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

모빌리티 혁신, 선도차는 택시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2020년 국내 모빌리티 서비스(이동을 편리하게 하는 각종 서비스) 시장은 ‘택시’가 이끈다. 정부의 ‘717 택시 개편안’과 여당의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플랫폼 택시법)에 따라 모빌리티 혁신의 주체는 ‘택시’로 교통정리됐다. 택시 기반의 모빌리티 혁신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엇갈린다. ‘혁신 택시’에 탑승한 이들은 택시가 모빌리티 생태계를 바꿀 힘이 있다고 본다. 택시를 통해 축적한 이용자 데이터는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의 윤활유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 Pixabay

/ Pixabay

타다를 비롯해 ‘택시’를 거부하는 측은 택시 기반 혁신이 기존 택시시장 나눠먹기에 불과한 반쪽짜리라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공유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택시와 같은 과거 산업은 걸림돌이 된다고 본다. 택시로는 공유경제라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일까. 2020년 한국 모빌리티 혁신은 방향부터 잘못 설정된 것일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차량을 호출한다. 지정된 운전기사와 차량이 손님을 태우고 목적지로 이동한다. 요금은 스마트폰으로 결제한다. 이 고객이 이용한 것은 택시일까. 타다(호출 렌터카)일까. 한마디로 답하기 어렵다. 택시와 타다 어느 쪽을 택해도 정답이 된다. 힌트가 더 필요하다.

고객이 탄 차량은 크고 깨끗하다. 찌든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폭언·욕설을 하지 않는다. 말 섞을 필요도 없다. 난폭 운전·바가지 요금 걱정에서도 자유롭다. 답이 나왔다. 나열한 힌트는 렌터카 기반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가 출시 1년 만에 누적 고객수 150만 명, 재이용률 89%(VCNC·2019년 2월 기준)를 기록한 비결이다. 타다가 혁신이냐, 아니냐는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다. 혁신은 세상에 새롭게 등장한 높은 수준의 기술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용자와 시장이 혁신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혁신이 된다.

이용자가 열광하는 타다의 혁신은 운전자가 제공하는 ‘친절함’이다. 높은 수준의 IT기술이 아니다. 진입 장벽도 높지 않다. 그렇다면 택시는 왜 타다가 될 수 없었을까. 택시의 운영체제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없는 구조였다. 정부가 택시에 거는 기대치 역시 유상 운송이라는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택시 변화의 기폭제가 된 타다

지방자치단체가 정하는 국내 택시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택시기사는 매출을 늘리기 위해 할증이 붙는 심야시간대 장거리 손님을 골라 태운다. 사납금도 승차거부를 부추긴다. 처우가 열악하다 보니 운전대를 잡으려는 인력이 없다. 남아도는 택시를 돌리기 위해 사업주는 검증되지 않는 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서비스는 바닥이고 고객 불만은 치솟는다. 고객 만족도가 낮다 보니 지자체에서도 택시요금을 올리기 쉽지 않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카카오T벤티 / 카카오모빌리티 제공

카카오T벤티 / 카카오모빌리티 제공

택시의 단단한 벽에 균열을 낸 건 플랫폼이다. 플랫폼 기업들이 승객과 택시를 연결해주는 호출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승차거부가 개선됐다. 2018년 10월에 등장한 타타는 택시 변화의 촉매제가 됐다. ‘택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타다는 아이러니하게도 ‘택시 서비스의 표준’을 만들었다. 비싼 요금을 내고 더 좋은 서비스를 받길 원하는 시장의 수요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마카롱택시 / KST모빌리티 제공

