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시민권법 개정’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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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가 시민권법 개정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시민권법 개정안(CAA)이 12월 10일(현지시간)과 12일 인도 하원과 상원을 각각 통과하면서 촉발된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아삼주와 트리푸라주 등 동북부 지역에서 시작된 시위는 상원 통과 후 인도 전역으로 확산됐다.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면서 15일까지 6명이 사망했다. 경찰이 15일 오후 수도 뉴델리의 자미아 밀리아 이슬라미아 대학(JMI) 캠퍼스에 난입해 최루탄을 쏘고 곤봉으로 학생들을 구타하면서 16일부터는 뭄바이·하이데라바드·첸나이·벵갈루루·찬디가르·콜카타·러크나우 등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생들이 시위에 합세했다. 17일에도 동부 실람푸르와 웨스트벵골주에서 시위가 이어졌다. 웨스트벵골주에서는 시위대 일부가 경찰에 사제폭탄을 던져 3명이 부상했다. 인도 정부는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아삼주·메갈라야주·트리푸라주·웨스트벵골주·우타르프라데시주 등에서는 인터넷을 차단하며 여론통제에 나섰다.

인도 펀자브주 암리차르 시민들이 12월 17일(현지시간) 정부의 시민권법 개정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인도 펀자브주 암리차르 시민들이 12월 17일(현지시간) 정부의 시민권법 개정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무슬림만 빠져 반대 시위 확산

시민권법 개정안은 대통령 공표만을 남겨 놓고 있다. 이번에 개정된 시민권법은 2014년 12월 31일 이전에 유입된 방글라데시·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등 3개국 출신 불법 이민자 중 힌두교·시크교·불교·자이나교·파시교·기독교 등 6개 종교 신자들에게 시민권을 준다는 것이 골자다. 이에 따르면 불법 이민자들이 종교적 탄압을 피해 인도에 왔다고 신고하면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

겉으로만 보면 불법 이민자들을 구제해주는 인도적인 조치인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무슬림만 대상에서 빠졌다는 점이다. 인도 정부는 시민권법 개정은 소수 종교 신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무슬림은 이들 국가에서 소수가 아니기 때문에 빠졌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무슬림은 시민권법 개정이 종교 차별을 금지한 헌법 위반이자 무슬림에 대한 인종청소 시도라고 본다. 인도에서 힌두교도는 전체의 80%, 무슬림은 14%를 차지한다.

시민권법 개정에 대한 인도 무슬림의 두려움과 분노를 이해하려면, 2015년부터 아삼주에서 시작된 국가시민명부(NRC) 등록이 진행된 과정을 봐야 한다.

방글라데시와 인접한 아삼주는 2015년 방글라데시 불법 체류자들을 솎아내기 위해 NRC 재조사 작업을 시작했다. 아삼주는 지난 8월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이전부터 인도에서 살고 있다는 서류를 제출하지 못한 아삼주 주민 190만 명을 NRC에서 제외했다. 이들은 하루아침에 무국적자가 됐다. 아삼주는 이들을 대규모 난민수용소에 수용한 후 추방할 계획이다. 불법 이민자로 판정된 이들은 인도 정부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지만 결과가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추방 대상이 된 190만 명 가운데 절대다수는 무슬림이지만 힌두교도도 10만 명 포함돼 있다. 그러나 새 시민권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힌두교도는 구제받을 길이 열린다. 반면 시민권 신청 대상에서 제외된 무슬림만 추방 대상이 될 공산이 높다. 게다가 시민권법 개정을 주도하는 아미트 샤 내무장관은 그동안 불법 이민자들을 ‘침입자’라고 부르며 인도 땅에서 몰아내겠다고 주장해왔다. 샤 장관은 지난 11월 의회에서 NRC 재조사를 전국으로 확대해 불법 이민자들을 뿌리뽑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민권법 개정안과 NRC가 무슬림을 추방하기 위한 ‘인종청소’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도 언론인 바르카 더트는 <힌두스탄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정부는 시민권법 개정이 (다른 종교에 대한) 관대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NRC와 결합하면 무자비한 편협함을 수행하는 무기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도 케랄라주 고치 시민들이 12월 16일 정부의 시민권법 개정에 반대하는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인도 케랄라주 고치 시민들이 12월 16일 정부의 시민권법 개정에 반대하는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인도의 시민권법 개정은 미얀마의 로힝야족 탄압을 떠올리게 한다. 로힝야족 탄압으로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미얀마는 1982년 시민권법을 제정해 로힝야족의 시민 자격을 박탈한 바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남아시아 지국장인 아미 카즈민은 칼럼을 통해 “인도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로힝야족 인종학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미얀마의 길을 따르려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미얀마의 로힝야족 탄압과 판박이

인도에서는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힌두 민족주의 정당인 인도국민당(BJP)의 집권 후 힌두교 우선주의와 무슬림 배제가 가속화되고 있다. 2014년 5월 총선 승리 후 첫 행선지로 힌두교 최대 성지인 우타르프라데시주의 바라나시를 선택하고 취임 직후에는 공문서에 힌디어를 사용하라고 지시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6월에는 인도 서부 라자스탄주 공립학교 사회교과서에서 인도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의 암살과 관련된 내용이 빠지고, 대신 힌두교 국가 수립을 주창하고 간디 암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비나야크 다모다르 사바르카르라는 인물이 교과서에 등재됐다.

집권당의 힌두 우선주의가 노골화하면서 무슬림에 대한 힌두 극단주의자들의 혐오 범죄는 늘어났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 2월 보고서에서 2015년 5월부터 2018년 12월 사이에 ‘암소 자경단’이라 불리는 힌두 급진주의자들이 소고기를 먹는 무슬림을 공격해 36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힌두교도들이 무슬림을 폭행하고 힌두교 신의 이름을 억지로 부르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모디 총리는 구자라트주 총리를 지내던 2002년 힌두교도들이 무슬림을 공격해 방화·약탈·성폭행을 저지른 사건이 발생했을 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무슬림 학살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도 하다. 당시 희생된 무슬림은 공식집계로만 790명에 이른다.

인도국민당의 힌두 민족주의는 지난 5월 총선 승리로 모디 총리가 재집권한 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8월 70여 년 동안 자치를 누려온 무슬림 지역인 잠무카슈미르주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봉쇄한 것이 대표적이다. 잠무카슈미르에 대한 인터넷 차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샤 장관은 12월 17일 정부 입장은 “바위처럼 단단하다”며 철회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시민들과 인도 정부의 대치 정국이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원식 국제부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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