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국 3가지 키워드 ‘개헌·해산·포스트 아베’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개헌’·‘해산’·‘포스트 아베’. 2020년 일본 정국을 지배할 3개의 키워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올해는 ‘필생의 과업’이라는 개헌의 임기 내 실현 여부를 가늠할 분수령이다. 아베 총리는 개헌 논의를 진척시키기 위해 중의원 해산 시기를 탐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기 총리를 향한 ‘포스트 아베’ 후보들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2월 9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2월 9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아베, 중의원 해산 카드 ‘만지작’

아베 총리는 새해 들어 임기 안에 개헌을 실현하겠다는 의욕을 계속해서 내비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을 내 손으로 완수해나가겠다는 생각에는 흔들림이 없다”며 “개헌을 위한 행보를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진행해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전쟁 포기와 전력(戰力) 보유 금지를 규정한 현행 헌법 제9조에 자위대의 존재 근거를 마련해 ‘전쟁 가능한 국가’의 길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는 “우선 정기국회 헌법심사회에서 여야의 틀을 넘는 활발한 논의를 통해 국민투표법 개정은 물론 레이와(令和·현 나루히토 일왕의 연호) 시대에 맞는 개헌안 작성을 가속화시키고 싶다”고 했다.

아베 총리의 임기는 2020년 9월까지다. 여당인 자민당 내에선 임기 내 개헌을 위해선 1월 20일부터 6월 17일까지 열리는 정기국회 내에 개헌 절차를 정한 국민투표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야당은 아베 총리가 ‘벚꽃을 보는 모임’을 사적으로 활용했다는 의혹과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IR) 사업과 관련한 금품 수수 의혹 등을 추궁할 태세여서 뜻대로 될지는 불투명하다. 자민당의 한 간부는 <요미우리신문>에 “정기국회에서 개헌론이 진전을 보지 못하면 임기 내 개헌은 절망적”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아베 총리가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활용해 구심력 강화를 시도하면서 야당을 흔들고 개헌 여론을 끌어올리려 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아베 총리는 2017년에도 모리토모·가케학원 스캔들 국면을 ‘해산 카드’로 타개한 바 있다.

올림픽 전이냐, 후냐

아베 총리는 1월 12일 방송된 NHK의 <일요토론>에서 ‘개헌을 중의원 해산 명분으로 국민에게 신임을 물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해산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해산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하면 해산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향후 정치 일정을 보면 ‘해산 카드’를 꺼내들 수 있는 시기는 한정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월 6일 미에현 이세신궁을 참배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월 6일 미에현 이세신궁을 참배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정기국회에선 아베 총리가 “올해 최대의 도전”이라고 표명한 사회보장 개혁 가운데 연금·고용 법안을 심의한다. 오는 4월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일본 국빈 방문과 일왕의 동생인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가 왕위 계승 1순위인 고시(皇嗣)에 오른 것을 선포하는 의식이 예정돼 있다. 7월 5일에는 도쿄도지사 선거가, 7월 24일부터 9월 6일까지는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이 진행된다.

이런 일정을 감안했을 때 중의원 해산 시기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게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이 끝난 가을에서 내년 초까지다. 올림픽 열기로 각종 스캔들을 희석하고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정치적 성과로 내세우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공동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는 1월 6일 당 시무식에서 “가을이 되면 내년 중의원 임기 만료가 시야에 들어온다”며 “중의원 선거가 언제 이뤄질지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했다.

정기국회가 끝나는 6월에 중의원을 해산하거나 7월 초 예정된 도쿄도지사 선거와 같은 날 ‘더블 선거’를 치르는 방안도 거론된다. 다케나카 하루타카(竹中治堅) 정책연구대학원대 교수는 1월 8일 포린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이 높을 때 총선을 치르는 게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중도 퇴진론에 4연임론까지

아베 총리가 자신이 염두에 두고 있는 후계자의 존재감을 높이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이후 퇴진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나돌고 있다. 총리 주변에서는 “정치적 여력을 남긴 채 후임에게 양위해 개헌을 맡긴다”는 얘기가 나온다.

다만 아베 총리는 1월 7일 자민당 시무식에서 “유자는 9년 걸려 꽃이 활짝 핀다. 이 유자까지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2012년 12월 두 번째로 총리에 오른 뒤 9년차가 되는 내년 임기까지 총리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런 가운데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과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은 ‘아베 4연임론’에 군불을 때고 있다. ‘최장 3연임 9년’으로 돼 있는 당 총재 임기를 더 연장하자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중의원 해산 후 총선에서 압승할 경우 이런 4연임론이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할 경우 아베 총리의 4연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케나카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하면 미·일 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베 총리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베 총리는 NHK 프로그램에서 4연임론에 대해 “머리 한구석에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자민당 내에선 임기 중 개헌을 명목으로 총재 임기를 1년 한정으로 연장하는 ‘기책(奇策)’도 들리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다만 중의원 해산 카드는 아베 총리에게 ‘양날의 칼’이다. 개헌안 발의선인 3분의 2 의석을 상실할 경우 곧바로 레임덕이 올 수 있다.

퇴임론도 마찬가지다. 아베 총리는 최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에 대해 “배트를 붕붕 휘두르고 있다. 이제 곧 그 소리가 들려올 것”이라는 등 그를 후계자로 띄우는 발언들을 내놓고 있다. 온건파인 기시다를 내세워 개헌까지 이뤄내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의도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는 개헌을 후임인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에게 맡겼지만, 이케다는 개헌을 뒤로 미루고 경제성장을 최우선시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김진우 도쿄특파원 jwkim@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