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대 족벌비리 척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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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화 대책위 “가족 일감 몰아주기 등 공공연한 비위 감사청구”… 설립자 측 “오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법에서 하지 말라는 조항이 없는 것은 다 한다고 보면 된다.”

기자가 만난 경주 서라벌대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경주대·서라벌대·신라고등학교 등의 학교법인이 소속된 원석학원은 “대를 이어 설립자 일가가 단물을 빼먹는 사학왕국”이라고 말했다.

12월 6일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사학건전성강화와 경주대·서라벌대 정상화 공동대책위가 교육부 관계자에게 서라벌대 감사청구서를 전달하고 있다. / 전국대학노동조합

12월 6일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사학건전성강화와 경주대·서라벌대 정상화 공동대책위가 교육부 관계자에게 서라벌대 감사청구서를 전달하고 있다. / 전국대학노동조합

이 관계자는 4선 국회의원으로 건설교통위 위원장까지 역임한 설립자의 ‘의정보고회’에 자신이 동원됐던 ‘추억’을 비위의 증거로 제시했다. 2000년대 중반의 일이다. “나뿐이 아니라 한 학교에서 대여섯 명씩 차출됐다. 직원 부인도 시간 나면 의원 선거운동 사무실에 가서 도와야 했다. 선거사무실 사람들에게 밥 먹이고, 차 타주고 복사하는 것 같은 허드렛일 있지 않나.”

그와 다른 교직원들은 새벽 6시부터 2인1조 팀을 짜서 동네 경로당을 돌았다. “참석자 1인당 3000원가량 간식비를 지원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파리바게뜨에서 빵을 맞추면 아침에 대형트럭으로 수백 박스가 온다. 빵 두 개, 우유 1개씩 미리 포장 작업을 하고 현수막 걸고 대형프로젝터를 설치한다. 우리가 작업하는 동안 다음 장소에는 다른 팀이 가고, 또 가는 동네마다 아줌마들을 승합차에 태워 회관에 나르는 것도 우리 일이었다.” 그렇게 밤 11시까지 하루종일 돌고 다시 새벽 6시에 출근하는 강행군이 계속됐다. “웬만한 직원들은 다 차출돼 보름씩 불려갔다. 당시 걸렸으면 100% 선거법 위반인데….”

국회의원 선거에 동원된 교직원들

기자는 경주대와 서라벌대에서 김일윤 일가가 저지른 전횡 비위 의혹을 정리한 방대한 분량의 문서를 입수했다. 경주대 비위와 함께 문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서라벌대 관련 자료다. 문서를 건넨 전 교육부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사학비리를 저지른 다른 대학도 비슷하다. 보통 4년제 대학하고 2년제 대학이 같은 학원에 묶여 있는 경우, 4년제는 보는 눈도 많으니 티 나게 하기 어렵다. 반면 같은 재단의 2년제 비위는 더 심각하고 노골적이다. 왜? 주목을 덜 받으니까.”

2009년 김일윤 설립자의 장남 김재홍씨가 신임 학장(총장)이 되었다. 당시 만 34세였던 그는 임명과 동시에 전횡적으로 인적 구조조정 및 퇴출작업을 시작했다고 문건에는 쓰여 있다. 문건은 “측근으로 부서장을 채우는 한편, 소위 찍힌 교원들에게는 배정할 수 있는 강의도 제대로 배정하지 않고 오히려 시간강사를 배정하면서까지 또다시 면직만 하고 있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눈에 띄는 사례는 임모 교수의 경우다. 김재홍 총장 임명 전인 2008년 정년이 보장된 정교수로 승진했지만, 김 총장은 2014년 학교 리모델링을 핑계로 본관 교수 연구실을 비우게 하고 학생복지시설 건물에서 사무공간이나 일체 집기도 지급하지 않고 근무하게 했다. 임 교수는 그 후 2년간 재학생들에게 ‘아저씨’ 소리를 들으며 복사용지 판매 등의 업무를 했다. 모욕을 줘 퇴출하려는 압박이었다.