마카롱택시 / KST모빌리티 제공

타다의 성공이 택시를 자극했다. IT기술에 양질의 서비스를 접목한 비싼 택시가 사업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2019년 마침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택시가 출시됐다. 1호 브랜드 가맹택시(웨이고블루·현 카카오T블루)가 달리기 시작했다. 브랜드 가맹택시제도는 2009년에 도입됐다. ‘일본 MK택시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 택시를 만들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도입했지만 지난 10년간 유명무실했다. 특별·광역시 기준 4000대 이상의 가맹택시 면허를 보유해야 하는 등 사업 인가 조건도 까다로웠다. 브랜드·시스템 개발에 드는 투자비용에 비해 사업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카풀·타다 불법 논란의 홍역을 치른 국토교통부는 2019년 7월 ‘규제혁신형 플랫폼 택시’ 활성화 방안을 담은 ‘혁신성장과 상생발전을 위한 택시제도 개편방안(택시 개편안)’을 발표했다. 두 달 뒤 카카오모빌리티는 가맹택시 운영사 타고솔루션즈를 인수하고 카카오 브랜드 택시를 출시했다. 정부의 택시 규제 완화 방침과 맞물려 플랫폼 기업들이 택시 산업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플랫폼을 통해 탄생한 브랜드 택시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택시 외관부터 달라졌다. 무채색·꽃담 황토색(서울시 택시) 일색이던 외관에 카카오캐릭터가 붙는가 하면 파스텔톤으로 단장한 택시도 눈에 띈다. 카카오모빌리티·KST모빌리티가 출시한 브랜드(카카오·마카롱) 택시다. 브랜드 특유의 외관은 같지만 운영방식은 직영·가맹·제휴 등 택시마다 제각각이다. 하지만 제공되는 서비스의 주체가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통틀어 플랫폼 택시로 부르기도 한다. 업계에서는 이들을 택시 안의 ’타다’라고 부른다.

기존 택시법인 인수로 마찰 피해

가맹택시 선두에 있는 업체는 카카오모빌리티다. 현재까지 총 9곳의 택시법인을 인수해 택시면허 892개를 보유하고 있다. 면허를 매입하는 과정을 밟았기 때문에 기존 택시업계와의 충돌을 피했다. 현재 서울과 경기 성남, 대구는 카카오T블루(옛 웨이고 블루)를 정식 서비스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서울에서 카카오T벤티(11인승 승합차 택시)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카카오T벤티는 카카오T블루와 같은 가맹택시가 아니다. 대형택시 사업자와 별도의 제휴·계약을 맺고 카카오 브랜드를 제공한다. 채용 등 인력 관리도 각 택시법인에서 한다.

이런 내부의 사정과 달리 외부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카카오택시다. 카카오T벤티·T블루 모두 승차거부 없는 바로 배차와 친절한 서비스를 기본으로 한다. 특히 가맹택시인 카카오T블루는 본사가 만든 교육·운행지침·고객서비스 매뉴얼에 따라 운영된다. 운전기사는 카카오가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에 운행을 나간다. 카카오의 매뉴얼과 교육·관리를 통해 카카오택시 이용자들은 균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이유다.

카카오T블루와 T벤티는 현 택시 관계법안의 테두리에서 만든 브랜드다. 국회 계류 중인 플랫폼 택시법이 통과되면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 택시’가 등장할 수 있다. 플랫폼 택시법안의 핵심은 새 운송사업형 모델, 이른바 규제혁신형 플랫폼 택시(TYPE1)다. 플랫폼 사업자가 정부에 차량 대수에 비례하는 사회적 기여금을 내고 면허를 얻어 운송사업을 하는 방식이다. 차종과 외관 요금 등 기존 택시 규제도 대폭 완화된다. 다양한 서비스 모델 실험을 통해 택시 협력 모델 이후 MaaS(Mobility as a Service) 개념의 이동 플랫폼으로 확장도 가능하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제도권 내에서 기업들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틀이 마련되면 시장의 불확실성도 사라진다”며 “보다 다양한 서비스들을 만들어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역 앞에 택시가 정차해 있고 그 옆을 타다 택시가 지나가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서울역 앞에 택시가 정차해 있고 그 옆을 타다 택시가 지나가고 있다. / 권도현 기자

KST모빌리티가 출시한 ‘마카롱’ 브랜드 택시도 주목받는 플랫폼 택시 프랜차이즈 가운데 하나다. 현재까지 159개 택시 면허를 매입했고, 앞으로 10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현재 서울 1200대를 포함해 전국 1800대(가맹 계약 건수 기준) 마카롱택시를 운영 중이다. ‘타다식’ 서비스를 바탕으로 임산부·자녀·노인 케어서비스를 더했다.

