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재개발, 주민들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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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동 정비계획 변경안’ 통과, 세입자들이 살 집도 공급해야

“계세요?”

12월 9일 서울역 앞 남대문 쪽방촌. 노숙인 지원단체 활동가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재개발지구 쪽방 주민 주거대책 요구를 위한 <의견서> 접수’라고 써 붙인 천막을 치고, 각자 다른 쪽방 건물로 향했다. 정오 무렵이지만 건물 안은 어두컴컴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 문을 두드리던 찰나, 사람 하나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복도 끝에서 정모씨(70)를 만났다. 공동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곳에선 7년을 살았다고 했다. “여기 재개발되는 거 알고 계세요? 주민분들 의견 물으러 왔어요.” “그런 얘기는 못 들었어. 만약 재개발한다면 대책을 세워줘야지. 저쪽(인근 쪽방촌)도 그냥 다 쫓아낸 적 있잖아. 그럼 안 되지.”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바로 옆 쪽방 건물. 2층으로 들어서는 문에 ‘문 좀 닫아주세요. 아이 추워’라고 쓴 종이가 눈에 띈다. 주민 송모씨(69)는 재개발 소식을 이웃과 복지시설 관계자에게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여기 거주했던 사람들 이사 비용 충분히 지원해줘야 해요. 돈 없어서 임대주택 못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거든. 여기선 의료봉사단이 나와서 건강체크도 하는데, 이사 가도 받을 수 있는 건가? 나이 많은 독거노인들이 특히 걱정이지.”

지난 10월 2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양동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정비계획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양동’은 남대문로5가동에 편입돼 사라진 지명이다. 양동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은 1978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40년이 지나면서 ‘2025년 서울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기본계획)’에 따라 달라진 환경을 반영해 정비계획이 변경됐다.

쪽방 풍경이 달라진다

양동 재개발구역엔 남대문 쪽방촌이 있다. 언론은 ‘남대문 쪽방촌이 개발이라는 큰 변화를 맞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중구청은 11월 13일 정비계획 변경에 대한 재공람 공고를 하고, 한 달간 의견을 수렴했다.

양동 재개발구역 정비계획 변경안은 ‘소단위 정비형’ 방식을 도입했다. 기본계획에서 새로 정한 개발방식이다. 기본계획 보고서에서는 ‘전면 철거방식으로 인한 역사성·장소성 훼손’ 같은 기존 개발방식의 문제를 해소하고, ‘기존 도심의 산업·형태·기능 등을 유지·보존’할 필요에 따라 이 방식을 도입했다고 밝히고 있다. 목적은 ‘장기간 사업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건축물의 노후화·슬럼화된 지역의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고 기존 지역의 특성·기능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쾌적한 도시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남대문 쪽방촌의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왼편은 소단위 정비지구(11지구)로 오른편은 소단위 관리지구(12지구)로 지정됐다. 소단위 정비지구는 개발이 추진될 예정이며 관리지구의 경우 당장 개발계획이 없다. 현재 11지구에는 쪽방 건물 6곳, 쪽방 250여 개가 있다.

애초 이 지역은 공원으로 개발될 예정이었다. ‘쪽방 입지(11지구)’, ‘저층주거 다수밀집(12지구)’이라는 이유로 계획이 변경됐다. 쪽방 밀집지역이기에 건축물을 지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앞으로 토지 등 소유자가 무엇을 어떤 규모로 지을지, 세입자는 어떻게 보상할 건지 등의 내용을 담은 구체적 정비계획을 내놓게 된다. 중구청에 정비계획을 제출하고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계획 인가와 같은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도시정비법 등 재개발 관련 법률들은 개발 때문에 퇴거당하는 세입자들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주거이전비·이사비·임대주택 등을 받을 수 있게 보호장치를 마련해놨다.

양동 정비계획 변경안은 ‘공연장·전시장 등 도심 내 업무종사자를 위한 아동 관련 시설, 도심관광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소규모 호텔 등’을 권장 용도로 제시했다. 일반상업지역이기 때문에 주택은 지을 수 없다. 예외적으로 ‘공동주택과 주거용 외의 용도가 복합된 건축물’만 지을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 쪽에선 “쪽방이 있고, 저층 주거가 다수 밀집한다는 이유로 정비계획이 변경되었건만 주거를 공급할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쪽방 주민들이 불안한 이유는 또 있다. 지난가을 한 건축업체가 남대문 쪽방 주민들을 용산구 후암동·갈월동·동자동으로 이주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법이 정한 세입자 주거대책을 이행하지 않기 위한 시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현재 주민 이주 움직임은 주민들의 반발로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이 뒷짐져선 안 돼

과거의 경험도 걱정을 더한다. 2016년 220개 쪽방을 허물고 28층짜리 빌딩을 짓고 있는 남대문로5가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시작됐다. 한 해 전 10월 말, 남대문로5가 쪽방 주민들은 제대로 된 이주보상도 받지 못한 채 떠나야 했다. 건물주는 ‘노후 건물 안전진단 결과 위험 등급을 받았다’는 핑계를 댔다. 2008년 동자4구역을 재개발할 때도 3만~7만원을 받고 근거 없이 쫓겨난 주민들이 있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지금까지 개발된 어떤 쪽방 지역에서도 주민들이 다시 재정착한 일은 없다. 주민들이 살 수 있는 집을 짓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해법은 ‘공공의 개입’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방법은 있다. 영등포 쪽방촌이 있는 ‘영등포동4가 도시환경정비계획’은 2015년 기존 계획을 바꿨다. 쪽방 주민의 거주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복지시설 부지 안에 원룸형 공공임대주택 324세대를 짓기로 했다. 이 정비사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지만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쪽방 주민 주거지원 방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양동 정비구역에도 사회복지시설 부지와 시가 소유하고 있는 부지가 있다.

홈리스행동·빈곤사회연대 등 4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꾸린 ‘2019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은 12월 11일 서울 중구청 앞에서 모였다. 이들은 “재개발보다 중요한 것은 쪽방 주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양동 정비계획에 쪽방 주민 주거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후 중구청에 쪽방 주민 63명이 작성한 의견서를 전달했다.

15년간 남대문 쪽방촌에서 산 정창식씨(63)는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원래 살던 쪽방에서 리모델링한다며 방 빼라고 해서 돈 한 푼 못 받고 (11구역으로) 이사한 지 일주일인데, 여긴 또 재개발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되는 건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사람이 살고 있으니 공원 말고 집을 지으라는 것이 양동 도시정비형 변경안의 본래 취지일 것”이라며 “복지시설을 신설할 수 있는 계획에 ‘공공임대주택(역세권 청년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조건이 있다. 청년뿐 아니라 쪽방 주민이 살 수 있는 저렴한 주택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일단 공공에서 큰 뼈대만 재조직한 것이며 민간에서 세입자 대책 포함한 별도 정비계획이 나올 것이다. 세입자 대책이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면 당연히 개선 요구를 하고, (서울)시와 협의해 문제없도록 만드는 게 공공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민간에서 내놓는 정비계획 안에 기반시설 기부채납 계획도 포함된다. 구체적 정비계획이 오면 복지시설 부지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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