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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의 ‘국민주권운동’ 낙선운동 앞장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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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새 판을 짜자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도수 건국대 교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경실련이 벌일 운동은 ‘국민주권운동’이라고 덧붙였다. “주권자인 국민이 자신의 한 표로 제대로 실질주권을 행사할 방법이 뭐냐는 것이다. 우리 운동은 탈진영·탈정파다. 마땅히 밀어줄 정당이 있나. 없다.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당이 아닌 인물이다.” 인물을 기준으로 본다면 평가할 방법이 있다. 현직 국회의원이라면 그의 의정활동 기록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평가의 잣대는 초선보다 재선, 재선보다 다선의 현직 국회의원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재선에서 3선 이상이면 당의 중진이다. 초선은 국회 경험이 처음이니 고려해볼 만하다. 그러나 다선의원이 당 중진 역할을 제대로 해왔는지는 엄밀하게 평가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그나마 잘하는 10% 정도만 남겨두고 현역 의원 90%는 물갈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능한 이야기일까.

2016년 2월 17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총선시민네트워크 발족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심판’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2016년 2월 17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총선시민네트워크 발족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심판’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선거를 두고 생각해보면 뭐가 먼저 떠오르는가. 당이 떠오른다면 고정관념이다. 정당이 국민의 뜻을 따라왔나. 당을 지배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당의 실세들이었다. 진보·보수,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한국의 정당은 이념으로 모인 정당이 아니다. 붕당이다. 이제 제대로 된 정당을 국민이 만들어내야 한다.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한 표를 제대로 행사하면 된다.” 황 위원장은 ‘정당을 기준으로 한 차악 선택’도 “어차피 나중에 정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 기준으로 삼지 말자고 말한다.

“기성정당의 중진 의원 엄격 검증”

다시, 가능한 이야기일까. 이상론처럼 들린다. 기자가 사는 지역구를 떠올리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수십 년간 보수의 아성이었던 기자의 지역구는 최근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인사가 당선됐다. 이 국회의원은 재선이지만 당 중진 실세다. 이번 선거에서 국회의원 보좌관을 역임한 인사가 예비후보로 등록해 도전장을 내밀고 있지만, 당 실세를 누르고 그가 후보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당인 민주당의 경우 신인 후보에게 20% 가산점을 부여하지만 후보는 여론조사 50%와 권리당원을 포함한 당원투표 50%로 최종 결정된다.

야당인 자유한국당 쪽에서도 예비후보 여럿이 등록하고 있지만 대부분 지역유지 출신에 전형적인 정치권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들이다. 믿음이 안 간다. 다른 신생 소수정당도 예비후보를 등록하고 있지만 언급하고 싶지 않다. 한마디로, 황 위원장이 제시하는 것처럼 ‘당과 분리시켜 표를 줄 신진 인물’이 마땅치 않다.

이번 선거는 유권자 운동 관점에서 예년의 총선과는 다르다. 2000년 이래, 2008년을 제외하고 총선 때마다 등장했던 시민사회단체 중심의 총선시민연대는 현재까지 결성될 움직임이 없다. 대신 경실련이 나섰다. 경실련은 지난 조국대전 국면 때 반대 목소리를 낸 거의 유일한 시민단체다.

