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수사경찰 ‘무능한 팀장’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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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책임 커져… 일선 경찰들 “앞으로가 문제다”

검경수사권 조정안 논란 이전부터 검찰과 경찰은 단 한 번도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다. 검찰은 여전히 경찰을 지휘하고 싶어하고(실질적으로 지휘를 하지 않더라도 지휘관계에 놓고 싶어하고), 경찰은 “검사와 경찰은 상명하복 관계가 아니다”라고 반발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월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인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 공포안’과 ‘검찰청법 일부개정법률 공포안’ 등 의결 사항을 검토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월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인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 공포안’과 ‘검찰청법 일부개정법률 공포안’ 등 의결 사항을 검토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문무일 전 검찰청장이 역대 검찰총장으로는 처음으로 2019년 7월 퇴임 하루 전 민갑룡 경찰청장을 찾아 인사를 나눴다. 그것을 두고 60여 년간 이어져 온 검·경 갈등이 화해무드로 접어들었다고 풀이하는 사람은 없다. 문 전 검찰총장은 2019년 5월 검경수사권 조정법안 등이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자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는 내용의 입장문 발표와 함께 해외일정을 취소하고 조기 귀국해 강하게 반발한 인물이다. 악수 한 번에 풀어질 관계는 아닌 셈이다.

그다지 나쁘지 않은 일선의 검경 관계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 ‘검사와 경찰의 관계’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지방의 한 순경 출신 경위급 수사관은 “바로 위의 팀장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담당 검사”라고도 했다. 그는 “팀장과는 수사 관련 상의를 하지 않고, 검사와는 수사 중간중간, 사건송치할 때 전화통화를 하니까 결과적으로 검사와 더 많은 사건 이야기를 하는 셈”이라며 “검찰과 경찰이 사이가 나쁘다는 말은 높은 분들끼리 정치할 때 하는 말이고, 우리는 그렇게 싸울 일 자체가 그다지 없다”고 했다.

검찰이 지난해 2월 국회 야당 사개특위 위원들에게 ‘정부 합의안 및 사개특위 진행에 대한 각계의 우려’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경찰을 ‘나치 게슈타포’에 비유하고, 경찰은 ‘수사권 조정-자치경찰 관련 검찰 측 주장 검토’라는 문건을 통해 검찰을 ‘중국 공안’에 빗대 서로를 맹비난하는 동안에도 지방의 일선 경찰들은 오히려 담당 검사와 원활한 관계를 맺으며 사건처리를 해왔다는 얘기다.

일선 경찰들은 오히려 “앞으로가 문제”라고 했다.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지난 1월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이르면 올해 안에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갈 텐데 앞으로 사건처리를 어떻게 해나가야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수사경찰에게 부여될 ‘1차 수사권’ 및 ‘수사종결권’을 얼마나 잘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인 셈이다. 이 같은 걱정의 중심에는 ‘무능한 팀·과장’이 있다.

“검찰은 자기 것 빼앗겼다고 눈에 불을 켜고 ‘저것들 잘 해내나…’ 두고 볼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디 편한 부서에서 시험공부만 하다 경감으로 승진한 사람이 팀장이라고 오면 여기서 20년, 30년 수사만 해온 우리 같은 사람들 입장에서 그게 곱게 보이겠습니까. 그 팀장까지 합쳐서 수사 인원을 세는데 그 팀장은 처음부터 없는 걸로 치고 수사를 해야 하니 인력 누수도 벌어지는 거고, 이제는 불기소 종결을 하려 해도 더 신중하게 수사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팀장이란 사람이 사건 송치가 뭔지도 모르고, 영장 관련 서류가 뭔지도 모르면 어쩌겠어요. 차라리 수사 오래 한 수사관들 중에서 팀·과장을 올리던가, 그게 여의치 않으면 좀 더 수사경력에 대한 기준을 높여 팀·과장을 앉혀야 할 것 아닙니까.”(ㄱ경감·수사경력 20년 이상)

