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평 자동차 골목-뜯고 고치고 광내서 새 차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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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이름만 들어도 무엇을 하는 데인지 명백한 곳이 있다. 장안평, 혹은 장한평 일대 골목길은 중고자동차를 사고팔고, 뜯고 고치는 모든 것이 몰려 있다. 천호대로를 중심으로 남쪽 골목은 중고자동차매매센터를 중심으로 판매 정비·수리업체들이 몰려 있고, 북쪽 골목길은 각종 부품과 재생부속 업체들이 줄을 이었다. 예전에는 무·배추를 길렀고, 말목장이 있었다고 하던, 그저 너른 들판은 1970년대 말부터 자동차단지가 자리 잡았다. 그 후로 지금까지 장안평은 중고차와 그에 딸린 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장안평은 중고자동차와 관련 산업의 중심지다.

장안평은 중고자동차와 관련 산업의 중심지다.

천호대로에서 중고자동차매매센터 쪽으로 걸어가면 수많은 이들의 똑같은 질문을 만난다. 걸어가면 “차 필요해요?”, 차를 타고 가면 “팔 거예요?”

“차 필요해요?” 똑같은 질문 수없이 들어

날이 추우니 업자들은 두껍게 옷을 껴입고 발을 동동 구르며, 수없는 무시와 거부를 무릅쓰고 묻고 또 묻는다. 앞사람을 지나쳐가면 뒷사람이 또 묻는다. 하루종일 한 명이라도 걸리느냐 묻자 고개를 저었다. “돈 없으니 길에서 소리치고 있지 돈 있으면 왜 이러겠냐”는 것이 돌아온 대답이다. 겨울이 될수록 길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은 더 가혹하고 힘겹게 다가온다.

자동차 골목 입구에 화려하고 거대한 새 건물이 우뚝 섰다. ‘장안평 자동차산업 종합정보센터’. 장안평을 되살려보겠다고 새로 지은 곳이다. 그 옆 오래된 매매센터나 낡은 간판의 정비소들과는 겉모습부터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1980년에 장안평에 들어와 지금까지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정비소 사장에게 종합정보센터에 대해 물었다. 아주 짧고 분명하게 “뭘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동차 축제도 하고, 판매상 교육도 하고 이것저것 벌인 일들이 적지 않다지만 장안평 사람들에겐 친근하지도, 다가서기에 쉽지도 않은 곳으로 버티고 섰다.

40년된 상가 주변에 최신 첨단시설을 갖춘 중고매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40년된 상가 주변에 최신 첨단시설을 갖춘 중고매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장안평 경기는 극과 극으로 갈라섰다. 길에서 손님을 찾고 매물을 잡으려는 이들에겐 진즉 바닥을 지나 밑 없는 늪이라고 했다. 골목 양쪽 옆 자기 가게라도 장만해 뿌리를 내린 이들은 “요즘 별로 나쁘지 않다. 계절 탓에 활발하지는 않아도 썩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별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골목이라도 서 있는 자리에 따라 느끼는 온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낡은 매매상가를 빼고는 골목 안 모습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대형 매장들이 들어섰고, 인터넷 중심 매장들도 생겼다. 한 눈에도 돈을 많이 들인 듯한 최신 시설의 중고차 매매빌딩도 보인다. 재벌과 자본이 중고차 시장에 눈을 돌린 후 장안평도 이제 예전처럼 오다가다 걸리는 뜨내기들의 장터로 남아 있지 못하게 된 것이다. 상가에 걸린 “대기업은 중고차 시장에서 손을 떼라”는 현수막이 무색해 보인다.

분야별 전문 정비업소들이 줄지어 있는 것이 장안평의 장점이다.

분야별 전문 정비업소들이 줄지어 있는 것이 장안평의 장점이다.

“견적부터 판매까지 인터넷으로 모두 해결한다”는 대형 매장에 비해 길가에서 오가는 이들을 잡는 옛 방식은 턱도 없어 보였다. 골목에 서 있는 업자는 “팔리지도 않는 고물차 달랑 3대 가지고 있다. 팔러 오는 차들도 비싸게 불러서 잡지도 못한다. 노느니 길에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 사이에도 대형 매장 건물에는 수입차와 고급차가 연신 드나들고 있었다. “인터넷에 허위 매물을 올려놓고 손님 끄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우리가 손해를 입는다”는 것이 그의 불만이지만 현실 속 중고차 사는 이들이나 파는 이들이 시장을 보는 방식은 확실히 달라졌다.

