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교묘해진 ‘플랫폼 프랜차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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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맹점 모집해 신종 노동착취… 가맹비·교육비에 물품비까지

영국 감독 켄 로치의 새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플랫폼 노동의 현실을 다룬다. 주인공 리키는 내 집 마련을 위해 프랜차이즈 택배회사에서 일을 시작한다. 법적으로 프랜차이즈 자영업자(가맹점주)이기 때문에 택배회사는 리키가 노동자가 아닌 자신의 배송 구역을 보유한 ‘오너’임을 강조한다. 개인사업자인 만큼 업무(창업)에 필요한 초기 비용은 모두 리키가 직접 부담한다. 리키는 아내의 차를 팔아 배송용 차량을 산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리키는 원하는 만큼 일해서 돈을 벌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리키는 개인사업자 신분이지만 가맹본부의 지휘 감독 아래 일했다. 빠듯한 배송 시간에 맞추기 위해 패트병에 소변을 볼 정도로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린다. 어느 날 예기치 못한 배송 사고에 휘말린 리키는 사고 책임을 뒤집어쓴다. 가맹계약 관계인 회사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빚이 늘어날까.” 리키는 절망한다.

수입 없는 달에도 로열티 내야

‘리키’들은 한국에도 있다. 최근 시장에는 플랫폼 노동과 프랜차이즈를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 프랜차이즈가 ‘혁신’의 이름으로 등장했다. 욕실 청소 서비스를 제공하는 O2O 연계 플랫폼 업체 ㄱ사가 도입한 방식이다. ㄱ사는 다른 플랫폼 업체처럼 광고를 통해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예약받는 시간에만 일할 수 있다’며 자유로움을 강조한다. 모바일웹을 통해 고객과 노동자를 연결하는 모델도 여느 플랫폼 업체와 같다. 하지만 사업구조와 노동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ㄱ사를 통해 신종 ‘플랫폼 프랜차이즈’의 구조를 들여다봤다.

프랜차이즈는 초기 비용이 든다. ㄱ사도 마찬가지다. 가맹비와 교육비, 물품비로 235만원을 내야 한다. 초기 비용과는 별도로 매달 회사에 30만원의 로열티도 지급해야 한다. 창업 비용을 내고 계약을 하면 ㄱ사는 ‘가맹본부’가 되고 노동자는 ‘가맹점주’가 된다. 점주 신분이기 때문에 노동자는 4대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업무 중 발생하는 모든 사고에 대한 책임도 노동자가 진다.

가맹계약 후 최소 3일 이상 가맹본부 교육장에서 욕실 청소 교육을 받는다. 스크러빙과 워싱 등 매뉴얼에 따라 청소 작업을 익힌다. 아파트 한 가구를 기준으로 욕실 두 곳(안방·거실)의 청소 작업을 1시간 안에 마쳐야 한다. 청소 매뉴얼을 익힌 노동자를 ㄱ사는 ‘프로’라고 부른다. 이후 가맹본부로부터 구입한 유니폼을 입고 현장실습을 진행하면 교육 과정이 끝난다. 이후 다른 가맹점주들이 진출하지 않은 아파트단지 가운데 한 곳을 골라 자신의 ‘구역’으로 삼는다. 해당 단지의 ‘오너’가 되는 셈이다. 가맹본부는 사업 초기인 만큼 빨리 창업해 수요가 많은 아파트단지를 선점하는 게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구역을 정했다고 바로 일감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고객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가맹본부가 홍보를 시작한다. 온라인 ‘맘카페’에 광고글을 남기거나 아파트단지에 전단지를 붙인다. 서비스 신청은 모바일 웹을 통해 이뤄지고 업무 스케줄도 웹에서 가맹점주에게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가맹본부의 마케팅 전략이 통하면 고객이 생기지만 실패할 경우 일감도 없다. ㄱ사 관계자는 “처음 두세 달 정도는 고객이 없을 수 있지만 가맹본부에서 본격적으로 홍보하면 고객은 생긴다.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객이 없어 수입이 없는 달에도 약속한 로열티는 가맹본부에 내야 한다. 오늘 일감이 없어도 다음날 예약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는 가맹본부가 정한 영업시간(오전 9시~오후 7시)은 늘 비워둬야 한다. 광고와 달리 자유로운 노동시간 선택은 불가능한 구조다. 현실적으로 고객이 택한 서비스 시간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은 철저하게 가맹본부의 통제하에 이뤄진다. 업무 시작과 함께 모바일 웹에 접속해 시작 버튼을 누르고 업무를 마감한 뒤에는 종료 버튼을 눌러 보고한다. 가맹본부가 노동시간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것이다. 매뉴얼에 따라 청소 작업을 마치려면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 무단으로 결근하면 페널티가 부여돼 가맹본부에 벌금 3만원을 내도록 돼 있다.

