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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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집 이야기(I Am Home)

제작연도 2019

제작국 한국

러닝타임 92분

장르 드라마

감독 박제범

출연 이유영, 강신일, 서영화, 황은후, 조현식, 공민정

개봉 2019년 11월 28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CGV아트하우스

CGV아트하우스

신문사에서 일하는 은서(이유영 분)는 곧 임대계약이 만료되는 집을 나가야 할 처지라 틈틈이 새로 이사할 집을 찾아다니지만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어느덧 이삿날이 다가오자 은서는 할 수 없이 아버지 진철(강신일 분)이 혼자 살고 있는 고향집에 들어가 잠시 머물기로 한다. 하지만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이나 두 사람의 관계는 서먹하기만 하고 잊고 싶었던 과거의 아픔까지 되살아난다.

모처럼 따뜻한 정서가 가득 담긴 영화를 만났다. 작품의 규모를 떠나 삶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을 영화라는 매체가 구현할 수 있는 창조성 위에 효과적으로 녹여내고 있다는 점은 작품의 영민함이 드러난다. 열쇠·수건·김치·라면·달력 등 우리 일상에서 흔히 스쳐가는 작은 소품들까지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촘촘한 의미를 부여하는 섬세함은 2019년을 사는 한국의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영화 전체의 이야기는 꽤나 상투적인 구조 안에 머문다. 하지만 자칫 뻔한 신파로 흐를 수도 있었을 이야기지만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 각본과 연출은 관객들의 감정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먹먹하게 만든다.

사람과 인생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영화 <집 이야기>는 가공된 세련미나 거대한 사건보다는 따뜻한 정서에 방점을 두고 있는 작품이다. 제목에서도 이미 짐작이 되지만 ‘집’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의미만은 아니다. 다양한 이름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사람들의 관계와 이를 바라보는 개인의 시선을 함축적으로 상징한다. 그리고 수많은 형태의 인간관계들은 결국 ‘가족’이라는 이름 위에 다다라 완성된다.

아버지 진철이 “집은 구했냐?”고 묻자 딸 은서는 “집이 어디 가, 거기 있지”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잠시 멈칫하던 진철은 말한다. “그러게, 떠나는 건 사람인데.”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대사다.

소위 아날로그와 디지털로 대변되는 일상의 변화도 영화 속에서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열쇠수리점을 운영하는 진철은 구식 열쇠에 관한 기술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디지털 도어록은 손도 못 댄다. 은서는 지금은 점차 보기 힘들어지는 신문지면을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늘 상사에게 구박을 듣는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세상을 뒤쫓아 숨가쁘게 살고 있는 두 사람이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정서란 결국 이제는 낡은 것이 되어버린 과거의 경험과 추억이다. 지나온 시간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결국 모든 인생을 보듬고 연결하는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당연히 극을 이끄는 두 중심인물을 연기한 강신일과 이유영의 연기는 작품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두 사람 다 극 중 캐릭터와 동갑이라는데, 살갑지만 알 수 없는 거리를 느낄 수밖에 없는 나이든 부녀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기해낸다. 캐릭터에 대한 주변 설명이나 수다스러운 대사가 넘쳐나진 않지만 두 배우의 절제되고, 그래서 매력적인 협연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부족함이 없다. 그 와중에 한 번씩 등장하는 자연스러운 유머는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작품에 효과적인 탄력을 제공한다.

작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내포한 데뷔작

<집 이야기>는 기획자로도 참여한 윤상숙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사할 집을 알아보다 지친 그녀는 문득 지금까지 살아온 집들을 세어봤단다. 34년의 인생을 살며 24번의 집을 거쳐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과 인생살이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런 생각은 영화의 시나리오로 발전했다.

이번 작품으로 장편 데뷔식을 치른 박제범 감독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전문사 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이기도 하다. 그동안 <낮잠>(2015), <안녕의 온도>(2016) 등의 단편들로 역량을 키워왔다. 작은 규모의 영화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감독은 작은 작품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조건에서 작업했다고. 그냥 보는 이의 눈에는 평범하게 스쳐지나는 것처럼 흘러가는 장면 하나하나조차 정교하게 설계하고 의미를 담아내고자 노력했다고. 여러모로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또 한 명의 신인 감독의 등장이다.

<집 이야기>는 올해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 초청돼 첫선을 보이며 관객들에게 호의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CGV 아트하우스’ 독립영화 지원사업 중단

‘CGV 아트하우스’(이하 아트하우스)는 전 세계 최고의 극장 체인으로 거듭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는 CGV가 독립 예술영화계를 지원하겠다고 운영 중인 특별관 브랜드다. 2004년 ‘인디영화관’이란 이름으로 출발한 뒤 ‘무비꼴라쥬’를 거쳐 2014년 지금의 ‘CGV 아트하우스’란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국내·외 영화를 막론하고 작품성이 있지만 눈에 띄기 힘든 작품들을 선별해 관객들과 만나는 기회를 높이겠다는 취지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영화의 경우 대략 2010년 초부터는 공동제작의 형태로 제작 단계부터 참여해 기획부터 제작·개봉·홍보까지 원스톱 비즈니스를 진행했다. <한공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우상>, <유열의 음악앨범> 등이 이런 형태로 개봉한 영화들이다. 이번 <집 이야기>는 배급에만 관여했다.

CGV아트하우스

CGV아트하우스


독립영화인들에게는 당연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인맥과 자본이 금쪽같은 그들에게 ‘아트하우스’ 작품으로 선택된다는 것은 날개를 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최근 사업 종료 발표 이후 독립영화계 일각에서 거센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아트하우스를 통해 개봉하는 작품이 한국영화에 해당된 것이 아니고 수입 외국작품들도 상당수라는 점이다. 또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가 모호해진 요즘은 과연 이 작품을 아트하우스에서 상영할 작품인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작품들도 적잖았다. 지원 작품의 경우도 선정의 형평성 역시 객관적으로 검증된 바는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애초 대형영화들에 편중된 스크린 분배의 문제가 없었다면 이런 시스템 자체가 필요 없었으리란 점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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