“전에는 ‘팀장 패싱(팀장의 검토는 형식적으로 거치고 검사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는 것)’이라도 됐지. 이제는 팀·과장이 검사가 해왔던 역할도 두루 해야 할 텐데 그만한 역량이 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경찰청에서는 시험 쳐서 승진했든, 수사경력으로 승진했든 경감 정도 되면 웬만큼 실력이 있다고들 그러죠? 현장에 와보라고 그러세요. 수사만 수십 년 판 경위급 수사관이랑 기껏 몇 년 수사경력 있고, 교통·정보나 다니면서 시험공부만 했던 사람의 수사역량이 같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거 막으려고 수사경과제(搜査警科制)를 만들었는데 지방은 여전해요.”(ㄴ경감·수사경력 30년)

경위 수사관보다 경험 적은 경감 팀장

경찰청은 2005년 1월 1일부터 수사경과제를 시행해오고 있다. 용어 자체는 생소하지만 쉽게 말해 수사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형사, 지능범죄, 과학수사, 여성·청소년, 교통조사 등의 수사 분야를 따로 묶어 일반 경찰과 분리한 제도를 말한다. 인사시스템 역시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초기 취지 역시 타 부서 경찰관들과의 일률적인 경쟁을 통한 승진이 아닌 자체 승진 인원을 배정해 수사요원의 승진기회를 높이고, 죄종(罪種)별 수사체계로 전환해 수사의 전문성을 향상시키자는 데에 목적이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반 경찰과 수사경찰 사이에 담을 세운 뒤 지난 15년간 조금씩 조금씩 그 담을 높여왔다”면서 “현재는 수사 분야에 근무하지 않았거나 근무경력이 짧은 경찰관이 쉽게 수사영역으로 넘어갈 수도 없을 정도로 담을 높여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2012년 4월 자신을 험담한다는 이유로 또래 소녀를 집단구타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암매장한 10대 남녀 9명이 경기 고양시 일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 김창길 기자

2012년 4월 자신을 험담한다는 이유로 또래 소녀를 집단구타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암매장한 10대 남녀 9명이 경기 고양시 일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 김창길 기자

그럼에도 일선에서 불만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십 년간 수사업무만 해온 경위급 수사관 및 팀장들 사이에는 자신보다 수사경력이 짧은 경감급 팀장이 시험승진으로 오는 것에 대한 불만 존재한다. 실제 무능한 팀·과장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는 현실적 어려움 역시 불만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정년퇴임을 몇 년 앞둔 지방의 한 경감급 수사팀장은 “본청에서 생각보다 많은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한 것도 사실이고, 1급지 경찰서는 대부분이 우수인력이 오고 있는 것도 맞다”면서도 “본청에서 2년 전부터 팀장자격제를 만들어서 자격이 되는 사람만 팀장을 시키라고 지침을 내렸는데 일부 2·3급지 경찰서에는 여전히 그런 조건이 안 되는 경감을 팀장급으로 배치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경감급 팀장도 직접 조서 작성하고 현장수사도 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가르쳐줘야 하는 팀장이 오면 수사팀 입장에서도 손해일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경찰청 역시 일선의 불만을 알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선에서 올라오는 불만을 알고 있다”면서 “다만 그런 무능한 팀장도 있지만 반대로 너무 깐깐한 팀장이 와서 거기에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한 경찰서에서 10년 이상 수사를 해온 수사관들 입장에서는 3~4년마다 자리를 옮기는 경감급 팀장이 수사관들의 수사방식이나 수사방향 등을 지적하면 거기에 대해 불만을 갖거나 부당한 개입이라고 반발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경찰청 관계자는 “어느 조직이나 무능한 중간관리자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서 “경찰 인력구조가 과거에는 피라미드형이었지만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중간관리자를 늘리면서 현재는 중간층이 두터워진 상태라 팀·과장급 인력이 많아지면 그만큼 우수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고, 반대로 능력이 없는 사람도 걸러낼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청은 2018년 8월부터 ‘수사과장·팀장 자격제’를 시행, 과장(경정)의 경우 ‘최근 10년간 총 수사경력 6년 이상 또는 해당 죄종별 수사팀 3년 이상’의 자격을 충족해야만 과장으로 배치하도록 했다. 수사팀장(경감) 역시 ‘최근 10년간 총 수사경력 5년 이상 또는 해당 죄종별 수사팀 2년 이상’의 자격을 충족해야 한다. 2020년 2월 기준 과장급 간부의 수사경력 평균은 17.3년(10년간 평균 8.8년), 팀장급 간부의 수사경력 평균은 16.1년(10년간 평균 8.6년)이다.