현재까지 마카롱택시는 순항 중이다. 서비스 재이용률 72%(2020년 1월 기준), 고객 한 명당 월 이용횟수는 5.2회를 기록했다. 누적 가입자 6만3000명, 가입 기사수는 5000명에 달한다. NHN·벤처 캐피탈·현대자동차 등으로부터 23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최근에는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과 함께 친환경 전기택시 브랜드 ‘스위치’를 출시했다. 서울지역 100대를 시작으로 가맹지역을 넓힐 계획이다.

2월 14일부터는 현대자동차와 협업을 통해 서울 은평구에서 커뮤니티형 모빌리티 서비스를 실험에 나선다. 동네 주민을 타깃으로 한 합승택시로 전형적인 수요 응답형 이동 서비스다. 이용자가 앱으로 호출하면 실시간으로 최적 경로를 계산해 승객들이 원하는 장소에서 태우고 내려준다. 수요 응답형 이동 서비스는 혁신 모빌리티의 최전선에 해당하는 서비스다. 권오상 KST모빌리티 전략총괄이사는 “국내 모빌리티 산업의 성장은 택시를 건너뛰고는 이뤄질 수 없다”며 “택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모빌리티 실험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택시업계(서울시택시운송사업조합·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가 티머니와 손잡고 출시한 ‘온다택시’ 서비스도 혁신 택시 대열에 합류했다. ‘승차거부 없는 택시’를 내걸고 ‘목적지 미표출’ 시스템을 도입했다. 택시기사는 승객이 차량에 탑승한 뒤에야 목적지를 알 수 있다. 고객 신뢰를 회복하고 플랫폼의 공세에 맞서겠다는 전략이다. ‘반반택시’도 전에 볼 수 없었던 서비스다. 심야시간대(오후 10시~새벽 4시) 이동구간이 같은 승객을 매칭시켜 합승을 알선하는 택시 동승 플랫폼 ‘반반택시’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동승자끼리 택시비를 나눠 내는 만큼 요금을 아낄 수 있다. 반반택시는 모빌리티 분야 규제 샌드박스 1호다. 도로 위는 기존 택시업계와 가맹택시, 택시 기반 모빌리티 스타트업의 테스트 베드가 됐다.

온다택시, 반반택시도 호출 기다려

모빌리티 업계 한편에서는 현재 택시 기반 혁신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서비스인 라이드셰어링(승차공유)을 막아 놓고 혁신 기업을 ‘택시 운동장’에 몰아넣어서는 급변하는 모빌리티 환경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1월 16일 이재웅 쏘카 대표는 오픈넷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정부에서 중요하게 내세웠던 공약의 방향성은 혁신성장, 공유경제였지만 지금은 반대로 가고 있다”며 “택시와 같은 지대추구(공급량이 제한된 재화나 서비스를 독과점하는 방식으로 쉽게 이익을 얻는 것) 산업을 규제로 보호해서는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산업이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OECD도 2018년 6월 택시 및 차량공유서비스 분야의 혁신과 경쟁을 논의한 정기회의에서 “소비자 후생증대효과를 감안할 때 차량공유서비스를 일률적으로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다고 정부 방침이 OECD가 제시한 방향과 다르다고 볼 수는 없다. 같은 사안을 두고 OECD는 “기존 택시사업자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평등한 경쟁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신규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택시 규제 완화도 혁신의 한 축으로 본 것이다. “기존에 택시 하는 분들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타다 같은 혁신적인 영업이 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1월 15일 신년 기자회견) 역시 OECD의 의견과 다르지 않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택시를 통해서도 모빌리티 혁신은 충분히 가능하다”며 “교통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고 모든 규제를 허무는 파괴적 혁신은 오히려 모빌리티 산업에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