과거 2000년에서 2016년까지 총선시민연대 활동엔 알려진 것과 달리 경실련은 참여하지 않았다. 경실련은 선거 시기 유권자가 자신의 정치성향과 최대한 가까운 성향의 정당을 찾아주는 발오마트(Wahl-O-Mat) 프로그램 웹사이트를 운영하거나 공명선거실천시민협의회(공선협) 투표참여운동 등 비교적 온건한 운동을 주도해왔다. 그러던 경실련이 변했다. 과거엔 하지 않던 낙선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1989년 부동산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창립한 단체다. 초기 경실련 활동은 토지불로소득 문제해결, 토지공개념 실현 등을 목표로 한 일종의 진보·보수 합작운동이었다. 경실련을 기점으로 사회운동의 중심축이 기존 재야·민중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넘어왔다. 경실련과 함께 한국의 시민운동 중심축을 양분하고 있는 참여연대는 1994년 창립했다. 2000년 이래 종전 총선시민연대 활동은 참여연대가 총대를 메면, 전국 지역단체들이 결집하는 형태였다. 참여연대는 지역지부조직이 없다. 경실련은 다르다. 시·도 단위 조직이 제주까지 전국에 걸쳐 있다. 이번 총선에서 지역지부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낙선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총선이 7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지역 차원의 낙선운동의 흐름도 조금씩 감지된다. 2월 4일 부산에서 ‘아베 규탄 부산시민행동과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가 시작을 알린 ‘친일파 없는 국회 만들기’ 운동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부산지역 총선 예비후보자 전원을 대상으로 질의서를 보내 돌아온 답변을 근거로 ‘친일 정치인’을 선정해 낙선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친일 발언, 친일미화 주장 전력 등에 점수를 매겨 총점 100점 이상을 받은 후보자들을 ‘국민의 대표 부적격자’ 등으로 분류해 홈페이지(노노후보닷컴·nonohubo.com)에 게시한다. 이 단체의 전기훈 총무는 “지난해 아베 규탄 촛불이 이어지는 과정에 온 국민의 염원이었던 친일청산을 부산지역부터 시작하는 의미로 준비했다”며 “부산에 출마 예정인 예비후보 본인들은 친일행적과 발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한편, 타 지역도 관련 제보가 들어오면 홈페이지를 통해 게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낙천·낙선운동은 참여연대 중심의 총선시민연대가 주도해왔다. 반면 경실련은 투표참여나 선거법 개정 등 상대적으로 온건한 운동에 집중해왔다. 사진은 지난 2000년 1월 경실련이 벌인 선거법개정 촉구집회. / 정지윤 기자

그동안 낙천·낙선운동은 참여연대 중심의 총선시민연대가 주도해왔다. 반면 경실련은 투표참여나 선거법 개정 등 상대적으로 온건한 운동에 집중해왔다. 사진은 지난 2000년 1월 경실련이 벌인 선거법개정 촉구집회. / 정지윤 기자

“친일후보 청산” 지역 낙선운동 주목

각 부문 단체들도 낙선운동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미 지난해 12월 ‘공천하지 말아야 할 20대 반환경 의원’ 명단을 발표한 환경운동단체들은 환경적 관점에서 우수한 활동을 보인 의원들과 반환경적 의정활동을 편 의원 각각 10여 명을 선정해 발표한다는 구상이다. 최준호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선거시기 난무하는 난개발·토건 공약에 대한 감시활동을 집중적으로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단체들도 ‘미투 관련 성범죄자’를 공천단계에서 배제하거나, 공천 이후 선거운동 과정에서 낙선운동을 벌이는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다. 김영순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최근 미투 논란으로 낙마한 민주당 영입인사 원종건씨의 경우 사전에 세평이라도 들었다면 그런 사태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성범죄자의 경우 공천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은 정파나 입장을 떠나서 여야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 이후 선거법은 여러 차례 개정절차를 거쳤다. 현재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단체들이 선거운동 기간에 합동으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반대운동을 한다는 의견을 공표하거나, 허위사실이나 후보자 비방에 해당하는 않는 내용으로 특정 후보자를 낙선대상자와 집중 낙선대상자로 선정해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고 언론에 보도하게 하는 행위’는 가능하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단체뿐 아니라 개인도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반대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

반면 오프라인의 경우는 다르다. 낙선대상 후보자를 특정해 거리집회를 하거나 낙선후보 명단을 실은 홍보물의 우편발송, 스티커 배포·부착은 금지되어 있다. 여기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단체’에 대한 규정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단체, 즉 ‘향우회·동창회 등 사적 모임’,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나 한국자유총연맹 등 법령에 의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단체’, ‘후보자 연관 단체’ 등을 제외한 모든 단체를 말한다. 이런 단체를 제외한 대부분 시민단체의 경우, 낙선운동뿐 아니라 지지운동까지 모두 가능하다.

