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청년 정치세력과 손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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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복귀 후 행보가 보여주는 ‘중도결집 신당’ 메시지와 전략은

“총선 출마 안 한다. 다음 국회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진입시키는 것이 목표다. 모든 힘을 다해 돕겠다.”

지난 1월 19일 귀국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공항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그는 이날 야권의 중도·보수통합 논의에도 “관심 없다”며 참여할 뜻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그는 “정부·여당은 일 대 일 진영구도로 가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정계 복귀를 선언한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1월 19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서울시장 선거 패배 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같은 해 9월 출국한 지 1년 4개월여 만이다. / 이상훈 선임기자

정계 복귀를 선언한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1월 19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서울시장 선거 패배 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같은 해 9월 출국한 지 1년 4개월여 만이다. / 이상훈 선임기자

귀국 후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과 광주 5·18묘역을 참배했고, 설 연휴 전엔 조국 국면에서 참여연대를 탈퇴한 김경율 회계사와 조국 임명 반대 성명을 냈던 경실련을 방문했다. 연휴 후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를 만난 하루 뒤, 바로 탈당 선언을 했다. 확실한 존재감 과시다. 메시지도 뚜렷하다. 현 정부와 보수야당을 모두 기득권으로 규정하면서 반기득권·중도실용 세력을 규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할 ‘세력’은 있는 걸까. 기자는 유럽과 미국 체류 당시인 2012년 이래 그와 함께했던 다수의 인사와 접촉했다. 한때 안철수의 최측근으로 불리던 인사들 대부분이 그의 정치적 재기 가능성을 낮게 봤다. 함께할 ‘세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이 내놓은 답이다.

안철수 복귀 행보 가교역할은 누가?

김 회계사, 경실련과의 회동을 위해 중간에 가교역을 맡은 사람은 누구일까. 취재결과 싱크탱크 내일 사무국장을 역임한 모 인사로 확인됐다. 그는 과거 안철수의 행보와 관련 취재에서 거의 유일하게 연락이 닿지 않았던 인사다. 여기에 한 재야인사도 만남을 거듭 권유했다.

“불공정을 없애고 공정의 룰을 만드는 데 모든 힘을 쏟을 것이다. 청년세대를 위한 초석을 다시 놓겠다.” 1월 19일 공항에서 밝힌 귀국 일성이다. 지난 기사(1362호)에서 기자는 안철수 전 대표가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대신 여·야 정치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청년정치, 정치권세대교체에 백의종군하는 포지션으로 구도를 그릴 것으로 봤다.

여·야 각 정당의 청년인재 영입·공약 제시와 별도로 ‘청년정치’를 화두로 다양한 논의가 현재 진행 중이다. 1월 22일 창당선언을 한 ‘시대전환 정치네트워크(이하 시대전환)’가 대표적이다.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조정훈·이원재 공동대표를 묶는 공통의 경력은 싱크탱크 ‘여시재’다. 정치복귀를 선언한 안철수 전 대표가 홍석현 전 중앙미디어그룹 대표,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이끌고 있는 ‘여시재’와 손을 잡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었다. 안철수 전 대표가 펴낸 책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는 그 자신이 제2의 <안철수의 생각>이라고 밝힌 정치청사진을 담은 책이다. 책 출간일과 시대전환의 창당일은 1월 22일로 겹친다.

다른 청년정당들의 안철수 전 대표와의 관계도 주목을 받는다. ‘미래당’을 이끌고 있는 오태양 공동대표는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팬클럽 해피’s를 이끌던 인사다. 그는 이 단체의 사무국장이었다. 1월 20일 시대전환에 이어 1월 21일 창당준비위원회를 중앙선관위에 등록한 ‘브랜드뉴파티’(이하 뉴파티)를 이끌고 있는 조성은 위원장은 국민의당 비상대책위 위원(2016년)이 주요 정치경력이다.

