나 ‘반탈핵 가짜뉴스’ 등 특정 주제를 적용해 낙천·낙선명단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2000년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한 참여연대는 올 총선에서 한 발 비켜 있겠다는 입장입니다. 대신 경실련이 ‘친재벌 법안 입안’, ‘부동산 투기’ 등을 한 인사를 표적 삼아 낙천·낙선운동을 벌인다는 계획입니다. 그동안 진보시민단체 중심의 낙천·낙선운동이 이념적 친소관계에 따라 특정 정파에 유리한 방향으로 갔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한 갈래인 낙천·낙선운동이 의미 있는 행동이란 점은 분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 호응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구호보다 내실이 우선되는 쪽으로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번 호 표지이야기로 ‘낙천·낙선운동’을 다루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1대 총선에서 낙천·낙선운동이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이번 선거의 흥미로운 관전포인트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dury129@kyunghyang.com>

편집실에서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