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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주목받은 인물 - 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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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멀어지는 보수 통합의 길

지난 1월 28일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내일 자유한국당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겠다”고 밝혔다. 홍준표·오세훈 후보가 거론되던 당시 상황에서 황 전 총리의 출마는 파격적인 뉴스로 보도됐다. 검사·법무부 장관·국무총리로 관료 생활만 한 황 전 총리가 정치인으로 첫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2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당대표 주재 최고위원, 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2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당대표 주재 최고위원, 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친박 그룹이 황 전 총리의 출마를 지원하고 나섰다. 한국당 내부에서는 ‘어대황’(어차피 대표는 황교안)이라는 말이 나왔다. 2월 27일 전당대회에서 황 전 총리는 결국 오세훈 후보를 누르고 한국당 대표로 당선됐다. 이때부터 제1야당인 한국당에는 ‘황교안 시대’가 열렸고, 올해 내내 그는 정치권 뉴스의 중심인물이 됐다.

탄핵 이후 구심점을 찾지 못했던 보수세력은 황 대표를 차기 대권의 유력한 주자로 지목하기 시작했다. 여론조사에서 황 대표의 개인 지지율도 껑충 올라 여권의 1위인 이낙연 총리에 버금가는 수치를 얻기도 했다. 한국갤럽의 정당지지율에서 10%대를 맴돌던 한국당의 지지율이 대표 취임 이후 20%대로 진입했다.

하지만 황 대표 체제는 보수세력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친박계인 한선교 사무총장을 임명하고 친박 일색의 지도부를 갖추면서 비판이 일었다. 각종 구설수로 논란이 일었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5·18 망언에 연루된 의원들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로 비판받았다. 4월 말 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지정되는 과정에서는 당내 의원들이 저지에 나서다 경찰·검찰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황 대표는 국회가 아니라 장외투쟁을 선택했다. 광화문 광장이 그의 무대가 됐다. 지난 12월 14일 광화문 장외투쟁에 나선 한 지역 인사의 전언에 따르면 “올해로 벌써 14번째”였다.

여름을 지나면서 황 대표에게는 숨통이 트이는 사건이 있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임명 과정에서도 청와대·여당과 검찰의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이다. 황 대표와 한국당은 조국 전 장관의 의혹을 물고 늘어졌다.

강경 일변도의 투쟁에서 그는 늘 맨 앞에 섰다. 삭발과 단식이 대표적이다. ‘조국 정국’에서 그는 삭발을 했다. 11월에는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및 공수처 설치 반대 등을 주장하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에 나섰다. 삭발과 단식을 통해 황 대표가 얻은 성과는 당내의 분란 제거였다. 8일 동안 단식하는 과정에서는 황 대표는 당직자 일괄 사표 후 친정체제를 구축했고, 현역 의원의 30% 물갈이를 선언했다.

1년 동안 황 대표는 관료형에서 야당 투사형으로 변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점잖은 외모에서 삭발 후 수염을 길러 강경한 이미지로 변신했다. 친박 그룹에서 벗어나 친황 체제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해석되고 있다. 수많은 금배지 앞에서 아직 단 한 번도 배지를 달지 못하는 정치 초년생으로서는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아직 정치인으로서 협상다운 협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뚜렷한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그가 내세운 보수 통합의 길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최근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를 앞두고 그는 국회 안에서 규탄대회를 열어 극성 지지자들을 국회 경내로 불러들였다. 장외 투쟁과 강경 일변도가 황 대표의 트레이드마크로 굳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내년 총선의 성패가 결국 그의 정치적 행로를 결정하는 최대 승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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