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숲을 걸으면 청량해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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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많은 분들이 동해로 해돋이를 보러간다. 정동진에서 속초로 올라가다보면 있는 강릉 오죽헌에 종종 들른다. 대나무숲에 부는 소리가 스님의 죽비소리처럼 한 해의 묵은 때를 털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곧게 뻗은 줄기를 볼 때면 그 기세를 닮고 싶어진다. 이 대나무를 한의학에서 여러 가지 약재로 쓴다.

중국 황산의 대나무숲. 대나무는 볏과 대나무아과에 속하는 상록성 식물의 총칭으로, 대표종인 왕대가 우리나라에서 널리 식재되고 있다./위키피디아

중국 황산의 대나무숲. 대나무는 볏과 대나무아과에 속하는 상록성 식물의 총칭으로, 대표종인 왕대가 우리나라에서 널리 식재되고 있다./위키피디아

대표적으로 죽엽(竹葉)은 “중풍으로 말이 어눌해지거나 못하고, 열이 몹시 나면서 두통이 심한 데 주로 쓴다. 깜짝 놀라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몹시 답답한 증상에 효과가 좋다. 딸꾹질, 임신부의 어지러움, 소아의 경기를 치료한다”고 문헌에 나온다. 비슷하게 죽여(竹茹)라는 약재가 있다. 한국에서는 대나무아과에 속한 솜대의 줄기 외피를 제거한 중간층이다. 중국에서는 청간죽(靑稈竹)의 줄기에서 외피를 제거하고 녹색을 띤 중간층을 실 모양 또는 얇은 선 모양으로 만들어 그늘에 말린다. 뽀송뽀송한 솜처럼 느껴지는 이 죽여는 죽엽과 효능이 비슷하다. 속이 답답해 잠을 못 자거나 긴장으로 인한 울렁거림과 구역감에 효과가 좋다. 임신 초기 입덧이 강한 분들에게 차처럼 처방한다.

죽력(竹瀝)은 솜대의 줄기를 불에 구워 얻은 즙액이다. 한동안 육아카페에서 아이들 경기나 발열에 효과가 좋다고 소문나 한의원에 많이 찾아왔다. 실제 <동의보감>에도 소아의 열성 질환으로 인한 혼절이나 중풍 초기에 처방을 권한다. 다만 만드는 법이 까다로워 유통되는 것 중 제대로 된 것을 구하기가 힘들다. <동의보감>을 보면 “크고 푸른 대나무를 6~8㎝ 정도 되도록 자르고, 두 쪽으로 갈라 우물물에 하룻밤 담가둔다. 벽돌 두 개를 나란히 놓아 대나무 조각을 벽돌에 올려두되, 양 끝이 3~4㎝ 정도 나오게 해야 한다. 그 밑에 강한 불을 지피고 대나무 양 끝에는 접시를 두어 떨어지는 액을 받아낸다. 이것을 잘 모아 솜으로 걸러내 찌꺼기를 없애고, 사기병에 저장해둔다. 여름에는 얼음물에 담가 변질되는 걸 막아야 하고, 겨울에는 얼지 않도록 따뜻한 곳에 두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냉장고와 앰풀 포장으로 보관은 쉽지만, 정밀하게 만드는 건 요즘에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죽력을 써야 할 때면 서너 군데 약재상에서 받아 하나하나 맛과 색을 보는데 실제로 쓸 만한 건 하나 정도다. 약간 탄내나 훈제향이 나는 것은 만드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것이라 괜찮으나 많이 시큼하거나 매우면 안 된다. 약간 달짝지근한 맛이 나야 한다. 잘 만들어진 죽력은 경기를 진정시키고 몸이 굳고 관절에 마비감이 오거나 급작스러운 열성 경련에 효과가 좋다. 다만 죽력만 먹으면 소용없다. <동의보감>에 “생강즙이 없으면 경을 운행하지 못한다. 죽력과 생강 비율을 6 대 1로 삼아야 한다”고 나온다.

권혜진 원장

권혜진 원장

자주 접하는 죽순(竹筍)은 식감이 연하면서 아삭해 먹으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동의보감>에는 “갈증을 멎게 하고 소변이 잘 나오도록 돕고, 번열을 없애면서 기를 보한다”고 되어 있다. 대나무숲을 걸으면 청량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처럼 전체적인 대나무의 특징은 청열(淸熱), 열을 식혀주는 것이다. 여기에 하얀 눈까지 내린 대나무숲은 깨끗하고 곧게 살아가라는 기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담양과 전주 경기전(慶基殿)의 눈 내린 대나무숲이 그립다.

<권혜진 청효대동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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