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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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될 때부터 느낌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축축한 양말 빨래가 걸려 있는 어느 변두리 다세대주택의 반지하 방. 작은 창문 너머로 동네 골목이 내다보이는 첫 장면부터 그랬습니다.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스크린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들었습니다. 쉴새없이 굴러가는 빠른 전개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딴생각을 할 틈조차 영화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마음이 좀 무거웠습니다. 뒷맛이 씁쓸한 블랙코미디 같기도 했고, 섬찟한 호러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강렬했던 것은 ‘냄새’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우리 사회에 고착화된 계층을 포착하는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이었습니다.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난 뒤 이런저런 감상의 편린들이 스쳐갔습니다.

[편집실에서]날아라 한국영화

2020년 벽두, 한국 영화 100년사에 기념비가 될 만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기생충>이 1월 5일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외국어영화상을 품에 안았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기생충>은 지난해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하나인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제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외국어 영화상·감독상·각본상 등 총 4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습니다. 다음 달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상(오스카상) 시상식에 앞서 여러 부문에서 수상작 후보로 지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 세계 각지에서 <기생충>이 개봉된 후 수많은 평론가의 상찬이 이어졌고, 국내·외의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습니다. 아마 봉 감독 자신도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영화는 이제 작품성이나 흥행성, 촬영기술 면에서 세계 수준에 이를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많은 작품이 베니스·칸·베를린 영화제의 주요 상을 수상했습니다. 올해까지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영화 중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은 모두 27개. 이중 19개가 국내 작품입니다. 하지만 우리 영화가 넘지 못한 벽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오스카상입니다. 일본만 해도 영어가 아닌 언어로 제작된 영화에 주는 ‘국제영화상(외국어영화상)’을 4차례나 받았지만 우리 영화는 지난해까지 출품한 29개 영화 중 단 한 작품도 후보작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1963년 고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시작으로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29개 작품이 도전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오는 2월 9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으로 뜨거운 시선이 쏠릴 것입니다. 모두가 <기생충>의 수상을 바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능성도 높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수상에 실패하더라도 세계인이 이미 우리 영화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봉준호 감독도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모두가 영화라는 언어로 통한다”는 수상소감을 밝혔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 말에 공감했습니다. 봉 감독은 단순히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를 넘어 ‘문화의 힘’이 무엇인지 입증해 보여줬습니다. 한국 영화가 더 높이 날아오르길 기대합니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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