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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과 팬덤, 애정이 곧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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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 표현 이면에 자본주의 셈법… 팬덤이 아이돌 수익으로 직결되는 구조

국내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멤버 첸(29·본명 김종대)이 지난 1월 13일 “오랜기간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의 발표에 앞서 엑소의 공식 팬클럽 엑소엘(EXO-L)에 자필편지로 이 같은 사실을 먼저 알렸다. 더불어 2세를 갖게 됐다는 소식도 전했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엑소’의 멤버 첸의 퇴출을 요구하는 팬들이 1월 19일 서울 삼성동 SM타운 코엑스 아티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트위터 @EXO-L ACE CAFE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엑소’의 멤버 첸의 퇴출을 요구하는 팬들이 1월 19일 서울 삼성동 SM타운 코엑스 아티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트위터 @EXO-L ACE CAFE

팬덤은 분열했다. 유료 팬클럽 회원인 엑소엘 에이스(EXO-L ACE)는 1월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SM타운 코엑스 아티움 앞에서 첸의 엑소 탈퇴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반면 엑소 갤러리는 “엑소엘 에이스의 도를 넘는 무책임한 행보로 이례적인 팬덤 내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엑소 공식 팬페이지인 ‘Lysn’에는 연일 ‘김종대 탈퇴’와 ‘김종대 잔류’를 놓고 팬들 간의 신경전이 오가고 있다. 엑소 팬덤 내에서도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엑소 행복 연구소(트위터 @exo_lab)’는 1월 16일부터 “더 이상의 갈등과 분열이 발생하지 않도록 구체적 입장을 알려달라”며 소속사 측에 공식 답변을 요구하고 있지만 소속사는 여전히 묵묵부답인 상태다.

6년째 엑소엘로 활동하고 있는 정수진씨(34)는 “3번의 중국인 멤버 탈퇴에 3번의 열애설에도 지금까지 버텨왔던 팬덤이 이번 일로 흔들리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같이 첸백시(EXO-CBX·엑소 내 유닛그룹. 첸이 여기에 속해 있다) 해투(해외투어)도 함께 다녔던 친한 동생은 이번 일 이후 연락이 되지 않고, 나조차 동생의 심정이 어떨지 아니 연락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돌 결혼 둘러싼 팬덤의 분열

한때 엑소 홈마(홈페이지 마스터)로 활동하다 그만둔 박모씨(29)는 “트위터에 ‘우리가 첸을 버린 게 아니라 종대가 첸을 버렸다’는 글이 있었거든요.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딱 제 마음을 표현한 말 같았어요. 우리만큼 힘들게 아이돌 덕질한 팬덤이 없는데 이게 또 무슨 시련인가 하고…”라고 말했다. 박씨는 “우리가 그동안 엑소를 위해 들인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 뭔지 모를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지켜보자’며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는 팬들이 다수지만 많은 팬들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전광판 시위 등을 벌이며 소속사를 압박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과 팬클럽(또는 팬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현재의 ‘아이돌-팬클럽’의 모습은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 ‘H.O.T’, ‘젝스키스’, ‘신화’ 등으로 이어지는 1세대 아이돌 그룹과 팬클럽의 관계와도 다르다. 1세대 아이돌 팬덤 문화가 아이돌 그룹 제작사의 일방적 프로듀싱과 앨범활동을 그대로 따라가 응원하는 데에 머무는 구조였다면 현재의 아이돌 팬덤문화는 엠넷에서 방영했던 ‘국민 프로듀서’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즉 내 연예인은 내가 선택하고, 머리 스타일부터 옷차림, 말투, 그룹 및 개별 활동에서의 포지션 등도 내가 정한다는 생각을 팬들 스스로 갖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단순 소비자의 영역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적극적인 참여가 전제된 소비를 지향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특정 아이돌을 좋아하면서 일종의 ‘유사연애’를 하는 것 역시 아이돌을 소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일부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팬들에게 트위터 등 각종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헤어스타일 등을 직접 골라달라고 요청하고, 이를 향후 활동에 반영한다. 팬들에게 프로듀서의 역할을 일부나마 부여함으로써 그들에게 ‘팬질하는 보람’이라는 만족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내가 요청했던 스타일로 머리카락 색을 바꿔 활동하면 뭔가 내 ‘최애(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가 나와 소통하고 있다는 만족을 느낀다.” 엑소 팬 김모씨(41·6년차 팬)의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팬덤 문화는 ‘좋아하는 감정’ 하나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철저한 자본주의의 셈법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애정이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아이돌 문화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아이돌 제작사가 팬덤을 하나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은 바로 이들이 곧 ‘돈’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다. 팬덤이 커질수록 더 많은 돈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증권이 2019년 4월 발표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K-POP: Beyond the History’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K팝 산업의 시장규모는 2017년 기준 3조~4조원으로 추정된다. 광고 및 드라마·예능 프로그램 콘텐츠와 국내 관광산업 등 간접 수입까지 포함할 경우 그 액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굿즈시장에서 연간 1000억원대 수익

