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수 총리 아베, 독주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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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최장수 총리’ 신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있다. ‘경제’와 ‘외교’가 전무후무한 기록 달성의 배경으로 꼽히지만, ‘대안 부재’도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아베 1강’을 배경으로 임기 연장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의 임기는 아직 22개월이나 남아 있다. 높은 지지율 유지와 중의원 해산 시기, 개헌 논의 등이 임기 연장 문제는 물론, 아베 정권의 명운을 가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9월 11일 개각을 단행한 뒤 도쿄 총리 관저에서 신임 각료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9월 11일 개각을 단행한 뒤 도쿄 총리 관저에서 신임 각료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후계자 보이지 않는 역대 최장수 총리

아베 총리는 지난 11월 20일 통산 재임 2887일을 기록, 가쓰라 다로(桂太郞·1848~1913) 전 총리의 기록을 깨고 가장 긴 기간 재임한 총리가 됐다. 최장 재임 총리 기록 경신은 106년 만이다.

아베 총리는 2006년 9월 26일부터 2007년 9월 26일까지 1차 집권한 뒤 2012년 12월 26일 2차 집권을 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8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연임에 성공해 2021년 9월 말까지 임기를 확보한 상태다. 이대로 총리직을 유지하면 내년 8월에는 작은 외할아버지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1901~1975)의 연속 재임기록(2798일)도 뛰어넘게 된다.

‘1강’ 독주의 배경으로는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경제 정책 추진과 미·일 동맹 공고화 등 활발한 외교 활동이 꼽힌다. 하지만 집권 자민당 내 유력한 ‘포스트 아베’ 후보가 없고, ‘강한 야당’이 부재한 것도 장기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실제 아베 총리가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되찾은 2012년 이후 7년간 ‘차기 총리 후보’라고 모두가 인정할 만한 정치가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는 후계자 그룹 내 경쟁을 유도해 정권 기반을 다졌던 역대 장기 집권 정권과는 다른 모습이다. 오히려 아베 내각에선 후계자 그룹을 일컫는 신조어조차 등장하지 않았다.

재임기간 1980일로 역대 6위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당시에는 고이즈미 총리가 중용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아베 신조 등 4명의 이름을 딴 ‘아사가키고조(麻垣康三)’라는 후계자 그룹이 있었다. 당시 관방장관으로 발탁되면서 차기 후보로 떠올랐던 아베 총리를 비롯, 이들 가운데 무려 3명의 총리가 배출됐다.

물론 최근 여론조사에선 2012년과 2018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와 겨룬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이 차기 총리 후보 1순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와 대립각을 분명히 하고 있는 이시바 전 간사장이 후계자가 되기는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총리가 되기 위해선 자민당 총재가 돼야 하는데 이시바 전 간사장은 당내 지지세가 약하다. 아베 총리와 그의 소속 파벌이자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의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베 총리 주변에선 “총리가 집착하고 있는 것은 이시바 전 간사장을 총리로 만들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아베 4선은 트럼프 하기 나름?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민당 내에서 아베 총리의 연임을 바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아베 총리가 역대 최장수 총리에 오른 지난 11월 20일 “본인이 (4선 출마를) 결단하면 전면적으로 지지하겠다”고 했다. 니카이 간사장은 2017년 총재 임기를 3차례 9년까지로 연장하는 자민당 당규 개정을 주도했다. 아베 총리를 지지한다는 뜻을 줄곧 표명함으로써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나오지만, ‘아베 다음은 아베’라는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니카이 간사장은 ‘포스트 아베’에 대한 질문에는 “잘 모른다. 듣고 있지 않다”고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8년 9월 20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8년 9월 20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아베 총리 주변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여부에 따라 임기를 더 연장할 수 있다는 논리로 ‘4연임론’의 군불을 때고 있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트럼프는 재선할지도 모른다. 누가 트럼프와 할 수 있나. 아베밖에 없다”고 주변에 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2021년 1월까지지만, 재선하면 2025년 1월까지 연장된다. ‘미·일 동맹 재검토’ 등 트럼프 대통령의 언동은 예측불가능한 만큼 서로를 ‘도널드’, ‘신조’라고 부를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소 부총리의 측근은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이 ‘신조에게 기대한다’라고 트위터에라도 올리면 분위기는 한 번에 바뀐다”고 했다.

다만 아베 총리의 후계 지명이나 4선 도전은 향후 정국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지지율 추이,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 시기, 헌법 개정 문제 등과 연동돼 있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 주변에선 “혹시 몰리면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재집권한 후 2차례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에서 압승해 정권의 기반을 공고히 한 경험이 있다. 일본 정가에선 임시 국회(12월 9일)가 내년 초 주요 정책 과제나 국회의 개헌 논의 상황 등을 명분으로 삼아 해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치야마 유(內山融) 도쿄대 교수는 “적절한 후계자가 크지 않고, 개헌도 실현되지 않을 경우, 또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면 4선 움직임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다만 중의원 해산은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는 ‘도박’이기도 하다. 특히 중의원에서도 여권이 개헌 발의 정족수인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아베 총리가 ‘정치적 유산’으로 남기고 싶어하는 개헌은 멀어질지 모른다. 아베 총리는 최근 각료들의 잇따른 사임과 총리 주최의 ‘벚꽃을 보는 모임’에 지역 후원자들을 대거 초대한 문제로 비판을 받고 있다. 향후 정권을 흔들 수 있는 사태가 또 발생한다면 ‘정치적 유산’인가 ‘정권 유지’인가라는 선택을 강요받을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진우 도쿄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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