매매상가에는 중고차 업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험업체도 있고, 대출업체도 있다. 요즘엔 중고차도 할부가 되는 시대라서 그것만 전담하는 업자들이 상가에 둥지를 틀고 있다. 거대한 전시주차 공간뿐 아니라 상가 안 길목은 물론이고 모서리 작은 공간에도 모조리 차들이 들어서 있다. 녹슨 차도 전부 돈이다. 대형트럭과 버스는 연식과 가격조건, 차량 상태와 연락처를 붙여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업자들도 전문 분야가 있어서 승합차·승용차·트럭·버스 전문이 다 달랐다. 트럭 전문이라는 업자는 “불경기엔 화물차가 잘 나가는데 요즘엔 그도 주춤하다”고 했다. 수리용 페인트로 범퍼에 노련하게 붓질하는 그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고 조금이라도 값을 높여야 하니 작은 흠은 직접 손본다”고 한다.

경남호텔 주변은 유흥가 골목이 형성돼 있다.

경남호텔 주변은 유흥가 골목이 형성돼 있다.

“대기업은 중고차 시장 손 떼라” 현수막

매매상가 안 통로는 길고 어둡다. 마음에 드는 차를 고른 듯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는 젊은이도 보이고, 서류를 들고 개인택시 면허 거래업체 문을 여는 이도 보인다. 업자는 “개인택시 면허를 내놓는 사연들이야 다 다르다. 몸이 안 좋아서 내놓는 사람은 그나마 나은 거고, 택시를 잡히고 노름하다가 넘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귀띔한다. 이제 막 시장에 발을 들이고 중고차 매매를 배우려는 중년의 새내기 업자는 소위 잘 나가는 선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게 복잡해 보여도 체계적으로 배우면 어렵지 않다”고 하지만 낯선 바닥에서 쉬운 일이란 결코 없으리라.

작은 부품 하나도 버려지는 것 없이 활용된다.

작은 부품 하나도 버려지는 것 없이 활용된다.

장안평에서만 30년이 넘었다는 업자는 “중고차 시장은 여름이 성수기다. 놀러갈 때 차를 샀다가 파는 경우가 많아 물량이 넘치고 가격도 괜찮다. 겨울은 완전히 얼어붙는다”고 했다. 시장 분위기도 계절을 타서 봄이 되면 조금씩 풀릴 것이라고 한다. 모닥불이나 쬐다가 엄동설한에 얼어죽지 않으면 내년 봄이 되면 또 좋은 시절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얼음 아래서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가여운 일이다.

경쟁자 많은 판매상과 달리 골목 주변의 정비업체들은 비교적 분위기가 좋았다. 엔진을 들여다보던 업자는 “여긴 기술 하나 인정받으면 일감이 몰려온다. 중고차란 것이 손봐야 할 것투성이니 노다지”라고 했다. 저마다 엔진·변속기·내장재·전기·판금 등 특화된 분야가 있고 잘 보는 차종별로 소문이 나 있어서 ‘뭐하면, 누구’ 하는 식으로 바닥 정보가 있다고 한다.

중고차 하나를 팔기 위해서는 우선 세차를 하고 광택을 입혀 겉을 손보고, 비싼 차량이면 의자까지 뜯어내 살균청소를 한다. 엔진부터 타이어까지 손보고 광을 내야지 제값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고차 한 대가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서 새로 태어나야 제값 받는 상품이 된다. 세차만 20년 넘게 한다는 업자는 “손봐서 파는 차도 있고, 출고 전에 손보는 경우도 있다. 세차하고 다음엔 선팅 업체에 가져다 놓든지 내장 업체에 가져다 달라고 주문이 온다. 인맥이 이 바닥 경쟁력이다”라고 들려줬다.

어떤 연식의 차종이라도 장안평에서 부품을 구해 고칠 수 있다.

어떤 연식의 차종이라도 장안평에서 부품을 구해 고칠 수 있다.

