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로 ‘진화’한 인강 스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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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강사 강의 듣는 학생들의 ‘덕질’로 일반인 인기까지 얻어

일상을 중계하는 라이브 영상도 방송하고, 사진을 담은 달력처럼 ‘굿즈(기획상품)’도 나온다. 인터넷 강의(인강) 업계에서 선두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유명 강사들의 이야기다. 팬을 자처하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강사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지점만 골라 강의 영상을 편집해 올리는 등 ‘덕질(팬 활동)’을 유도하는 콘텐츠도 만드는가 하면, 자신을 스타로 ‘강제 변신’시켜주는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선물을 싸들고 일선 학교까지 찾아간다. 학부모들도 자녀가 인강 강사의 수업 영상을 보고 있으니 야단을 쳐야 할지, 독려를 해야 할지 헷갈린다. 유튜브 시대가 만든 사교육 강의의 변화상이다.

인터넷 강사 정승제씨가 수강생들과 만난 현장에서 수학 강의를 하고 있다./정승제 강사 유튜브 캡처

인터넷 강사 정승제씨가 수강생들과 만난 현장에서 수학 강의를 하고 있다./정승제 강사 유튜브 캡처

“K팝에 대해 들어봤어? 이젠 K매스(math·수학)를 알아야 할 때다.”

2017년 11월에 올라온 ‘2018 수능대비 직전 모의고사(나) 주요문항 해설강의’라는 제목의 영상에 달린 인기 댓글이다. 인강 업계에 분 유튜브 열풍의 시초는 이 영상이 느닷없는 인기를 끌기 시작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업로드 당시로선 조회수 10만 회를 넘기기도 어렵던 인터넷 강의 영상이 지난해부터 뒤늦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1월 9일 현재 조회수는 238만 회, 댓글 수는 1만 개를 돌파했다. 해당 영상은 대입 수학 강의를 맡고 있는 주예지 강사가 나오는 평범한 모의고사 문제풀이 강의지만 주씨의 외모 덕에 전 세계에서 외국인들이 몰려들었다. “한국어는 모르지만 수학 강의 내용은 이해할 것 같다”는 식의 유쾌한 댓글이 달리고, 1시간짜리 강의 영상에서 주요 장면만 모은 3분짜리 편집본까지 팬들이 직접 만들어 올렸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 끈 강의 영상

현재 주씨는 인터넷 강의 전문업체 스카이에듀 소속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유튜버로의 ‘변신’을 자처한 주씨는 지난해 12월 신설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신을 스타로 만든 영상의 댓글을 직접 읽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국제적으로 수학을 알리는 유명인이 된 데 대해 “처음에는 ‘대박’, ‘신기하다’는 생각이었는데 조회수 100만이 넘어가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자신도 유튜브 채널을 열었지만 “유튜브의 세계는 아직도 잘 이해를 못 하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팬의 지원을 바탕으로 입시용 인강 업계는 물론 입시와는 무관한 일반인들의 인기까지 얻은 경우는 현재 이투스와 EBSi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정승제 강사도 비슷하다. 정씨 역시 인강 사이트에 올라오는 강의 영상 외에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영상을 올린다. 수학 강의와 관련된 내용도 있지만 먹방을 비롯해 취미인 노래를 부르는 모습, 고등학교로 찾아가 학생들을 위한 선물을 전해주는 모습 등 분야도 다양하다. 올라온 영상마다 “EBS 공채 1기 개그맨”이라는 우스개 댓글이 달릴 정도로 그는 재치있는 입담으로 유명해졌지만 무엇보다 그의 강의를 찾아듣던 학생 팬들의 지원이 유명세의 근원이 됐다. 특히 정씨의 공식 채널보다 ‘정승제사생팬’ 채널의 구독자수 및 총 조회수가 더 높을 정도로 팬들이 앞장서 그를 인플루언서로 강제 전환시킨 것이다.

정씨는 자신의 성공이 의외로 다른 강사들이 눈여겨보지 않던 수학 강의의 기본을 다시금 환기시킨 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고3 입시 수학을 가르치는 강사들이 수능에 맞춘 문제풀이만 계속하고 있을 때 수학을 포기한 ‘수포자’로 고3이 된 학생들에게 중학 수학의 기초를 다지는 방법부터 차근차근 일러줬다는 것이다. 결코 규모가 적지 않지만 외면받던 수포자들에 초점을 맞춘 덕에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누구보다 열성적인 팬들로 변했다. 정씨는 “처음 업계에 진출했을 당시 나 같은 꼴찌 강사한테는 업체들이 불친절해서 영상 녹화나 인코딩 같은 것을 다 알아서 해야 했다”며 “그래서 고3들이 보는 강의 영상으로 중학교 수학의 기초부터 담아서 가르쳤는데 그것이 호응을 얻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강의시간 대폭 줄인 ‘숏 콘텐츠’ 선보여

주요 인강 사이트마다 스타 강사를 비롯한 강의진을 갖추고 벌이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스타 강사 가운데서도 서로 다른 전략을 시도하는 강사들이 구분되고 있다. 강의의 인기를 바탕으로 이미 소속업체의 임원급 위치에 오른 전통적인 강사들은 대체로 강의에만 주력하며 경영에도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반면 젊고 외모나 입담 등 수강생들에게 매력을 자랑할 요인을 갖춘 스타 강사들은 유튜브를 통해 학생뿐만 아니라 비수강생 팬들의 인기까지 흡수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어과의 유대종 강사, 사회과의 이지영 강사 등도 인강 수강세대의 연령이 낮아지면서 ‘유튜브 세대’를 끌어안기 위해 적극 나서는 이들이다.

단과반이나 종합반 같은 용어가 있던 당시 오프라인에서 입시학원을 찾아가 직접 강의를 들어야 했던 세대인 학부모들은 이러한 입시 인강시장의 변화에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고2 자녀를 둔 학부모 정승일씨(46)는 “내가 고등학교 다닐 적엔 대형학원의 유명 강사 방학특강을 들어보려고 몇 시간을 줄 서서 수강권을 받아 등록한 기억이 있는데 이젠 집에서 편하게 태블릿으로 영상 보면서 공부한다”고 말했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분명 화면의 주인공을 보며 웃고 즐거워하는데 알고 보니 교과 인강이라는 점이다. 한 인강 업체 관계자는 “한 시간에 가까운 강의시간 동안 교과 내용만 가르치면 학생들의 집중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잠깐씩 화제를 돌리면서 학생들을 주목하게 만드는 노하우가 인기 강사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업계에서는 아예 강의시간을 대폭 줄여 짧게는 5분에서 길어야 15분 정도로 압축한 ‘숏 콘텐츠’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짧은 영상에 익숙한 10대 학생들에 맞게 기존 60분 인터넷 강의를 10~15분으로 줄이면서 내용과 강의 형태도 새롭게 구성했다. 틈틈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려는 수강생들의 수요와 학습 패턴에 맞춰 자기계발을 원하는 직장인용 인강 콘텐츠 역시 변하고 있다. 휴넷이 개발한 직장인 대상 콘텐츠 제작 도구 역시 기존 영상의 내용을 압축해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영상 기획 업무를 총괄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내용에 충실하더라도 길고 지루하면 아예 수강생들에게 노출될 기회를 잃게 되기 때문에 강사들이 자신의 얼굴을 걸고 수강생들에게 다가서고 있다”며 “업체들도 숏 콘텐츠라고 해서 요약에만 치중하는 영상을 만드는 대신 핵심을 최대한 잘 전달하는 기법을 개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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