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하늘에 묻는다-출생과 지위 초월한 두 천재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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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문: 하늘에 묻는다(Forbidden Dream)

제작연도 2019

제작국 한국

러닝타임 132분

장르 드라마

감독 허진호

출연 최민식, 한석규, 신구, 김홍파, 허준호, 김태우

개봉 2019년 12월 26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롯데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천문>은 최민식과 한석규 두 사람의 영화라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작품에서 두 사람의 연기는 단순한 경쟁이나 비교를 넘어서는 의외의 협업으로 마지막까지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위인 중에 세종대왕처럼 다양한 해석과 다수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도 흔치 않다. 한글을 창제했고, 뛰어난 인재를 양성·발탁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대민 복지정책을 펼쳤다. 이는 현대에 비춰봐도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2019년 새해가 시작될 때, 세종대왕을 소재로 한두 편의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획 단계부터 화제를 모은 두 편 모두 큰 문제 없이 계획대로 개봉되었다. 첫 영화는 올해 7월 개봉한 늦깎이 신인 조철현 감독의 데뷔작 <나랏말싸미>였다. 읽고 쓰기 쉬운 백성의 문자를 만들려는 세종의 한글 창제 목적과 과정을 신미 대사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새롭게 재해석한 팩션 사극이었다. 송강호가 세종대왕 역을 맡고, 박해일이 신미 역을 맡아 나름 뒤처지지 않는 결과를 보여줬다. 하지만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고, 개봉 직전 배우 전미선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에서 개봉을 진행해야만 했다.

영화 <나랏말싸미>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는 세종과 함께 그 시대를 대표하는 또 다른 인물 장영실과의 인연과 우정에 집중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안여 사건 전후로 무슨 일 있었나?

<천문>은 조선 세종 24년에 발생한 ‘안여 사건’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확장해간다. 대호군 장영실이 ‘안여(임금이 타는 가마)’ 만드는 것을 감독했는데, 튼튼하게 만들지 못해 왕의 행차 중 안여가 부러져 세종이 큰 사고를 당할 뻔한 사건이다. 이에 대한 문책으로 장영실은 곤장 80대 형에 처해진다. 이후 장영실의 존재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면서 그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남지 않는다. 허진호 감독은 일반인은 공감하지 못한 두 천재의 유대에 집중하면서 안여 사건 전후로 세종과 장영실 관계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많은 영화가 기본적으로 감독의 탁월한 연출 능력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에 의존하고 있지만 영화 <천문>은 배우들, 특히 최민식과 한석규 두 사람에 전적으로 의존한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리스마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배우들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두 사람의 연기는 단순한 경쟁이나 비교를 넘어 의외의 협업을 통해 마지막까지 깊은 울림을 준다.

신구·김홍파·허준호·김태우 등 각자 조연이나 단역을 맡은 배우들 역시 충분한 서사와 감정선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등장했음에도 그들의 존재감은 자연스럽게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다. 그만큼 세종과 장영실의 존재와 둘의 관계를 풀어내는 두 배우의 연기는 압도적이다.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

특히 영화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은 출생과 계급을 뛰어넘는 세종과 장영실의 인간적 유대와 거리인데, 단순한 이해관계나 우정을 넘어 소위 ‘브로맨스’로 불릴 만한 극단 상황까지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좀 민감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껄끄럽게 느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다.

허진호 감독은 그동안 장편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1998)부터 <봄날은 간다>(2001), <외출>(2005) 등의 멜로드라마를 통해 매우 섬세한 감성을 조율하는 데 남다른 재능을 보여줬다. 따라서 이번 <천문>에서 보여준 세종과 장영실의 긴밀한 감정 관계와 심리 묘사는 감독의 의도가 많이 반영됐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 사이의 특별한 분위기는 배우들 스스로 연기의 몰입에서 나온 결과라는 최민식의 고백은 놀랍다. 도리어 감독은 더 큰 감정적 오해의 소지를 제공할 만한 디테일을 많이 덜어냈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영화에서 유난히 여성 캐릭터의 부재가 눈에 띄는데, 이 또한 두 주인공의 감정에 대한 남다른 해석을 가능케 하는 요소다.

영화 속에 촘촘하게 녹인 당시의 대외적 외교 문제와 정치적·경제적 시대상과 여러 가지 문제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관객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여러 부분에서 감히 이제껏 한국영화사에서 시도하지 않은 특별한 영화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다.

최민식과 한석규 ‘20년 만의 재회’

이번 영화 <천문>은 한국 남성배우 중에서도 남다른 카리스마로 유명한 최민식과 한석규의 만남으로 캐스팅 단계부터 큰 화제가 되었다. 한때 박신양과 더불어 동국대가 배출한 3대 ‘전설’ 또는 ‘명물’로 언급될 정도로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던 두 사람은 각자의 개성을 앞세워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동문이라는 인연도 무시할 순 없었겠지만,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연예계 생활 초기부터 드라마와 영화에서 함께 연기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특히 1994년 MBC 드라마 <서울의 달>의 성공은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두 사람 모두의 연기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최민식이 1996년 드라마 <그들의 포옹> 촬영 중 당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긴 슬럼프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도 독려하며 많은 도움을 준 것이 당시 독보적 스타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한석규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실제 이즈음 함께 출연한 <넘버 3>(1997)와 <쉬리>(1999)는 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연 중요한 작품일 뿐 아니라 두 사람의 연기생활에도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고 유명세를 얻으면서부터는 함께한 작업이 많지 않았다. <쉬리> 이후 20년 만의 재회라고 하니 모처럼 두 사람의 연기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관객으로서는 특별한 이벤트라 아니할 수 없다.

연출을 맡은 허진호 감독은 “두 배우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게 감독으로서도 굉장히 행복했다. 관객들이 정말 기대해도 될 만한 좋은 연기를 보여주셨다”고 회상하며 두 사람의 연기 호흡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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