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과 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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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도시국가 아테네가 번성하던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비롯한 펠로폰네소스 동맹 도시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편집실에서]감염병과 가짜뉴스

전쟁 발발 후 2년째인 기원전 431년, 아테네에 불청객이 덮쳤습니다. 바로 역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고열에 시달렸고, 혀와 목구멍에는 피가 맺혔습니다. 구토와 설사가 끊이지 않았고, 몸엔 부스럼과 궤양이 번졌습니다. 거리 여기저기서 벌거벗은 채 뛰쳐나와 극심한 갈증을 호소하며 물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쓰러졌습니다. 시내 곳곳에 시체들이 널렸고, 그것을 뜯어먹기 위해 짐승과 새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최악의 역병은 2년간 창궐했고, 아테네 인구의 3분의 1이 줄었습니다.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웠던 아테네의 황금기를 끝낸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역병이었습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이 역병의 참상은 인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2020년 새해 초부터 새로운 감염병 하나가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전 세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1월 30일 현재 중국에서만 7827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사망자도 170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물론 미국·유럽·호주 등 확진자가 발생한 나라만 20개국에 이릅니다. 각국의 철저한 방역 조치에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의 불안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 등을 겪으면서 국가의 방역 시스템은 상당 부분 개선되고 발전했지만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에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질병의 위협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도 있습니다. 바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와중에 판치고 있는 가짜뉴스와 음모론입니다. 의학의 발달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통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이런 가짜뉴스 등을 급속하게 퍼뜨리며 시민들의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확진자가 늘었다’느니 ‘OO에는 가지 말라’는 식의 가짜뉴스를 SNS에 올려 불안을 증폭시키는 겁니다. ‘신종 코로나가 박쥐를 먹는 중국인의 기상천외한 식습관에서 유래했다’거나 ‘중국이 비밀리에 생물학무기를 개발하다가 바이러스가 유출됐다’는 등의 황당한 주장도 나돕니다. 감염병을 저급한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중국인에 대한 입국정지’, ‘중국 관광객의 송환’ 등을 주장하며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감염병이 출현했지만 인간은 이를 정복하며 세대를 이어왔습니다. 미생물의 존재를 발견하고, 백신과 치료약이 등장하면서 하나하나 극복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언젠가 인류의 반격에 꼬리를 내릴 것입니다. 하지만 감염병이 나타날 때마다 이를 틈탄 가짜뉴스와 음모론은 더욱 활개를 칠지 모릅니다. 이런 행태들은 감염병 이상으로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감염병이 나타난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장면들은 한 사회의 보건시스템뿐 아니라 그 사회의 이성과 합리성의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입니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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