천호대로를 건너 장안평 북쪽 골목길은 매매시장 쪽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군데군데 정비소들이 있고, 그 사이사이로 부품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부품이라지만 대부분은 중고 재생부품들이다. 외제차 부품만 전문으로 다루는 곳도 있고 특정 차량, 특정 부품만 취급하는 업체도 있다. 예를 들면 전조등 전문 업체도 있고 화물차 배기관만 취급하는 곳도 있었다. 지붕 위로 부품 하적 장소를 만들어 차량 부품을 쌓아두고 주문을 받으면 곧바로 배달하는 방식이다. 수만 개의 부품이 모여 차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뜯기고 해체되어 새로운 쓰임을 기다리는 곳이다.

그라인더로 부품을 갈아내던 업자는 “외제차에 사고가 나면 부품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정비공장에서 본사에 주문해서 받는데 한 달에서 길게는 반 년도 잡아먹는다. 여기는 재고만 있으면 바로 갖다 준다. 당장 없어도 여기저기 수배해서 찾아다 준다”고 했다. 외제 자동차 로고부터 라디에이터 그릴까지 고물을 쌓아둔 것 같지만 돈 주고도 못 구하는 보물들이란다. 폐차장이나 사고현장에서 거둬들인 부품들은 중간 업자를 거쳐 이곳 전문업자들 손에 들어오면 그야말로 몸값이 뛴다. 요즘엔 전국에서 주문이 온다고 했다. 뭐든지 한 우물을 판 이들은 승리하는 법이다.

부품가게들 사이사이에도 정비소들이 있는데 길 건너 업소들과는 분야가 달랐다. 매매상가 주변 정비소들은 매매를 위해 손보는 일을 하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차를 고쳐 타기 위해 오는 곳이란다. 시동 소리만 들어도 고장난 곳을 안다는 업체 사장은 “이 바닥은 실력 없이는 못 버틴다. 말로는 속일 수 있지만 솜씨는 드러나는 법 아니냐”고 강조했다. 적어도 차 만지는 사람이 장안평에서 10년 넘게 살아남았다면 실력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경력을 묻자 “열아홉에 버스회사에서 기름밥을 먹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50년 됐다”고 힘을 준다.

40년 오랜 흔적 도시재생 가능할까

장안평 일대는 알게 모르게 많이 달라졌다. 주택가로 개발되면서 북쪽 골목골목 빌라와 소규모 아파트가 들어섰고, 지하철 5호선이 지나면서 대형 오피스텔들이 들어섰다. 개발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경남호텔 근처 골목골목이 유흥가로 이름 높았던 때도 있었다. 번창하던 안마시술소와 마사지 가게들은 이제 주춤해졌다. 다만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성인오락실과 주말이면 문을 여는 경륜 경정장들이 환락이 지배하던 시절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근처 식당 주인은 “중고차 시장 경기가 1990년대에 한창이었다. 마이카 붐이 불고 국산차들이 쏟아져 나오고 할 때는 물건 하나만 제대로 잡으면 한 달 수입도 들어왔다. 이 주변이 온통 흥청망청했다”고 말한다. 낮에도 짙은 커튼 뒤에서 열심히 돌아가는 사행성 오락기계들과 남들이 쉬는 날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한 방에 수십 배의 베팅이 이뤄지는 경륜 경정장들은 한 시절 찰나 같은 번영에서 깨어나지 못한 몽상의 추억이다.

장안평은 아마도 더 달라질 것이다. 일대의 골목과 산업들이 도시재생의 큰 과제로 주목받고 있다. 이 시절이 더 이상 40년된 오랜 흔적을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매매상가엔 재개발을 위한 지주 동의를 구하는 내용과 협동조합 구성을 위한 현수막이 걸렸다. 바깥 골목엔 종합지원센터에서 내건 세련된 지원 약속 현수막도 눈에 띈다. 40년째 제자리를 지킨 정비소 주인은 “이 골목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중고차 들어오면 고쳐 새 주인 만나서 나가고, 거기 붙어서 살아가는 모습은 앞으로도 똑같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골목 안 겉모습은 달라져도 살아가는 속사정은 쉽게 변치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장안평 자동차 골목에서, 또 아침저녁 걷는 내 집 앞 골목길에서 그 사정을 만날 수 있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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