영장심사관제도 및 수사심사관제도 역시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영장심사관제도란 경찰이 검찰에 영장을 신청하기 전 기록이나 증거물 등을 사전에 심사해 보강이 필요할 경우 보강지시를 내리고, 불청구 및 기각된 영장에 대한 오류사례 분석, 영장신청과 관련된 교육 등을 담당하는 전문가를 운영하는 제도다. 2019년 3월 8개 경찰서에서 시범운영을 한 뒤 2019년 말 기준 1급지서 166개 경찰서에서 운영하고 있다. 영장심사관은 경찰 경력 2년 이상의 변호사 자격증 보유자 또는 수사경력 7년 이상의 수사전문가(경감 이상) 중 선발한다. 이 제도는 검찰과 경찰 간의 수사권 조정 다툼 과정에서 탄생했다. 검찰이 매년 경찰이 신청한 영장의 기각률을 공개하자 일종의 ‘관리’ 차원에서 만들어진 제도인 셈이다. 그러나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기존에 갖고 있던 수사개시권과 수사종결권, 1차 수사권을 모두 갖게 된 경찰로서는 검찰 맞대응용으로만 이 제도를 가져가서는 안 되는 상황에 놓였다.

경찰의 불기소처분에 이의제기 불보듯

수사심사관제도도 같은 맥락이다. 수사심사관제도는 △경찰로 접수된 사건에 대한 사전심사 및 검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후 재지휘되는 사건에 대한 분석 △중요사건에 대한 일선 수사관 지도 △부서별로 ‘핑퐁 싸움’을 하는 사건에 대한 배당 및 분장업무까지 맡는 전문 수사관 제도다. 자격은 영장심사관과 같다. 2019년 하반기 6개 경찰서에서 시범운영을 시작했고, 이르면 2020년 상반기부터 확대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밖에 지방청 책임수사 지도관제도, 경찰 사건심사 시민위원회제도 등도 경찰이 수사권 조정에 따른 일선 수사능력 강화를 위해 마련한 제도들이다.

다양한 제도를 만들어도 결국 관건은 이 제도들이 일선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안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2020년 2월 기준 수사경찰의 수는 3만102명이다(배치가능 정원 2만7848명의 108%). 뒤집어 말하면 수사능력이 모자라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팀·과장급 수사경찰을 대체할 만한 인력이 2254명이나 있다는 얘기다. 경찰수사관들이 더 이상 무능한 팀·과장을 ‘패싱’하고 검사에게 사건을 송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건만 송치하면 마치 자신의 사건이 아니었던 것처럼 넘기고, ‘알아서 보완수사를 요구하거나 재지휘를 해주겠지’와 같은 안일한 생각을 갖고, 검사를 비빌 언덕으로 삼던 때는 지나갔다는 말이다.

경찰이 1차 수사권 및 수사종결권을 손에 넣었다고는 하지만 최종 종결권을 얻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검찰이 경찰을 제어할 방법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경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린 사건에 대해서는 대부분 고소·고발인들의 이의제기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민원인이 이의제기를 할 경우 경찰은 관련 서류·증거물을 모두 검찰로 보내야 한다. 검사는 검토 결과에 따라 재수사를 요청할 수도 있다. 검사의 시정조치 요구도 가능하다.

“경찰이 불기소처분 내린 사건을 검찰이 일일이 들여다보는 데 한계가 있고, 암장사건이 묻힐 가능성이 있다”는 검찰의 비판은 그래서 일방적 비난이 아닌 경찰이 가장 염두에 둬야 할 조언이기도 하다. 경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린 사건은 곧 이해당사자의 이의제기가 들어간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의 한 경제팀장(경감)은 “경찰 입장에서도 가장 조심해서 다뤄야 할 부분이 불기소처분일 것”이라며 “어디까지나 예상이지만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 되면 경찰의 기소의견 송치비율이 높아지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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