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신화’ 주역들 열정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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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신화라는 황홀한 추억을 안긴 2002 한·일월드컵이 막을 내린 지 벌써 18년이 흘렀다. 간절히 바랐던 월드컵 첫 승과 16강이라는 벽을 단숨에 넘어선 한국 축구는 세계 무대의 강자로 군림했다.

세월이 흘러 23명의 영웅이 모두 축구화를 벗었지만, 또 다른 무대의 주인공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들은 지도자와 해설자, 행정가, 방송인 등 다양한 영역을 오가면서 한국 축구에 긍정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2002년 6월 22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을 이기고 4강에 오른 태극전사들이 환호하며 운동장을 돌고 있다./연합뉴스

2002년 6월 22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을 이기고 4강에 오른 태극전사들이 환호하며 운동장을 돌고 있다./연합뉴스

축구인의 정석? 지도자만 15명!

한·일월드컵 멤버들이 자신의 역량을 가장 잘 발휘하는 분야는 역시 후배 양성이다. 한국 축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K리그부터 일본 J리그와 중국 슈퍼리그 등에서 활약하는 지도자만 15명에 달한다. 흥미로운 것은 현역 시절 월드컵에서 보여준 활약상과 지도자로 보여주는 지략 능력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거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74·현 PSV 아인트호번 고문)의 중용을 받지 못한 최용수 서울 감독(47)과 윤정환 제프 유나이티드 감독(47)은 국내·외에서 지도자 경력과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다.

특히 최용수 감독은 2011년 서울에서 처음 사령탑에 오른 뒤 K리그(2012년)와 FA컵(2015년) 정상에 올라 K리그 감독상(2012년)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감독상(2013년)을 수상해 지도자로는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용수 감독은 중국의 장쑤 쑤닝(2016~2017년)으로 잠시 떠났으나 2018년 다시 서울로 복귀해 활동하고 있다.

최용수 감독에 버금가는 커리어를 쌓은 것은 황선홍 감독(52) 정도다. 황선홍 감독은 선수로는 가장 빠른 2003년 은퇴해 전남 드래곤즈에서 코치로 4년간 재직한 뒤 2008년 부산 아이파크에서 처음 사령탑에 올랐다. 황선홍 감독은 2011년 친정팀인 포항 스틸러스로 무대를 옮겨 첫해 정규리그 2위에 오르더니 이듬해 FA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13년에는 K리그와 FA컵에서 2관왕에 오르면서 지도자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2016년 최용수 감독 대신 FC서울을 맡아 다시 한 번 K리그 우승에 성공한 황선홍 감독은 잠시 공백기를 가졌지만 올해 대전 시티즌 감독으로 내정돼 부활을 예고했다.

유상철 감독(49)은 상대적으로 경력이 짧지만 다른 방식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6년 울산 현대에서 은퇴한 직후 TV 예능프로그램인 <날아라 슛돌이>에서 3년간 감독으로 활동했는데, 이 시기에 키워낸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이강인(19·발렌시아)이다. 지난해에는 갑작스러운 췌장암 투병 중에도 인천 유나이티드의 잔류를 이끌면서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유상철은 올해 지휘봉을 내려놓고 인천 명예감독에 선임됐다. 지금도 병마와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김남일 성남FC 감독(43)과 설기현 경남FC(41) 감독은 지난해 12월 26일 나란히 프로 무대의 첫 지휘봉을 잡은 초보 지도자다. 현역 시절 ‘군기반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김남일 감독은 성남을 맡으면서 “빠따(방망이) 대신 빠다(버터)”라고 말해 달콤한 변신을 예고했다. 무대는 다르지만 김태영(50)과 차두리(40)도 같은 시기에 지도자로 본격적인 도전에 나선다. 줄곧 코치로 경력을 쌓은 김태영은 K3리그 천안시청 지휘봉을 잡았고, 차두리는 서울 산하 유스팀인 오산고에 신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축구인이 필요해!…해설가·방송인도 5명

‘4강 신화’ 주역들 열정은 끝나지 않았다

녹색 그라운드에만 2002년의 영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브라운관에서 자신의 재능을 풀어내는 이도 있다. 이영표(43)는 냉철한 분석과 날카로운 비판으로 사랑을 받는 해설가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선 분석이 정확한 것을 넘어 예언에 가깝다는 의미로 ‘인간 문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손흥민(28·토트넘)이 출전한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마이크를 잡았다. 마지막 현역인 현영민(41)은 2017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은퇴한 이래 JTBC에서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안정환 MBC 해설위원(44)은 출중한 외모와 뛰어난 축구 실력에 가려졌던 입담을 무기로 방송인과 해설가의 경계를 오가고 있다. 최근에는 <뭉쳐야 찬다>에서 감독직을 맡는 등 재능이 차고 넘친다. 안정환은 언젠가 지도자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로 최상위 지도자 자격증인 P급 라이선스 취득도 준비하고 있다.

반대로 방송에 전념하는 이들도 있다. 안정환과 함께 <아빠! 어디가?>에 출연한 뒤 해설가로 이력을 쌓았던 송종국(41)은 이제 전업 방송인에 가깝다. 송종국은 일부 한·일월드컵 멤버들과 각 지역을 누비며 예비역들과 축구 경기를 즐기는 <군대스리가>라는 축구 예능을 맡고 있다. 또 자신의 유튜브채널인 <송타크로스>를 통해 팬들과 만난다. 김병지(50)도 유튜브채널 <꽁병지TV>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시스템 정착을 위해 행정가의 길로 접어든 영웅들도 있다. 박지성(39)은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화려한 현역 시절을 보냈지만, 지도자로 보장된 꽃길을 거부했다. 박지성은 2016년 행정가 코스인 국제축구연맹(FIFA) 마스터스 과정을 수료한 뒤 이듬해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박지성은 국제축구평의회 자문위원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앰버서더를 겸하면서 경험을 쌓고 있다.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51)는 지도자에서 행정가로 과감히 변신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첫 메달을 따내는 위업을 달성하는 등 지도자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2017년부터 행정가로 변신해 한국 축구의 체질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남녀 축구에 대한 차별 철폐와 공부하는 축구 선수 육성 등이 모두 그의 손길 아래 진행되고 있다.

현역 시절 톡톡 튀는 행동을 보여줬던 이천수(39)는 거꾸로 은퇴 이후에는 행정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천수는 2019년 인천 유나이티드의 전력강화실장으로 부임해 변화를 예고했다. 팬들은 이천수가 행정가로 능력을 보여줄 것인지 반신반의했지만 첫해 극적인 잔류를 이끌면서 신뢰를 얻었다. 췌장암 투병 중인 유상철 감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올해 인천을 강팀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이자 구상이다.

<황민국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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