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줄기 같은 ‘마약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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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이 하는 말을 믿어요? 진짜 이상한 기자님이시네….”

[취재 후]고구마 줄기 같은 ‘마약수사’

취재 중 마약사범들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지금도 어디선가는 (하던 대로)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한 번 마약을 해본 사람이 마약을 끊으려면 그동안 맺었던 모든 인간관계를 끊어야 한다”, “같이 마약하던 사람에게 연락만 하면 금방 구할 수 있는 게 마약”이란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마약유통이 많이 근절됐다고 합니다. “클럽 내 마약은 적어도 근절된 상태”라고도 했습니다. 살면서 마약을 본 적도, 마약을 해본 적도 없는 제 입장에서는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냥 마약수사는 ‘톰’과 ‘제리’의 쫓고 쫓기는 싸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톰은 마약 수사관이고, 제리는 마약사범들이죠.

지난 1월 14일 한 법원에서 마약 유통사범들에 대한 재판이 있었습니다. 해피벌룬 유통 및 마약유통으로 그 세계에서 이름난 ㄱ씨와 그 밑에서 소위 ‘바지사장’을 했거나 전달책 역할을 맡았던 마약사범 다수가 한꺼번에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ㄱ씨의 밑에서 마약유통을 봐주던 ㄴ씨가 독립해 마약유통을 하다 ‘톰’에게 잡힌 뒤 자신의 형량을 줄일 목적으로 ㄱ씨를 ‘톰’에게 불었습니다. 수사과정에서는 그 외 전달책들에 대한 정보도 터져나왔습니다. 똘똘한 한 놈만 잡으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달려나오는 게 ‘마약수사’란 속설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입니다.

대다수 일반 국민은 마약수사와 엮일 일이 없습니다. 마약수사는 마약을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하지 않는 한 ‘피해자가 없는 범죄’에 해당합니다. 수요자와 공급자만 있습니다. 마약을 체험할 일이 없는 수사관이 마약 유통업자를 잡아들이고, 밀수정보를 입수해 검거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마약 수사관은 늘 ‘제리’에게 당하는 ‘톰’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극히 일부의 마약 수사관 중에는 일부러 마약을 접했다가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마약수사는 각종 형사사건 가운데서도 가장 적발하기도, 검거하기도, 공소유지를 통해 유죄를 받아내기도 힘든 수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관련 기사를 쓸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이번에는 마약사범들의 ‘치유’에 대한 기사를 써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초범은 격리 및 처벌보다는 치료에 방점을 두는 게 마약근절에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약사범의 숫자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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