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탐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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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소탐대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秦)나라 혜왕은 촉나라를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촉은 그리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촉나라까지는 험한 산길과 벼랑으로 이어져 있어 고된 원정길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혜왕은 정공법 대신 변칙을 쓰기로 했습니다. 평소 물욕이 많은 촉왕의 심리를 이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혜왕은 옥으로 소를 조각한 뒤 그 속에 황금과 비단을 채워넣고 ‘촉왕에게 우호의 예물로 보낼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이를 들은 촉왕은 잔뜩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때 마침 진의 사신이 촉에 왔습니다. 사신은 선물 목록을 올렸고, 이에 혹한 촉왕은 하루라도 빨리 받고 싶어 백성을 동원해 옥으로 만든 소(玉牛)를 맞이할 길까지 새로 닦았습니다. ‘적의 계략일지 모른다’는 신하들의 간언은 무시했습니다. 길이 완성되자 혜왕은 대형 수레에 옥우를 싣고, 이를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중무장한 병력 수만 명을 붙여 촉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결국 수레는 진의 군사들과 함께 유유히 도성 안으로 들어왔고, 곧바로 무기를 꺼내든 진의 병사들은 성을 유린한 뒤 촉왕을 사로잡았습니다.

북제의 유주가 쓴 <신론>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작은 욕심에 눈이 멀어 큰 것을 잃는다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요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른바 ‘사인 훔치기’ 논란으로 시끄럽습니다. 2017년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 때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코치가 주동이 돼 상대편의 사인을 훔친 뒤 더그아웃에 있는 쓰레기통을 두드리는 방식으로 자기편 타자에게 투수의 구질을 알려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결국 휴스턴의 단장과 감독은 해고됐고, 구단은 정정당당해야 할 스포츠맨십을 저버린 팀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승리의 열매’란 눈앞의 달콤한 이익만을 좇다가 벌어진 ‘소탐대실’의 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사례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예를 들면 바둑을 둘 때 조그만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자신의 대마가 모조리 죽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는 그나마 ‘소탐대실’이라는 교훈과 함께 다음에 만회할 기회라도 얻습니다. 하지만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불법을 저지르다가 발각되고, 눈앞에 놓인 뇌물의 유혹을 못 이겨 덥석 챙기다가 자신의 신세까지 망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목격합니다. 정치권에서도 그런 일이 흔하게 일어납니다. ‘공천’이란 선물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당적을 옮기며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하거나, 선거 승리만을 위해 온갖 편법과 꼼수를 동원하다가 의원직까지 잃는 사례도 있습니다.

당장의 이익이나 승리가 궁극적인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길게 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한 템포 쉬어가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구약성경 ‘잠언’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속임수로 뺏은 빵은 달콤하지만 뒷날 그 입은 모래로 가득 찬다.” 많은 역사적 사건과 사실들은 작은 것을 탐하다가 나중에 큰 손해를 보고 후회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수없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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