가맹본부는 무료노동도 지시한다. ㄱ사는 욕실 서비스 신청 고객에게 1회 무료 체험 서비스를 제공한다. 무료로 이용해보고 서비스에 만족하면 유료 서비스를 받으라는 취지다. 무료 체험 서비스에 대한 별도의 수당은 발생하지 않는다.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는 “사실상 종속된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에게 영업이란 이름으로 무료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무제한 무료노동을 통해 초기 마케팅 비용을 가맹점주에게 떠넘기는 부적절한 구조”라고 말했다.

“직업소개소보다 수수료 더 많아”

이런 방식으로 가맹점주로 포장된 노동자들은 얼마를 벌 수 있을까. ㄱ사의 계산법에 따르면 아파트 한 가구의 욕실 두 곳을 청소하고 나면 1만7000원 정도의 수입을 챙길 수 있다. 가맹본부는 하루 7시간씩 주 5일 노동을 하면 약 250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여기서 세금과 가맹 로열티 30만원, 매달 발생하는 청소용품 구입비 13만원을 빼고 나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200만원 남짓이다.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직업소개소가 떼가는 수수료보다 더 많은 돈을 가맹본부가 가져가는 구조”라며 “그럼에도 가맹점주(노동자)에게 주는 혜택과 보장은 직업소개소보다 적다”고 말했다.

적은 수익을 보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ㄱ사는 추가 노동과 영업을 권한다. ㄱ사의 또 다른 주력 서비스는 주방 후드 청소다. 주방 후드 청소 비용은 6만9000원. 욕실 청소와 함께 후드 청소를 통해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게 가맹본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후드 청소 수익은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청소 과정에는 필터 교체 작업이 포함돼 있는데 이때 교체할 새 필터는 반드시 가맹본부에서 구입해야 한다. 후드 작업을 할 때마다 2만원 이상의 필터 구입비를 가맹본부에 내야 하는 구조다. ㄱ사는 최근 시작한 매트리스 청소 서비스 영업도 노동자에게 맡기고 있다. 욕실 청소를 통해 관계를 맺은 고객에게 매트리스 청소 영업을 하면 매트리스 청소 서비스 수익의 10%를 인센티브로 제공한다. 매트리스 청소 작업에는 다른 협력업체를 투입한다. 전형적인 방문판매 영업 방식이다. 박주영 노무사는 “혁신 플랫폼 간판을 붙였지만 본질은 기존 가사 노동자, 방문판매 노동자가 했던 노동”이라며 “가맹계약을 맺으면 노동자성 입증이 더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노동관계법 적용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해당 업체를 팁스(TIPS·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 창업 지원)에 선정했다. 팁스는 고급인력의 기술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민간 액셀러레이터를 통해 민간투자와 정부 연구개발(R&D) 등을 매칭 지원하는 사업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정부는 플랫폼이나 혁신이라고 하면 새로운 모델 비즈니스라고 인식해 쉽게 지원을 한다”며 “실제 사업구조를 보면 기술 혁신이 아니라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한 노동 착취 모델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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