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중국 ‘사상통제 만리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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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교의 또 다른 이름은 ‘강남제일학부(江南第一學府)’다. 우리에게는 양쯔강으로 익숙한 ‘장강(長江)’ 이남에서 최고의 대학이라는 뜻이다. 1905년 설립된 중국 최초의 고등 교육기관인 푸단대는 베이징·칭화대와 함께 최고 명문대로 꼽힌다.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인 가운데 왕후닝 중앙정책연구실 주임과 한정 국무원 부총리가 푸단대 출신이다.

중국 최고 명문대 중 하나인 푸단대/웨이보

중국 최고 명문대 중 하나인 푸단대/웨이보

학칙에 ‘사상자유’ 빠지고 ‘애국봉헌’ 추가

중국 강남의 최고 명문대인 푸단대가 학칙인 장정(章程)에 ‘사상자유’와 관련한 문구를 빼고 대신 ‘시진핑(習近平) 사상’을 삽입했다. 홍콩 <명보>, <빈과일보>에 따르면 푸단대는 최근 장정의 일부 조항을 수정하면서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 사상의 자유나 학술의 독립에 대한 표현은 삭제하거나 줄였지만 공산당의 영도를 강조하고 시진핑 사상을 부각하는 내용은 크게 늘렸다.

우선 서문에 설명된 학교설립 이념 중 ‘사상자유’가 빠지고 ‘애국봉헌’이라는 구절이 들어갔다. “중국 공산당의 영도(지도)하에 당의 교육방침을 전면적으로 관철하고, 중국 공산당의 치국이정(治國理政)을 위해 복무한다”라는 구절도 새로 들어갔다. 제4조에 있던 “교수와 학생의 자치, 민주관리”라는 구절은 “중국 공산당 푸단대학위원회 영도하의 학장 책임제”로 바뀌었다. 교장의 독립적인 권한 대신 공산당 위원회의 관리를 앞에 내세웠다. 또 제9조에는 “시진핑 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으로 교직원과 학생의 두뇌를 무장한다”라는 구절이 삽입됐다. 사상과 학문의 자유, 학생 자치를 배제하고 당의 노선과 시진핑 사상을 철저하게 따르겠다는 내용으로 바뀐 셈이다.

푸단이라는 교명은 <상서대전(尙書大傳)> 중 ‘일월광화 단복단혜(日月光華 旦復旦兮)’에서 따왔다. 대학이 사회의 빛으로 해와 달과 함께 빛난다는 의미다. 그러나 바뀐 학칙을 보면 사회의 빛 역할보다는 공산당과 함께 빛나는 길을 택한 듯하다.

푸단대 학생과 교수 수십 명은 교내 식당에서 교가를 부르면서 개정에 항의했다. 학교 측은 장정은 수정했지만 교가 가사까지 바꾸지 못했다. “학술독립, 사상자유, 정치와 교육이 구속하지 않고, 속박 없이 앞으로 멀리 나간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푸단대 학칙 개정 비판에는 애국주의 성향의 신문인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 편집장까지 가세했다. 후 편집장은 이번 학칙 개정에 대해 “무제한의 정치적 교화를 추구하는 것은 대중의 분노를 낳고, 사람들 사이에 벽을 만들며, 사회적 신뢰를 침해한다”고 했다. 또 “민주주의와 자유가 사회주의 핵심 가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당국은 온라인에서 푸단대의 학칙 개정과 관련된 글과 동영상 등을 모두 차단하고 진화에 나섰다.

간쑤성의 한 지방도서관이 ‘불온서적’을 태우는 장면을 공개해 현대판 분서갱유라는 비판을 받았다. /진위안현 정부 홈페이지

간쑤성의 한 지방도서관이 ‘불온서적’을 태우는 장면을 공개해 현대판 분서갱유라는 비판을 받았다. /진위안현 정부 홈페이지

시진핑 사상 시험에 현대판 ‘분서갱유’까지

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한 이래 중국 공산당은 학계에 대해서도 당의 전면적 영도를 내세우고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사상의 자유 침해를 비판하는 교수들은 해고되거나 정직 처분당했다.

시 주석의 모교인 칭화대 교수도 시 주석의 독재정치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한 뒤 사실상 해고됐다. 쉬장룬 칭화대 법대 교수는 2019년 3월 학교 측으로부터 모든 강의와 연구 활동을 중단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학교 측은 급여 삭감과 지난 9개월간 발표한 글에 대해 전면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통지했다. 사실상 해직 통보다. 그는 2019년 7월 “시 주석의 일인독재 추세가 중국에 재앙이 될 수 있는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정치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로 경고를 받았지만 이후에도 시 주석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계속 발표했다. 또 다른 글에서는 “침묵이 우리의 영역에 군림하고 있다”면서 국가 검열을 비난했다.

중국의 사상통제는 학계를 넘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푸단대 교가에는 ‘사상자유’가 명시돼 있다.

푸단대 교가에는 ‘사상자유’가 명시돼 있다.

공산당은 2017년 제19차 당대회를 통해 ‘시진핑 사상’을 당장(黨章)에 삽입한 후 중앙선전부의 주도 아래 학교·기업·사회단체별 사상 학습을 강화하고 있다. 2019년 11월부터는 중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시진핑 사상 테스트’가 시작됐다. 중국의 신문·통신·방송사 그리고 인터넷 매체에서 취재나 편집에 종사하는 이들은 ‘신문 취재·편집인 양성 시험’을 치러야 한다. 이 시험에 합격해야 2020년부터 5년간 유효한 정식 기자증을 받을 수 있다. 이 기자증이 없이는 중국에서 취재 활동이 불가능하다. 시험 내용에 전에 없던 ‘시진핑 사상’이 추가됐다. 스마트폰 앱인 ‘학습강국’에 접속한 후, 60분 동안 객관식 100문항을 풀어 8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 테스트에 대해 “시진핑 사상을 심화 학습함으로써 기자의 취재력·안목·판단력·필력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대학가와 언론계를 중심으로 공산당 지배와 사상통제를 한층 강화하는 가운데 지방정부까지 가세했다. 중국의 한 지역 도서관이 소장 중이던 종교 출판물이 지도 이념에 맞지 않는 ‘불온서적’이라며 태우는 장면을 공개했다.

중국 간쑤성 칭양(慶陽)시 전위안(鎭原)현 정부는 홈페이지에 “전위안현 도서관이 편향성이 있는 서적·사진·영상자료 등을 전면 검사해 신속하게 소각했다”고 밝혔다. 사회에서 기증받은 불법 서적과 종교 관련 출판물, 특히 편향성 있는 출판물 등 서적 65권을 찾아내 불태웠다면서 사진을 공개했다. 도서관에서 불온서적을 처분하는 일은 새롭지 않다. 그러나 이전에 파쇄방식 대신 도서관 앞에서 불태우고 사진을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현대판 분서갱유’라는 비판이 이어지는 이유다. 지방정부까지 ‘시진핑 사상 관철’ 충성경쟁에 나서고 있어 사상통제 사례는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박은경 베이징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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