한때 ‘방엑원(방탄소년단·엑소·워너원)’으로 분류되던 1군 아이돌 그룹 중 톱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BTS의 제작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실적은 ‘팬덤의 영향력=매출액’이라는 공식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2013년 6월 데뷔한 BTS는 2015년 ‘화양연화’ 시리즈를 성공시키면서 급격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BTS는 화양연화 3부작 시리즈가 성공을 거두면서 엑소의 영향력을 뛰어넘었다. 빅히트는 2016년 452억원(영업이익 104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잇단 성공에 힘입어 2018년 매출액은 2년 전보다 5배 가까이 오른 2142억원(영업이익 641억원)을 달성했다. 2019년도 예상 매출액은 3452억원, 영업이익은 924억원, 당기순이익은 735억원으로 현대차증권은 예상했다.

이 같은 실적의 중심에는 굿즈(Goods·아이돌 상품) 시장과 음반판매, 공연수익 등이 있다. 굿즈 판매로 벌어들이는 연간 수익은 1000억원대를 넘어선 지 오래다. 아이돌 제작사 공식 굿즈를 비롯해 홈마(홈페이지 마스터·고화질의 사진을 촬영해 공유하는 팬) 등이 직접 제작하는 사설 굿즈시장까지 그 영역은 다양하다. 1~2년 단위로 좋아하는 그룹을 바꾼다는 이모씨(36·세븐틴 팬)는 “멤버별 키링 같은 건 1만원대이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구입하고, 내가 좋아하는 멤버가 아니더라도 같이 팬클럽 활동을 하는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전부 다 산다”면서 “홈마들이 직접 만든 사설 굿즈, 손재주 있는 팬들이 만들어 트위터로 판매하는 각종 스티커, 인형, 슬로건 등도 많이 산다”고 말했다. 이씨는 “내 ‘최애’ 멤버가 활동을 많이 할 때는 한 달에 100만원까지도 굿즈를 사는 데에 써봤다”고 말했다. 실제 트위터에는 팬들이 직접 제작한 굿즈들을 판매하거나 재판매, 양도한다는 등의 글이 하루에도 수백 개 이상 게시된다.

CD 판매량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사양산업이 된 CD 제작·판매업이 아이돌 업계에서는 여전히 건재한 이유는 CD 판매량이 곧 팬덤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가늠자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초동(앨범 발매 후 첫 주 판매량) 물량과 전체 판매량은 아이돌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여기에 동원되는 것이 팬사인회다. ‘팬사컷’이란 팬사인회에 입장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CD 수량을 말한다. 무작위 추첨방식으로 팬사인회 참가자를 뽑는 경우 더 많은 앨범을 사서 추첨에 응모해야 뽑힐 가능성이 높아진다. CD 한 장당 한 개의 추첨권이 들어 있기 때문에 많은 CD를 살수록 팬사인회에 당첨될 확률이 높아진다. 팬들 사이에서는 한때 BTS와 엑소 팬사컷에 걸리기 위해서는 200~300장까지 사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2018년 한 워너원 팬은 자신의 SNS를 통해 팬사인회에 당첨되기 위해 CD 213장을 구매, 426만원을 지출했는데도 탈락했다는 글과 인증사진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몬스터 엑스 팬인 정모씨(31)는 “팬마다 어디에 집중하는지가 다 다르다. ‘올콘(콘서트 일정에 모두 참여)’에 집중하거나, 해투(해외투어)에 집중하는 팬도 있고, 유독 팬사인회에 집중하는 팬들도 있는데 대형 기획사 팬사인회는 적어도 100장 정도는 사야 기대라도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런 게 너무 싫어서 대형돌(대형기획사에서 배출한 아이돌)에서 중소돌(중소기획사에서 배출한 아이돌)로 넘어온 케이스인데 ‘몬엑’은 20~30장 정도 사면 팬사인회 당첨이 된다”고 했다. NCT 팬인 이모씨(27)는 “해외에서 팬사인회 일정에 맞춰 들어왔다가 팬사인회 일정이 끝나면 출국하는 외국팬들은 300장씩 사서 팬사인회에 당첨되면 캐리어 가방 안에 구매한 CD를 넣어 공항에 버리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CD 1장당 가격은 1만5000~2만원 수준이다. 수입이 있는 직장인이거나 부모의 지원이 가능한 경우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지출을 이들은 자신의 아이돌들을 위해서 ‘기꺼이’ 하고 있는 셈이다.

