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삼성 ‘신경영 스타’가 산재노동자 된 까닭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단독]1994년 상 받은 근로자, 과로로 인한 우울증 퇴사 후 산재 인정

“한국은 좀 더 일해야 하는 나라다.”(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주 100시간 일할 자유도 주어져야 한다.”(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 노동시간 연장 요구가 곳곳에서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기업 경쟁력 하락을 이유로 주 52시간 상한제를 반대한다. 노동시간 연장을 위해 재계·자유한국당·보수 경제매체가 총공세를 벌이는 모양새다. 결국 정부 방침에 균열이 생겼다. 고용노동부는 직원 50~299명 기업에 대해 주 52시간제 계도시간을 1년 연장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 기조가 후퇴한 것이다.

1999년 삼성상 시상식. 오른쪽부터 배인수씨(가명),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출처 경향 DB

1999년 삼성상 시상식. 오른쪽부터 배인수씨(가명),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출처 경향 DB

1993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재계는 장시간 노동으로 기업 매출이 오른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는 과거 한국 기업이 ‘과로의 마법’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1993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추진한 ‘신(新)경영’이 대표적이다. ‘자식과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던 신경영의 핵심은 장시간 노동이었다. 신경영의 성과는 노동자의 노동을 극대화해 얻어낸 결실이다. 1993년 29조원이었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년 만에 380조원(2013년 기준)으로 13배 늘었다. 삼성의 신경영은 한국 사회에서 이견이 없는 혁신의 대명사가 됐다.

2019년 삼성 총수의 죄의 무게를 따지는 법정에서 별안간 ‘신경영’이 등장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에서 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의 이건희 삼성그룹 총수는 ‘삼성 신경영 선언’을 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며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제2의 신경영을 마련하라는 충고다. 재판부가 삼성 신경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발언이다.

그렇다면 삼성 신경영을 떠받치고 있던 노동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 배인수씨(가명·46)의 삶에서 신경영의 빛과 그림자를 볼 수 있다. 1994년 삼성 ‘신경영 스타(메모리 사업부 신경영 스타상 수상자)’였던 배씨는 지난달 정신질병(우울병에피소드)으로 산재 승인을 받았다. 입사 28년, 퇴사 12년 만에 그는 삼성의 산재노동자가 됐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31개월 동안 단 하루만 쉬고 일해

배인수씨는 중학교 때부터 삼성맨을 꿈꿨다. 경남 사천이 고향인 배씨는 구미전자공고를 졸업하면 삼성 취업에 유리하다는 얘기를 듣고 그 학교에 진학했다. 1991년 고교 졸업 직후 그는 삼성전자(반도체 기흥사업장)에 설비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계측 장비 유지·보수(PM)와 불량 점검이 배씨가 맡은 일이었다. 배씨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회사에 충성을 다했다. 고졸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더 오래, 더 많이 일했다. 성과를 인정받아 설비엔지니어에서 공정 엔지니어(대졸자 직급)가 됐고, 직급도 다른 노동자보다 빨리 올랐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 나왔다. 사내 방송에서는 매일 이 회장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회장은 늘 방송에서 “변해야 산다. 하면 된다. 나는 하루 3시간만 자고 신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성공에는 학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배씨는 ‘학력은 필요 없다’는 이 회장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노동 강도를 더 높였다. 그런 성과를 인정받아 배씨는 1994년 10월 삼성 신경영 스타상을 받았다.

1994년 10월부터 1997년 5월까지 31개월 동안 배씨는 단 하루만 쉬고 모두 일했다. 주말과 공휴일도 없었다. 당시 삼성반도체의 근무시간별 잔업코드는 평일(C:16시간), 토요일(C:11시간), 일요일·공휴일(F:8시간)로 분류했는데, 배씨의 일주일 잔업코드는 항상 C·C·F였다. 이동 대기시간을 제외하고도 주 99시간을 일한 것이다. 현장 노동자를 대표하는 신경영 모델로 선정된 배씨는 주기적으로 삼성전자 대표이사 등 간부들과 모임을 갖고 실적 개선 활동을 했다.

살인적인 노동시간이지만 배씨의 노동은 당시 삼성반도체에서는 일상이었다. 이미 1991년 삼성의 광고 <새벽 3시의 커피타임 이야기>에는 ‘밤낮을 잊은 연구… 연구팀은 여느 때처럼 새벽 3시에 커피타임을 가졌습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광고에 나온 연구직 노동자뿐 아니라 현장 생산 노동자 역시 하루평균 14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해왔다. 실제로 당시 삼성은 현장의 기술 학습을 중요시해 밤 11시 미팅을 했고 저녁 7시 수요공정회의를 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기업문화를 중시했다.(<세계 1위 메이드 인 코리아 반도체>·최영락)

배씨의 몸은 고된 노동과 업무 스트레스를 버티지 못했다. 1997년 6월 그는 사내 식당에서 쓰러졌다. 인근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고 병원에서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첫 발병 이후에 배씨는 병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우울증이 재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약을 처방받아 몸 상태가 호전되면 일을 했다. 성과를 두고 조별·개인별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치료에 전념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담당업무 외에 TPM(제안제도)에 따른 공정 개선 활동에 대한 실적 압박이 컸다. 아픈 와중에도 배씨는 1999년 삼성그룹 내 제안 마일리지 3위에 올라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삼성 제안상을 받았다.