그러나 각각의 청년정당들에 확대경을 가져다 대면 이야기는 정반대로 바뀐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행동과 실천이 미래를 앞당기고 일군다. 촛불혁명 이후에 대선과 지방선거가 있었다. 조국 장관 이슈가 있었고, 굉장히 많은 민생현안이 있었다. 한국정치도 변했다. 그 현장에서 누가 청년을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오태양 ‘우리미래당’ 대표의 말이다. ‘그 현장에 없었던 안철수는 자격이 없다’는 얘기를 우회해 말한 것이다. 바른미래당의 창당 과정에도 미래당과 악연이 있다. 이미 미래당이 창당했는데도 미래당 약칭을 한때 고집한 것이다. “우리가 미래당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을 안 전 대표가 몰랐던 것이 아니다. 안 전 대표는 미래당 정책토론회 행사에 와서 미래당 마이크를 잡고 축하발언도 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미래당의 존재를 알면서도 갑질 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말도 안 된다. 될 수 없는 그림이다.” 안철수와 시대정신의 행보가 묘하게 겹친다는 지적에 대한 이원재 시대정신정치네트워크 공동대표의 반응이다. “‘같이 안 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 안 전 대표는 2012년과 달리 2020년의 20대에서 40대 젊은 세대의 열망을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안 전 대표 역시 여·야의 기성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기득권 대변세력이라는 것이다. 시대전환은 2월 하순쯤 정식 창당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뉴파티를 준비하는 조성은 위원장도 국민의당 안철수계가 아닌 천정배 의원 추천으로 비대위 위원·공천심사위원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파티의 별샛별 사무총장(39·활동명)은 “청년정치를 대하는 기성정당의 태도는 정치의 극장화”라며 최근 미투로 낙마한 민주당 영입인재 2호 원종건씨 사례를 대표적인 ‘정치의 극장화 케이스’로 거론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 보좌관 출신인 그는 “정당정치가 바로 서야 의회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며, 그 주역은 청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정당도 2월 초순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조직되지 않은 청년’을 규합하는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청년정당들의 과거 안철수와 인연?

김 회계사나 경실련과의 만남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김 회계사는 안철수와 만나기 전에 만난다는 사실을 자신의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같이 새 단체를 준비하는 전성인 교수로부터는 ‘절대 만나면 안 된다’는 우려를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과거 재벌개혁 관련 입법 활동을 하면서 심상정이나 박용진 의원 등을 만났는데 안철수만 만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전 교수와 김 회계사 등은 ‘진영논리에 편승하지 않고 경제 권력을 감시하는’ 새로운 시민단체 ‘경제민주주의21’ 단체 창립을 준비하고 있다. 경실련과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안철수 쪽에서 안철수와 이태규 의원, 경실련 쪽에서 김헌동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과 윤순철 사무총장이 참여한 만남이었다. 경실련 측에서는 이 만남을 ‘비공식 만남’이라고 규정한다. 윤 사무총장은 “주로 부동산 문제 등에 대해 경실련의 입장을 말하고 안철수는 듣는 쪽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청년세대의 정치적 진출을 지원하겠다”는 안철수의 발언은 청년 정치세력들 사이의 논의구도에서 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당초 미래당과 시대전환, 뉴파티, 보수계열의 ‘내일을여는오늘’ 등 청년정치를 표방하고 나온 세력들 사이에서는 연합 내지는 ‘공동총선대응’ 논의가 있었다. 1월 28일에 열린 각 정당 대표자 비공개 회동에서는 각자 따로 창당 스케줄을 진행하되, 2월 중순 청년정치공동행사를 갖자는 수준의 결론이 내려졌다. 총선까지 남은 시간을 감안하면 통합이나 연합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결렬 말미엔 안철수의 행보도 고려할 변수 중 하나로 거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득권에서 배제된 청년을 정치의 주체로 불러내는 의제설정까지는 가능할 수 있지만, 일정한 세력화까지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시사평론가 김현성씨의 말이다.

김씨는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된 마당에 ‘청년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이 한국사회의 의제 다양성을 확장하는 데는 도움은 될 것”이라면서도 “대통령제 아래에서 다당제가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안철수도 기득권 바깥의 비기득권 세력을 불러내 중도정치세력으로 규합하려 할 것”이라며 “하지만 미래권력 창출로 이어지기에는 많은 난관을 넘어서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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