오프라인에서 제약 부분은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 2016년 총선시민네트워크는 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따라 낙선대상자의 지역구에 가서 후보자를 명시하지 않은 대신 후보자의 선거사무실이나 현수막의 얼굴이 들어가는 사진을 언론에 보도하는 형태의 낙선운동 기법을 선보였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낙선후보 투표와 함께 이 활동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기획을 주도한 3인(이승훈, 안진걸, 이재근)의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참여연대를 떠나 싱크탱크와 시민참여를 결합한 새 시민단체를 만든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어떤 식으로든 시민사회의 총력을 모아 총선대응이 필요한데, 2016총선시민연대와 같은 범시민사회 총선대응 연대기구가 아직도 안 만들어졌다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대표성이 있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주요 시민단체들이 총선대응기구를 만들어 보수야권 일각의 극우·비리 정치인들에 대한 낙천낙선운동에 나선다면 작은 시민단체들도 힘을 보탤 것”이라며 “아울러 정의당 등에서 좋은 공약도 많이 발표되고 있는데, 그런 공약에 대한 응원 캠페인도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진영·정파 넘어 낙선운동 벌이겠다”

황도수 경실련 상임집행위 위원장은 기존 총선시민연대와 경실련 낙선운동의 차이를 “종전 낙선운동이 내심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배제하자는 스타일이었다면 이번에 경실련이 벌이는 운동은 그 자체로 국민주권운동”이라고 말한다. 진보나 보수와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낙선운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기준은 무엇일까.

2016년 5월 총선시민네트워크 관계자들이 후보자를 명기하지 않은 패널 등을 예시하며 서울시 선관위와 경찰의 유권자 단체 고발 및 수사에 대한 반박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2016년 5월 총선시민네트워크 관계자들이 후보자를 명기하지 않은 패널 등을 예시하며 서울시 선관위와 경찰의 유권자 단체 고발 및 수사에 대한 반박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은 “아직은 논의 중”이라고 전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역 의원의 경우 법안 투표 발의 등에서 일관되게 재벌에 유리한 법안을 내놓은 사람들이 많다. 또 부동산이나 재산축적 과정에 의혹이 있는 사람 역시 대표자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타깃을 인물로 보기 때문에 여권에서도 많은 사람이 나올 것이다. 단적으로 KTX 민영화에 관여한 김경욱 전 국토부 2차관이나 법원 판결을 받고도 톨게이트 노동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버티던 이강래 전 도로공사 사장도 여당에 공천신청을 했다. 사회적 참사 문제에 대한 되지도 않은 망언을 쏟아냈던 사람들도 기본적인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는 “황 위원장이 공언한 90%까지 물갈이는 어렵겠지만 종전 기득권 정당에서 자격 없는 현역 중진 의원을 떨어뜨린다는 목표로 최대한의 역량을 쏟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일상 업무를 중단하고 기존 조직체계를 선거 시기에 정책·콘텐츠·홍보의 세 파트로 재구성해 낙선운동에 올인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2월 5일 열린 전국 경실련 조직회의에서도 상임집행위가 제시한 낙선운동 방침이 깊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선보이는 ‘경실련판 낙선운동’은 성공할 수 있을까. 경실련 활동가 출신으로 국회의원 보좌관을 역임한 박신용철 정책컨설팅 그룹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원은 “현실적으로 선명하게 치고 나가던 경실련의 초창기 모습을 회복하는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현역 중진 의원 대폭 물갈이로 기성정당의 기득권을 해체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관념적이고 교과서적인 방식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2004년 17대 이후 국회가 모두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아왔고, 제도권 정치에 대한 국민의 정치적 효능감은 떨어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를 평가하는 기준이나 잣대는 30년 전 경실련이 출범할 때와는 달라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정부 들어 환경부 장관이 취임해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이 환경단체가 아니라 미세먼지 관련 인터넷커뮤니티 사람들이었다는 것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이, 지난 박근혜 탄핵뿐 아니라 그전부터 촛불시위를 주도한 것은 소수의 시민단체가 아닌 온·오프를 통해 새로 자라난 자발적 결사체들이었다.”

종전 시민단체들 중심의 낙선운동은 관성으로 흐를 가능성이 많은 반면, 오히려 주목해야 하는 것은 풀뿌리 단위에서 자발적으로 벌어지는 낙선운동이라는 평가다.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은 “낙선운동은 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합법적으로 진행할 것”이라며 “경실련만 독야청정 낙선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환경·여성단체는 물론 SNS 등을 통한 개인 참여를 조직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낙선운동과 연대를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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