해외투어 한 번 따라가는데 500만원

열성팬들은 1군 아이돌을 가르는 기준인 ‘잠실 체조경기장 하루 2.5만 명 3일 연속 동원’에 맞추기 위해 ‘올콘(콘서트 일정 전회 참석)’을 하고, 심지어 아이돌의 해외투어도 기꺼이 따라다닌다. 엑소 5년차 팬인 소영(37·가명)씨는 “2017~2018년 엑소 활동이 조금 뜸하던 시절 해투로만 1년에 2000만원씩 썼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콘서트는 표만 사면 되지만 해투는 비행기표·숙박·콘서트표값까지 모두 감당해야 하니 지출이 늘었다. 올스탠드(서서 관람)라도 하려면 1장당 80만원, 3일 연속 입장이면 240만원 정도 들어가니 해투 한 번 따라가면 500만원 정도 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도 유닛그룹인 EXO-SC(오세훈·찬열) 일본 콘서트에 다녀왔다.

결국 팬덤이 아이돌을 사랑하는 방식은 모두 아이돌들에게 ‘금전적 이익’으로 돌아가는 구조 속에서 팬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제작사 역시 팬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역학관계가 있는 셈이다. 엑소 팬들이 특정 멤버의 탈퇴를 주장하며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처럼, 아이돌 멤버들이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을 했을 때 목소리를 내고, 기획사는 이를 반영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결국 팬덤이 과거의 일방적 수용자 역할을 벗어나 적극적 소비자이자 ‘개입자’가 됐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Littor)>에 기고한 글 ‘팬덤, 머글들은 모르는 공동체’에서 팬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취향공동체에 감정공동체, 그리고 상품공동체라는 속성들이 모순적으로 얽혀 있는 형국이며, 실제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을 일종의 ‘러브마크(강한 애정과 존중감을 가지는 상품 형식)’로 소비하고 있다. 팬들은 스스로를 고객으로 인지하며, 그런 맥락에서 팬덤은 때때로 소비자공동체로도 변모한다. 그러니까 어떤 스타가 연애 스캔들을 일으켰다는 건 상품 자체에 흠결이 난 것으로 자신들의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는 사안이 된다. 여느 소비자운동이 그렇듯 불만접수는 당연한 것이며 때로는 환불과 손해배상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돌 관련 용어 모음

덕질: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해 몰입하는 모든 일련의 행위.
입덕: 入덕. 덕질을 시작하는 단계.
탈덕: 덕질을 그만두는 것.
덕통사고: 덕후+교통사고 합성어. 내 의도와 관계없이 교통사고를 당하듯 어느 날 갑자기 덕질을 하게 된 경우.
덕후: 덕질을 하는 사람.
성덕: 성공한 덕후. 아이돌을 좋아하다 자신이 아이돌이 되거나 해당 분야의 유명인이 된 경우에도 성덕이라 표현한다.
사생: 아이돌의 사생활을 쫓아다니는 극성팬.
악개: 악질 개인팬. 그룹 내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 외 타 멤버나 타 가수를 과하게 비방하는 팬.
일코: 일반인 코스프레. 아이돌 팬이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닌 척하는 것.
갠팬: 아이돌 멤버 중 특정 한 명만 좋아하는 팬.
올팬: 특정 멤버보다는 아이돌 멤버 전체에 고루 관심을 가지는 팬.
덕계못: ‘덕후는 계를 못 탄다’의 준말로 덕후는 노력에 비해 실제 아이돌을 만나기 어렵다는 의미.
머글: 덕후가 아닌 일반인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을 지칭할 때 쓰였던 말.
홈마: 홈페이지 마스터의 준말. 고화질의 연예인 사진을 촬영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는 사람. 아이돌 계에서 홈페이지는 통상 트위터 내 자신의 계정을 칭한다. 팔로워가 많을수록 영향력 있는 홈마로 등극한다.
총공: ‘총공격’의 준말. 아이돌이 상위군에 진입할 수 있도록 모든 활동에 팬덤의 지원을 집중하는 행위.
스밍: ‘스트리밍’의 준말.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곡을 음원사이트에서 반복 재생하는 것. 재생횟수가 많을수록 음원 순위가 높아진다.
공방: ‘공개방송’의 준말. 지상파 및 케이블 음악방송 프로그램을 직접 보러 가는 것.
사녹: ‘사전녹화’의 준말. 아이돌들이 모든 스케줄을 생방송 무대에 맞출 수 없을 경우 사전녹화를 한다.
해투: ‘해외투어’의 준말. K팝 열풍으로 국내 인기 아이돌 대부분은 활발한 해외투어 공연을 한다. 열성적인 팬들은 아이돌 해투 일정을 전부 따라가기도 한다.
공출목: ‘공항 출퇴근 목격담’의 준말. 팬들 사이에서는 ‘공출목은 지양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팬사: ‘팬사인회’의 준말.
팬사컷: 팬사인회에 당첨되기 위해 사들여야 하는 CD 수량.
팬아저: 해당 아이돌의 팬이 아닌데 홀린 듯 사진 등 영상을 저장하는 행위를 말함. ‘팬이 아닌데 저장’의 준말.
조공: 아이돌에게 선물을 주는 것.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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