“많이 ‘쪽팔린’ 이야기죠. 지금은 연구실을 새로 배정받았습니다.” 기자와 통화한 임 교수의 말이다. 연구실을 마련한 것도 고용노동부 인력관리공단과 일학습병행제 교육기관으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 위해서는 관련 학습센터 지정을 받아야 하는데 “자신을 제외하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밝혔다. 폐과 직전인 호텔관광경영과에 적을 두고 있는 교수가 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김재홍 전 총장이 갑자기 내려오더니 ‘거기서 종이 팔고 있는데 아직도 안 급한가 보죠?’라고 말 한마디 하더니 쓱 올라갔다.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나중에 ‘나가서 MOU 하는데 힘을 보태라’고 하길래 ‘혼자 있는데 어떻게 자리를 비우느냐’고 반문하니 ‘다른 직원을 배치할 테니 MOU 하는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김 전 총장 취임 후 언론 인터뷰를 보면 그는 “교직원은 편의주의와 잘못된 관행에 빠져 있었고, 인기학과는 정원 초과모집 등 불법적인 일도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었다”며 “이런 학교를 바로잡기 위해 ‘악역’도 필요하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벌여놓는 일이라는 것이 다 상식 밖이었다. 우선 출근을 거의 안 했다. 모든 것을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서울 광화문에 있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봤다. 모든 서류는 온라인으로 원격 결제받는 식이었다.” 앞서 서라벌대 관계자의 말이다.

김 총장 부임 후 진행한 ‘학사행정통합정보시스템 고도화 사업’도 가족 일감 몰아주기 비리 의혹 사항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사업을 수주한 ㄱ사의 공동대표는 김일윤 설립자의 아들이자 총장의 친동생인 김준수씨다. 결국 중도에 개발이 취소됐지만 이 업체는 이후에도 온라인 홍보대행 업무, 지난해에는 홈페이지 유지·보수 관리비 등으로 거액을 받아왔다고 문건은 지적하고 있다.

김일윤 일가 ‘가족 일감 몰아주기’ 의혹

<주간경향>의 경주대 비리 보도 이후 경주대·서라벌대 교직원과 학생, 지역 시민단체와 시민 등이 참여한 ‘사학건전성강화와 경주대·서라벌대 정상화 공동대책위’가 결성돼 지난 11월 21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전달했다. 12월 6일에는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교육부 측에 감사의견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청와대 청원엔 시의원 총 21명 중 18명이 참여했다. 4명은 민주당이고 14명은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한영태 민주당 경주시 의원은 “김일윤 설립자가 지역사회에서는 거물 정치인이다보니 자유한국당 의원 중 일부는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자유한국당 쪽에서도 ‘김일윤이 사익만 챙겼지 지역사회에 공헌한 것이 뭐냐’는 말도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의원들은 향후 열리는 경주시의회 회기 내 자유발언 등의 기회를 살려 ‘경주대·서라벌대 살리기운동’을 시민들에게 알릴 계획이다.

“1000만원 이상 횡령이나 배임 등 회계부정을 저지른 사립학교 이사회 임원은 즉각 퇴출, 설립자와 친·인척 관계에 있는 사학 임원이나 교직원 현황공시 의무화, 사학 족벌경영 견제장치로 업무추진비 공개대상에 이사장 포함….”

12월 18일 유은혜 교육부총리가 발표한 사학 혁신방안 중 핵심 내용이다. 교육부 산하 TF였던 사학혁신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권고안 작성에 관여한 전필건 전 교육부 사학혁신위원회 위원은 “우리가 사학비리를 조사하는 동안에도 사학 소유자들이 최소 지역유지이기 때문에 관계를 맺은 정치인 등을 통해 감사나 처분에 항의나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며 “이번 조치로 횡령이나 배임 회계부정 적발 시 처분 기준도 대폭 강화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공공연한 비리가 저질러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라벌대 교수협의회는 12월 19일 보도자료를 내고 “교육부의 사학혁신 추진 방안은 다소 부족하지만 사학비리 척결 의지를 표명한 것은 환영한다”며 “‘1000만원 이상 횡령·배임 임원은 시정요구 없이 임원 승인 취소’가 이번 교육부 사학혁신 주요 과제인데 서라벌대의 횡령 의혹 중 교비 횡령은 건당 수억원에 이른다”며 교육부의 전면감사를 촉구했다.

‘가족 일감 몰아주기’라는 비판에 대해 ㄱ사 관계자는 “가족이 관여된 기업이다보니 생긴 오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데도 마찬가지겠지만 지방대들이 전반적으로 사정이 다 어렵다”며 “가족기업이다보니 오히려 손해를 무릅쓰고 우리가 가서 일을 봐주는 형편”이라고 밝혔다. 김재홍 전 총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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