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우승도, 잔류도 역대급 드라마였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은 야구에만 통하는 게 아니다.

2019년 프로축구 1부리그(K리그1) 최종전에선 마치 각본을 짠 것처럼 짜릿한 대반전이 일어났다. 유례없이 치열했던 선두 다툼에 막판 우승컵의 주인공이 바뀌었고, 강등 전쟁에서 살아남은 팀은 운명처럼 결정됐다. 12월 첫날 겨울을 재촉하는 빗속에 축구장을 찾은 팬들은 드라마 같은 반전에 웃고 울었다.

드라마 같은 우승을 차지한 전북(왼쪽)과 우승이 좌절된 울산(오른쪽). / 연합뉴스

드라마 같은 우승을 차지한 전북(왼쪽)과 우승이 좌절된 울산(오른쪽). / 연합뉴스

전북 현대는 ‘현대가(家)’ 라이벌 울산 현대를 제치고 기적 같은 역전 우승을 이뤄냈다. 전북은 12월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9 K리그1 파이널A 38라운드에서 강원 FC를 1-0으로 눌렀다. 반드시 승리하고 같은 시간 벌어진 경기에서 울산이 포항에 패할 경우에만 역전 우승할 수 있었던 전북은 기다리던 낭보가 날아들면서 환호했다.

“고마워요, 포항” 전북의 1골 차 우승

포항 스틸러스가 울산 현대를 4-1로 꺾었다. 2위였던 전북이 1위 울산과 승점이 79점으로 같아졌고, 다득점에서 전북(72골)이 울산(71골)에 한 골 앞서 리그 3연패이자 통산 7번째 정상에 올랐다. 프로축구 역사상 승점이 같아 다득점 차이로 우승이 결정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이날 전주와 울산에선 동시에 시작 휘슬이 울렸다. 울산은 비기기만 해도 2005년 이후 14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울산 팬들은 겨울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힘차게 우승을 다짐하는 노래를 불렀다. 전주에선 ‘영일만 형제(포항)여 힘을 내라’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포항이 울산을 꺾어 희박한 확률(11.1%)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거짓말처럼 그 기적이 일어났다. 전북 팬들은 전반 26분 포항의 완델손이 먼저 울산의 골문을 갈랐다는 소식에 들썩였다. 울산도 10분 뒤 주니오의 동점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지만 묘한 기대감이 솟아났다. 전북은 전반 39분 손준호가 프리킥 상황에서 선제골을 넣으면서 역전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후반 10분 재차 포항이 골 소식을 들려줬다. 포항 일류첸코의 득점이었다. 후반 42분에는 포항의 쐐기골까지 터졌다. 다급했던 울산 골키퍼 김승규가 골문을 비우고 직접 스로인에 나선 것이 상대 선수인 포항 허용준에게 연결되는 비극적인 장면이 연출된 탓이다.

사실상 우승컵을 결정지은 이 골 소식에 전주월드컵경기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전북 팬들은 ‘우리가 챔피언이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흔들고, 응원가(오오렐레)를 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부임 첫해에 역전 우승을 이끈 조제 모라이스 전북 감독은 “포항의 골이 터질 때마다 전북 관중이 환호한 덕분에 우리 선수들도 더 열심히 뛸 수 있었다”고 활짝 웃었다.

반대로 울산 팬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했던 6년 전 같은 날짜의 악몽이 재현됐다. 그 상대가 ‘동해안더비’의 라이벌이자 과거 악연의 상대인 포항이어서 아픔은 더욱 컸다. 2013년 선두를 달리던 울산은 2위 포항에 종료 직전 골을 내주는 바람에 우승컵을 빼앗긴 적이 있다. 당시 뛰었던 울산 선수 중 유일하게 이날 그라운드를 지켰던 수문장 김승규는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김도훈 울산 감독도 “2등은 기억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숙였다.

‘생존왕’ 인천, 살아남다

생존 경쟁도 우승컵 다툼만큼이나 치열했다. 1부리그인 K리그1 생존 마지노선 10위를 놓고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인천 유나이티드(10위)와 경남FC(11위), 제주 유나이티드(12위)의 잔류 싸움도 역시 마지막 경기에서 결판났다. 지난 5월 꼴찌로 추락한 인천에 소방수로 투입된 유상철 감독이 11월 30일 창원축구센터에서 경남과 0-0으로 비겨 10위를 확정지은 것이다. 제주가 먼저 최하위인 12위로 2부 강등을 결정지은 가운데 승점 1점 차로 앞서던 인천이 경남과의 맞대결에서 상대의 공세를 마지막까지 잘 막아냈다. 인천은 4년 연속 최종전에서 잔류에 성공해 ‘생존왕’이라는 별명에 힘을 실었다.

이날 인천의 생존은 유 감독의 투병 사실과 맞물려 더욱 큰 감동을 자아냈다. 유 감독은 지난 11월 19일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유 감독은 경기 내내 아픈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모습으로 선수들을 독려했다. 몸을 다스려야 할 시기에 감독직을 내려놓지 않은 유 감독을 걱정하는 팬들도 많았지만 ‘현장의 열기가 최고의 약’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국내에서 경기가 열리는 곳이면 경기 전 30초간의 박수가 유 감독의 쾌유를 응원한 것도 큰 도움이었다.

인천부터 창원까지 400㎞ 남짓한 원정길을 달려온 600여 명의 인천 팬들도 ‘남은 약속 하나도 꼭 지켜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유상철! 할 수 있어!”를 외쳤다. 1부리그 생존이라는 첫 약속을 지켰으니, 병마와의 싸움도 이겨내라는 응원의 메시지였다. 어쩌면 1부 잔류보다 험난한 길이다. 유 감독은 “어떤 결과가 나오고 어떤 기적이 나올지는 모른다”며 “나 또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의지를 갖고 힘들더라도 잘 이겨내겠다”고 말했다.

우승도, 생존도 드라마처럼 치열했던 K리그는 폭발적인 흥행도 확인했다. 1·2부를 합쳐 403경기에서 230만 관중을 돌파했다. 2013년 승강제가 도입된 이래 최초이자 최다 기록이다. 무료표가 존재했던 2012년과는 달리 유료 관중만 집계한 수치라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다. 경기당 평균 관중도 K리그1(8013명)과 K리그2(2946명)가 각각 47.2%와 72.6%가 늘어났다. 김대길 <경향신문> 해설위원은 “올해 K리그가 봄날을 누린 것은 분명 국가대표팀의 선전이 시작이었지만,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이 결정적인 견인차 노릇을 했다”며 “내년에도 지금과 같은 흐름을 이어간다면 평균 관중 1만 명 시대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민국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