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도우미 ‘토론토 내야 특별한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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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10년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2019년 12월 28일, 류현진은 어색하고 긴장된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월드시리즈 마운드에서도, 올스타전 선발 투수로 나섰을 때도 표정에 흔들림이 없던 류현진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흰 바탕에 팀 마스코트인 붉고 푸른색 어치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었다. 등에는 자신의 오랜 번호 ‘99번’이 새겨졌다. 떨리는 목소리로, 준비한 인사를 했다. 영어로 “헬로 캐나다”라고 인사한 뒤, 프랑스어로 “봉주르”라고 덧붙였다. 차근차근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류현진은 “토론토 블루제이스라는 팀을 자랑스럽게 만들겠다”고 당차게 밝혔다.

메이저리그 토론토에 4년간 8000만 달러(930억원)에 계약한 류현진이 2019년 12월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메이저리그 토론토에 4년간 8000만 달러(930억원)에 계약한 류현진이 2019년 12월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류현진은 토론토와 4년 8000만 달러라는 거액에 계약했다. 내셔널리그 서부에서 아메리칸리그 동부로 옮겨 새 시즌을 맞는다. 이제 토론토의 에이스 역할을 한다. 토론토 공식 트위터는 이날 내년 3월 27일 개막전을 알리면서 토론토 유니폼을 입고 공을 던지는 류현진의 사진을 함께 실었다. 류현진은 이미 개막전 선발로 확정된 모양새다.

소속 리그 야구장들은 타자 친화적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는 메이저리그에서도 가장 경쟁이 치열한 디비전이다. 전통의 강호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버티고 있는데다 최지만이 뛰고 있는 신흥 강호 탬파베이가 있다. 볼티모어의 성적이 최근 수년간 좋지 않지만, 역시 만만치 않은 팀이다. 지명타자제도가 있는 아메리칸리그라는 점도 투수에게는 불리한 요소다. 보통 9번 타순에 들어서는 투수를 비교적 쉽게 잡아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2019시즌 내셔널리그 전체 평균자책점은 4.71이었지만 아메리칸리그는 4.95였다.

무엇보다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의 야구장 대부분이 타자 친화적 구장이란 점이 류현진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류현진이 가장 많이 뛰게 될 토론토의 홈구장 로저스 센터 역시 투수에게 불리한 구장이다. ESPN의 파크팩터(야구장의 특성·1을 기준으로 그보다 높을 경우 타자에게, 낮을 경우 투수에게 유리하다)에 따르면 로저스 센터의 2019시즌 홈런 관련 파크팩터는 1.317로 메이저리그 30개 구장 중 가장 높다. ‘투수들의 무덤’으로 유명한 쿠어스필드의 1.266(3위)보다 높다. 파크팩터는 해마다 조금씩 바뀌지만, 로저스 센터는 2019시즌 ‘홈런 공장’이었다는 뜻이다. 양키스타디움은 2018시즌 홈런 파크팩터에서 1.166으로 6위에 올랐다. 볼티모어 홈구장 오리올스 파크는 매년 파크팩터에서 타자 유리한 쪽으로 상위권에 오르는 대표적인 타자 친화 구장이다.

보스턴의 홈구장 펜웨이 파크는 좌투수에게 더 불리하다. 펜웨이 파크 왼쪽 외야 담장은 거리가 짧은 대신 그린 몬스터라는 커다란 벽이 있다. 다른 구장이면 잡힐 타구가 담장 맞고 2루타가 되는 경우가 많다.

류현진은 이중고, 삼중고가 쌓인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거꾸로 류현진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가 제격인지도 모른다. 류현진의 ‘특별한 능력’ 덕분이다.

류현진은 자신의 가장 강한 무기 체인지업을 통해 우타자를 효과적으로 제압한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통산 우타자 상대 타율이 0.243으로 좌타자 상대 타율 0.263보다 더 낮았다. 물론 류현진은 2019시즌 좌타자 상대 타율을 0.199로 떨어뜨리면서 리그 최고 투수로 이름을 알렸다.