1999년을 기점으로 배씨의 우울증은 만성질환이 됐다. 배씨는 1999년 6월 대학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회사생활이 어려웠다. 배씨는 “예전에 쉽게 처리할 수 있었던 일을 갑자기 할 수 없어 무서웠다”고 말했다. 당시 배씨가 소속된 부서에서는 ‘일을 너무 하다가 배인수 꼴 날 수 있으니 적당히 일하자’는 말이 돌았다.

[포커스]삼성 ‘신경영 스타’가 산재노동자 된 까닭

배씨는 2002년 사내 통신망을 통해 윤종용 당시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업무 편중 문제와 과로 문제를 개선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삼성이 운영하던 부회장 직통 고충처리 채널(일명 ‘부회장님께’)에 민원을 넣은 것이다. 윤 전 대표이사로부터 답신은 오지 않았다. 대신 배씨의 메일은 기흥사업장(현장기술팀)으로 되돌아 왔다. 배씨의 메일 내용이 다른 직원들에게도 알려졌다. 당시 현장부서 직원들은 배씨가 ‘그동안 다른 사람은 놀고 자기 혼자 일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대표이사에게 보냈다며 배씨에게 불편한 감정을 내비쳤다. 이후 배씨의 회사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편지 소동 이후 배씨가 다니던 대학병원에 삼성 직원들이 찾아왔다. 주치의를 만난 직원들은 배씨의 병세와 상태를 캐묻고 갔다. 당시 주치의는 배씨에게 ‘삼성 인사팀에서 찾아왔다. 삼성에서 비밀로 하라고 했는데 마음이 쓰여 얘기한다. 회사에서 언행을 조심하는 게 좋겠다’고 전했다. 배씨는 “당시 삼성에서 병원뿐만 아니라 가족(아내)을 찾아와 내가 진짜 아픈 건지 묻고 다녔다”며 “가족에게는 내가 회사에서 일 안 하고 노는데 뭐가 힘들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너무 예전 일이라 확인할 수 없다”면서도 “회사에서 직원이 다니는 병원을 찾아가 의료진을 만나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배씨는 결국 2007년에 퇴사했다. 이후 5년 동안 집과 병원을 오가며 치료에 전념했다.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재취업도 어려웠다. 처음에는 삼성반도체 경력 덕분에 쉽게 직장을 구했지만 한 달을 버티지 못했다. 결국 배씨는 신문 배달과 건설현장 일용직을 전전했다. 그나마도 우울증 증상이 심한 날에는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배씨의 가정은 엉망이 됐다. 이혼을 했고 하나뿐인 자녀는 7살 때 만난 뒤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퇴사 후 치료 전념해도 나아지지 않아

배씨는 자신의 질병이 삼성의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 보상에 해당하는지 문의했지만 삼성은 ‘정신질병은 보상 대상이 아니다’라며 지원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정신질병은 애초에 보상 논의 대상으로도 검토되지 않았다”며 “삼성에서 일했기 때문에 정신질병이 발병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산업재해라고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씨와 같은 과로와 업무 스트레스 인한 노동자의 재해는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중요한 관리 대상 가운데 하나다. ‘2012년 삼성 노사전략 문건’에는 잔·특근 과다 관련 사고 사례로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사망사고를 언급하고 있다. 문건에는 ‘2011년 1월 자살한 故 김OO 사원의 경우 3조 3교대이나 실제로는 12시간 맞교대 또는 주간 근무를 실시’했다며 ‘사고 전 9개월간 월평균 100시간 근무’했다는 사실이 명시돼 있다. 여기에는 또 “김OO 사원 유족들은 과다근로로 인한 우울증이 자살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실제로 삼성은 정신질병으로 인한 재해를 줄이기 위해 2011년 11월 ‘임직원 정신건강 관리 대책’을 수립해 이행한 바 있다. ‘노사전략 문건’에는 2012년 1월 정신건강 대책 이행 실태를 점검한 결과 “임직원의 고충사항이 적절히 해소되지 않으면 갈등 및 스트레스가 누적되며 자살, 노사사고 등이 증가”한다는 내용도 나온다.

하지만 퇴사한 직원 배인수씨는 삼성의 관리 대상이 아니었다. 배씨는 퇴사한 지 11년이 지난 2018년 10월 근로복지공단에 우울병에피소드(우울증)로 산재 신청을 했다. 공단은 13개월이 지나 산재를 인정했다. 공단은 요양·보험급여 결정 통지서에서 “업무량 증가에 따란 압박감이 상당했을 것으로 판단되고 주 60시간 이상의 업무를 수행해 심리적·육체적 스트레스가 높았다”며 “업무와 우울병에피소드 간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종란 노무사(반올림)는 “배씨의 산재는 노동자 쥐어짜기에 불과한 삼성 신경영의 실체를 보여준 사례”라며 “신경영의 성과는 현장 노동자의 과로와 재해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배씨는 “산재 인정은 받았지만 건강한 몸으로 퇴직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침해받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회사를 위해 일하다 병들었을 때 냉정하게 버림받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