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편애중계>의 ‘꼴찌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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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개봉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 세운 학력만능세태를 빗댄 작품이다. 당시 전교 1등이던 중3 여학생이 투신자살한 사건에서 모티브를 딴 이 영화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깊은 울림을 줬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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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딱 30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올 초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SKY 캐슬>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는 차치하더라도 당장 예능 프로그램조차 줄 세우기에 급급한 게 현실이다. “1등부터 100등까지 당신의 소년·소녀를 뽑아달라”고 호소하던 Mnet <프로듀스> 시리즈나 사교육 비법을 알려준다는 MBC <공부가 머니?>를 보면 웃음을 줘야 할 예능 프로그램조차 ‘행복은 성적순’이라고 강요하는 듯했다.

MBC <편애중계>의 ‘꼴찌고사’는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대한 일종의 반란이다. 흔히 전교 꼴찌라고 하면 어딘가 비뚤어진, 예비 사회부적응자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편애중계>에 출연한 평택의 꼴찌 고교생들은 성적이 좋지 않은 것만 빼면 누구보다 해맑고 행복해 보였다. 1등을 하지 않아도 고기 먹을 수 있어 좋다는 정태준 군이나, 여가수들의 댄스를 자유자재로 커버하는 이예성 군, 센스있는 3행시 실력을 갖춘 김민지 양은 티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10대 그 자체였다.

이들을 모아놓고 실시한 꼴찌고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제한시간 5분 안에 찍기로 전교 1등인 학생회장보다 많은 문제를 맞히거나 비빔밥 재료와 선생님의 발소리를 알아채야 한다. 담임교사 이름으로 3행시를 짓고 한 달 버티기 체력전을 펼치기도 했다. 기상천외한 시험문제가 펼쳐지는 가운데 출전한 학생들이 신나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오죽했으면 패널로 출연한 가수 박완규가 “과거 0점도 맞고 꼴찌도 해봤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바빠질 수 있다”는 응원메시지를 전달했을까.

‘꼴찌고사’는 중계진인 김제동의 아이디어로 이뤄진 방송이다. <환상의 짝꿍>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들의 티 없는 모습을 전했던 그는 ‘꼴찌고사’를 통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당당하게 전달했다.

<편애중계>의 콘셉트는 서장훈·안정환·김병헌 등 스포츠 레전드 3인방이 붐·김성주·김제동 등 베테랑 MC 3인과 입을 맞춰 오로지 내 편만을 응원하는 일종의 편파 방송을 지향한다. <프로듀스> 시리즈처럼 줄을 세우지 않아도, <골목식당>처럼 전문가에게 야단맞지 않아도 된다. 오로지 내 편만 응원하는 중계진의 응원을 듣고 있자면 출연진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편애중계>는 ‘꼴찌고사’에 이어 ‘이생망 구르기 대회’도 준비 중이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부르짖는 청춘들이 몸을 던져 구르는 대회다. 천진난만한 10대 청소년들의 모습에 이어 다음 방송에서는 청춘들의 어떤 모습을 접할 수 있을까. 방송을 보며 생각했다. 현실에도 무조건적인 내 편이 있었다면 구하라나 설리처럼 안타까운 청춘의 죽음을 접하지 않았을 텐데. 비록 시청률은 낮지만 각박한 현시점에 꼭 필요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조은별 브릿지경제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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