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철 원내대표 체제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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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박 심재철·친박 김재원 획기적 조합… 첫 여야 협상 합의는 불발

‘허니문’은 없었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와 김재원 정책위 의장 체제는 12월 9일 출범하자마자 곧바로 여야 협상에 나서야 했다. 이미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4+1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에서 마련한 예산안 수정안을 이날 통과시키겠다고 선포했다.

자유한국당 새 원내대표에 선출된 심재철 의원(왼쪽)과 새 정책위 의장에 선출된 김재원 의원이 12월 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황교안 대표(가운데)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자유한국당 새 원내대표에 선출된 심재철 의원(왼쪽)과 새 정책위 의장에 선출된 김재원 의원이 12월 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황교안 대표(가운데)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심 원내대표는 국회의장과 여야 3당(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 원내대표 협상에 참여해 ‘필리버스터 철회’, ‘예산안 논의 참여’, ‘예산안 10일 처리’라는 임시 합의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첫 의총에서 협상에 대한 평가는 혹독했다. 아무런 조건 없이 필리버스터를 철회하고 한국당이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선출된 지 반나절 만에 심재철·김재원 원내대표 체제는 당내 반대의 목소리에 봉착했다. 예산안에 대한 설명이 나오자, 현재 예결위원장이자 전 원내수석 부대표로 활약한 김재원 정책위 의장이 나서 보완 설명을 했다. 이때 한 의원이 “왜 원내대표가 나서지 않고 정책위 의장이 나서느냐”라는 말도 터져나왔다고 한다. 한국당의 한 의원 측은 “그동안 강경 일변도를 유지해온 황교안 대표 측으로서는 이날 오전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황(친황교안) 후보의 패배를 경험한 만큼 여야 협상으로 얻어온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황·비황 구도로 계파 재편 계기 마련

원내대표 선거는 지금까지의 한국당 계파 구도를 깨는, 뜻밖의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기존의 친박과 비박의 대립, 친황과 비박의 대립이 아니라 친황과 비황의 구도로 재편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무엇보다 비박·비주류인 심재철 원내대표가 러닝메이트로 친박인 김재원 정책위 의장과 한 조를 이뤄 선거에 나선 것이 획기적이었다. 심 원내대표는 김 정책위 의장에게 손을 내밀기 전 몇몇 의원에게 러닝메이트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의원이 거절한 후 결국 심 원내대표의 손을 잡은 것이 김 의장이었다. 통상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원내대표 후보가 부각됐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오히려 정책위 의장이 관심을 받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게다가 비박과 친박의 조합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당내 한 관계자는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친박이 황 대표를 밀었지만 이후 황 대표 측근으로 넘어간 친황계와 그대로 친박에 남은 친박계로 분화가 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친박계로 그대로 남은 김 의장이 황 대표와 반대편에 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한 의원 측은 “친박이 분화된 배경에 황 대표의 관료형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면서 “친박은 황 대표와는 정치적 스타일이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내대표 선거가 본격적인 구도로 접어들자, 김선동-김종석 의원 후보조가 ‘황심(황 대표의 의중)’을 얻고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황 대표는 단식에 들어가면서 당직자 일괄 사표를 받은 후 초선인 박완수 의원을 사무총장에 앉혔다. 초·재선 중심으로 당을 이끌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사실상 현역 50% 물갈이라는 공천 개혁을 발표하자, 다선 의원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여기에 나경원 원내대표의 임기 연장 불허를 최고위원 회의에서 결정하면서 비판이 들끓기 시작했다.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그대로 반영됐다. ‘친황’으로 분류된 김선동 후보는 첫 투표에서 28표, 3명이 붙은 결선 투표에서 27표를 받는 데 그쳤다. 비박을 대표하는 강석호 후보 역시 첫 투표에서 28표, 결선투표에서 27표를 얻어 친황표와 비박표가 동일했다.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12월 9일 낮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각 당 원내대표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문 의장, 심재철 자유한국당,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 권호욱 선임기자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12월 9일 낮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각 당 원내대표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문 의장, 심재철 자유한국당,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 권호욱 선임기자

정견발표에서 아예 ‘황심은 없다’고 선언한 심재철 원내대표는 결선투표에서 다른 두 후보를 큰 표차로 따돌렸다. 비황친박의 표, 다선 중진의 표가 심재철-김재원 후보 조에 쏠렸다고 볼 수 있다. 한 의원 측은 “5선 관록의 심 원내대표도 압도적이었지만, 원내 수석부대표를 역임한 3선 김재원 의장의 관록 역시 다른 후보에 비해 압도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의원 측은 “두 사람이 최고의원 회의에 들어가면 최고의원 회의 분위기도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공천권은 어차피 대표가 갖고 있고, 두 명의 원내 지도부가 최고위원 회의에 들어가더라도 대표의 권한이 크기 때문에 황 대표의 일방적인 분위기가 달라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원내대표 체제는 무엇보다 나경원 체제와는 다른 여야 협상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5선+3선’이라는 관록에다 여야 협상에서 중요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12월 10일 여야 협상 공방 속에서 이들 원내대표 체제의 협상력은 빛을 발휘하는 듯했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4+1협의체의 예산안 수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항의 과정에서 심 원내대표와 김 의장이 전면에 나섰다. 4+1협의체에 속한 한 야당 의원 측은 “국회 부의장직을 역임해 국회의 의사진행을 잘 알고 있는 심 원내대표가 20분 넘게 연단에서 끈질기게 발언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한국당 내 강경파와 민주당 강경파 사이에 끼여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황 대표 강경 투쟁으로 운신 폭 좁아져

예산안 통과에서 ‘한국당 패싱’이 현실화되자, 일부에서는 원내대표 체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장성철 소장은 “이번 예산안 협상은 원초적인 잘못이 나경원 전 원내대표에게 있는 만큼 지금 원내대표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예산안부터 패스트트랙 법안까지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반대만 해온 전임 지도부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장 소장은 “원내 지도부가 허니문 기간을 거치고 있지만 이번 협상 실패로 인해 강경 일변도의 당 대표 지도부와 강·온 병행의 원내 지도부 간 알력이 조기에 표출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이미 광화문 장외투쟁을 예고한 황교안 당 지도부는 예산안 협상이 통과된 후 국회 로텐더 홀에서 농성을 하기 시작했다. 당 안팎에서는 황 대표의 강경한 투쟁이 원내 지도부의 협상 입지를 좁힐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재원 의장과 직접 협상해본 적이 있는 민주당의 한 의원은 “김 의원은 겉으로 보기에는 강경파지만 속으로는 실리를 챙기는 능숙한 협상파”라면서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국면에서는 김 의원이 운신할 폭이 그리 크지 않다”고 말했다. 장성철 소장은 “한국당은 지금까지 줄곧 반대 투쟁을 해왔기 때문에 협상에 나설 경우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는 국면에 처해 있다”면서 “민주당이 강행 처리하더라도 명분만은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원내 지도부의 협상 입지는 넓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당 지도부와 원내 지도부 사이에 불협화음은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친황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황 대표가 강경파이고 원내 지도부가 온건파라는 것은 일부 언론의 시각일 뿐 내부에서는 모두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심재철 원내대표나 김재원 의장 역시 원래부터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면서 “새로운 원내대표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약간 달라졌을지는 몰라도 의원들의 생각은 나경원 원내대표 때나 심재철 원내대표 때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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