우타자를 확실하게 잡아낼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류현진이 타자 친화적 구장들이 즐비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오히려 맹활약할 수 있는 근거는 류현진 특유의 장타 억지력에 있다. 류현진은 강속구 투수가 아니지만, 탁월한 제구력으로 상대 타자들의 타구 속도를 억제했다. 류현진의 피타구속도는 평균 83.5마일로 메이저리그 전체 투수 중 500타자 이상 상대한 투수 가운데 상위 4%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타구속도가 곧 비거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류현진의 탁월한 타구속도 억지력은 그만큼 장타를 덜 맞는다는 뜻이다. 류현진은 9이닝당 홈런 0.8개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9시즌 메이저리그 전체 3위에 해당한다.

류현진 살아남기 성공 열쇠는 ‘땅볼’ 유도

류현진이 홈런을 덜 맞는 이유는 타구 속도를 떨어뜨려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땅볼 유도에 능하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스트라이크 존 가장자리에 던지는 비율이 44.2%로 리그 평균 39%를 훌쩍 넘긴다. 탁월한 제구력과 비슷한 코스에 다양한 구종을 던질 수 있는 능력 때문에 타자들이 공을 정확히 때리기 어렵다. 제대로 안 맞으면 땅볼이 나온다.

류현진은 2019시즌 땅볼/뜬공 비율이 1.06이었다. 메이저리그 전체 8위다. 땅볼 유도 전문 구종인 싱커 비율이 겨우 10%를 넘는 데 불과하지만, 각도 큰 커브와 움직임 좋은 체인지업으로 땅볼을 끄집어낸다. 2019시즌 최고 홈런 공장이었던 로저스 센터에서 류현진이 살아남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 역시 바로 ‘땅볼’이다.

LA 다저스에서도 류현진은 ‘땅볼 마왕’이었다. 주자가 나가 있을 때 더욱 집중력을 높였고, 땅볼을 이끌어냄으로써 실점을 막았다. 2019시즌 류현진의 득점권 피안타율은 0.186밖에 되지 않는다. 다저스 수비진이 류현진의 땅볼 처리를 도와준 덕분이기도 하다. 다저스는 과감한 시프트를 이용해 땅볼 타구를 처리했다. 2019시즌 다저스는 총 2975차례 시프트를 사용해 시프트 비율 50.6%로 30개 구단 중 전체 1위였다. 특히 다저스는 우타자 상대 시프트도 전체 우타자 타석의 42.2%나 사용하는 등 좌우 타자를 가리지 않았다.

토론토 역시 데이터를 중시하는 구단이고, 시프트를 사용하지만 토론토의 시프트 사용 비율은 28.5%로 메이저리그 구단 중 중간쯤에 해당하는 12위다. 대신 토론토 내야진에는 류현진의 땅볼을 처리해줄 특별한 무기가 있다. 바로 DNA다.

토론토 내야진은 1루수 트래비스 쇼, 2루수 캐번 비지오, 유격수 보 비셰트, 3루수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로 이뤄진다. 트래비스 쇼를 빼면 3명은 모두 지난해 데뷔한 신인들이다. 젊은 선수들이라는 점 외에 또 다른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 이들 4명이 모두 걸출한 메이저리그 스타 아버지를 둔, ‘2세’ 야구선수라는 점이다. 3루수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의 아버지 블라디미르 게레로는 몬트리올과 에인절스 등에서 뛴 걸출한 강타자다. 2루수 캐번 비지오의 아버지 크레이그 비지오 또한 휴스턴의 전성기를 이끈 ‘킬러 B’ 중 한 명이었다. 게레로와 비지오 모두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보 비셰트의 아버지 단테 비셰트도 올스타에 4차례나 뽑힌 스타 출신이다. 쇼의 아버지 제프 쇼는 LA 다저스에서 박찬호의 승리를 지켜주던 마무리 투수로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하다.

토론토 내야진은 아직 어린 만큼 조금 약한 편이다. 하지만 탁월한 아버지를 둔 2세 선수의 DNA는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2018년 30개 구단 중 꼴찌였던 토론토 수비는 2019시즌 24위로 조금 나아졌다. 2020시즌에는 더 큰 성장이 기대된다.

<이용균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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