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저물가 부른 ‘저금리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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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준금리 역대 최저치… 하반기 1.0%까지 낮아질 듯

주요국의 저금리 추세가 장기화되면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 당시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춘 이래 10년이 지난 지금도 좀처럼 경제활성화의 뚜렷한 출구를 찾지 못해서다. 금리를 낮추면 투자와 고용이 활성화되면서 소비가 늘어나고 경기가 활력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효과는 미미하고 오히려 경제의 ‘저금리 중독’이라는 부작용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역대 최저치인 기준금리 1.25%가 하반기에 1.0%까지 낮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코스피가 1월 13일 1%대 급등세를 기록해 전 거래일보다 22.87포인트(1.04%) 오른 2,229.26에 거래를 마쳤다. 사진은 이날 KEB 하나은행 딜링룸 모습. / 연합뉴스

코스피가 1월 13일 1%대 급등세를 기록해 전 거래일보다 22.87포인트(1.04%) 오른 2,229.26에 거래를 마쳤다. 사진은 이날 KEB 하나은행 딜링룸 모습. / 연합뉴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되자 당시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미국 0.0~0.25%, 영국 0.5%, 유럽중앙은행 1.0% 등으로 크게 내렸다. 통화량을 늘려 금융 마비를 막기 위한 사투였다. 세계 경제가 붕괴를 가까스로 모면한 것은 정부와 중앙은행이 이처럼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많다.

돈 풀어 위기 피하니 ‘또 다른 위기’

하지만 통화정책의 한계는 돈이 흘러가는 경로나 목적지가 뚜렷하지 않다는 데 있다. 시중에 돈은 많아졌는데 갈 곳이 많지 않다.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반(反)세계화 흐름이 두드러지고 미·중 무역분쟁을 비롯한 보호무역주의의 난기류가 거세지자 기업들은 위험을 회피하려 신규투자를 꺼리고 있다. 자동차나 반도체급으로 경제를 성장시킬 만한 새로운 ‘동력’도 뚜렷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유동성은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가며 ‘버블’을 키웠다. 국제결제은행(BIS) 등에 따르면 2018년 4분기 유럽 주요 도시의 주택가격은 2014년 3분기보다 크게 올랐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57%, 독일 프랑크푸르트 37%, 노르웨이 오슬로 25%, 포르투갈 리스본 16%, 프랑스 파리 13% 등의 상승률을 보였다. UBS은행은 지난해 10월 보고서를 통해 “세계 부동산 가격 상승이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정체기를 맞은 반면, 유로존에서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초저금리 정책 영향으로 주요 도시의 부동산 버블 가능성이 동반 상승했다”고 진단했다.

같은 기간 서울 주택가격 상승률은 17%였다. 하지만 이 수치는 평균치인데다 지난해 무섭게 뛴 강남 아파트값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시중에 돈을 푸는 통화 당국자들은 냉가슴을 앓는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 사이에 낀 가운데 가라앉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는 불가피했다”면서 “정작 풀린 돈이 부동산으로 쏠리니 정책을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처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목적지는 각종 고위험 자산 투자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과거와 달리 금융기관들이 수익 내기가 수월치 않아졌다. ‘잃어버린 20년’ 이래 저금리가 장기화된 일본에서는 예대마진이 축소되면서 이자수익 의존도가 높은 지방은행들이 경영난에 빠진 바 있다. 지난해 9월 기준 예치금 금리가 마이너스 0.5%인 유로존에서는 수익성이 타격을 입은 은행들이 4만 명에 이르는 인원 감축을 비롯한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비이자수익을 어떻게 내느냐가 관건이 된다. 지난해 벌어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는 이 같은 맥락에서 벌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은행들이 판매수수료 수익에 눈이 멀어 고위험 상품을 은행 창구에서 정확한 상품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채 불완전판매한 것이다.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왼쪽)이 2019년 11월 1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파생결합펀드(DLF) 관련 당ㆍ정 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왼쪽)이 2019년 11월 1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파생결합펀드(DLF) 관련 당ㆍ정 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부동산에 돈 쏠리는 부작용 빚어

이와 관련, 클라스 크놋 ECB 이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유로존의 기록적인 저금리는 “거시경제 관점에서 보면 이는 제 발등을 찍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낮은 금리가 장기화되면서 고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커지는 반면, 젊은 세대는 불안정한 미래에 대비해 저축을 늘리면서 “물가상승 압력은 더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선진국에서 계속되고 있는 저성장·저물가 기조가 저금리 때문에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되는 셈이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9월 물가상승률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광범위한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의 장기적 하락)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저물가가 1920년대 미국과 같은 디플레이션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한 은행 관계자는 “미국 대공황 당시 ‘뱅크런(대규모 인출사태)’이 벌어질 때는 중앙은행이 따로 없어서 통화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반면, 현재는 중앙은행이 위기상황에 맞춰 면밀하게 대응하고 있다”면서 “디스인플레이션(낮은 수준의 물가상승)은 벌어질 수 있어도 과거와 같은 경기침체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방크는 지난해 12월 19일 기준금리를 0%로 인상하며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포기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리를 마이너스 1.25%로 낮추며 세계 최초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도입했던 릭스방크는 2015년부터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0.25~0.50%로 운용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1.1%로 하락하고 인플레이션도 목표치(2%)에 미달하는 등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는 전년 말 대비 90.6%까지 증가하고 부동산에 돈이 쏠리는 등 부작용은 커졌다.

저금리 기조의 빈부격차를 더 확대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전문가 카렌 페트루는 “서민들이 저축 및 노후대비를 할 때 인플레이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재산 축적을 하게 되면 더 가난해질 수 있다”면서 “금리가 낮아지면 성장한다는 이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산층의 경제활동이 활발할 때 나온 것이지만, 현재는 중산층이 붕괴해서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서 분석했다.

<최민영 경제부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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