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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충돌 위험성 간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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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철새도래지 조사 부실

차 문을 닫는 소리에 놀란 새들이 후드득 날아갔다. 지난 11월 20일 찾은 제주 구좌읍 하도리 철새도래지 일대의 바다와 습지에는 겨울을 나기 위해 찾은 철새들로 북적였다. 습지 가운데로 투명하게 맑은 물이 흐르고, 갈대밭이 무성했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비어 있는 펜션과 공사가 중단된 펜션이 보였다. 사람 손이 그만큼 덜 미치는 곳이라 새들은 그곳을 보금자리로 삼고 있었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의 철새도래지에서 11월 20일 철새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주영재 기자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의 철새도래지에서 11월 20일 철새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주영재 기자

하도리의 수직방향 아래로 종달리와 오조리, 시흥리 등에도 이와 비슷한 규모의 철새 도래지가 있다. 도요새를 비롯해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와 천연기념물인 팔색조, 알락꼬리마도요 등이 발견되는 곳이다. 안내해준 인근 신산리 주민 김광종씨(55)는 “늘 나올 때마다 저어새 서너 마리씩을 볼 수 있었다”며 “보호종인 맹꽁이도 몇백 마리씩 있는데 번식기에는 옆사람과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끄럽다”고 설명했다.

철새들은 주로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날아가는 도중 이곳에 들른다. 10월 하순부터 3월 중순까지가 주된 이동 시기다. 하지만 도요새의 경우 봄철과 가을철인 3월부터 5월 하순, 8월에서 10월 중순에 많이 이동한다.

예정지 약 3~5㎞ 안에 철새도래지

종달리와 하도리, 오조리의 철새도래지는 제주 제2공항 예정지에서 직선거리로 약 3~5㎞ 안에 위치한다. 조류 충돌의 위험성이 큰 만큼 국토부가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의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할 때 꼼꼼히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철새 조사가 있었던 시기는 1월과 2월, 9월 등 상대적으로 철새의 이동이 적을 때였다. 조류전문가인 주용기 전북대 전임연구원은 “6~7월을 빼곤 거의 다 이동 시기에 해당해 이 시기를 다 조사해야 한다”며 “높이 뜨진 않지만 팔색조나 긴꼬리딱새, 두견이도 공항부지 안에 서식하고 있어서 이런 새들이 받는 영향을 파악하려면 사계절을 다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토부의 조사가 형식상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지난 10월 17일 국토부가 환경부에 제출한 ‘제주 제2공항의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본안에 대해 “본 사업지구는 철새도래지가 인접하고, 과수원과 양돈장, 사냥금지구역, 조류 보호구역 등 다수의 부정적한 시설물이 입지한 지역에 있다”며 “국내·외 규정에 부합하지 않아 입지적 타당성이 매우 낮은 계획”이라고 밝혔다. KEI는 평가서 초안 검토 시에도 ‘법정보호종의 서식지역이자 철새도래지 보전을 위한 노력과 항공기·조류 충돌 예방 등을 고려해 입지 대안을 검토할 것’을 요청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환경부가 보완의견을 내자 김광종씨 등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일부 지역 주민들은 조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직접 철새도래지를 찾아 새들을 촬영하고 새와 맹꽁이 등의 소리를 녹음해 환경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김씨는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엉터리로 했다”며 “국토부가 제대로 조사할 의도가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12일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연안에서 촬영된 꼬까도요(위)와 지난 4월 5일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에서 촬영된 멸종위기종 저어새의 모습. / 주용기 전북대 전임연구원 제공

지난 5월 12일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연안에서 촬영된 꼬까도요(위)와 지난 4월 5일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에서 촬영된 멸종위기종 저어새의 모습. / 주용기 전북대 전임연구원 제공

항공기·조류 충돌 위험성 평가모델은 공항 운영 시와 신규공항 입지 시에 실시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 하지만 국토부는 공항 운영 시에 적용되는 위험성 평가모델을 사용했다. KEI는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검토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면서 해외의 신규공항 입지 평가를 위한 조류 충돌 위험성 평가모델을 이용해 입지 타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본안에서도 변화가 없었다.

문상빈 제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제주공항에는 참새·제비·비둘기 같은 소형 조류가 주로 나타나 오리류 등 중대형 조류가 많이 출현하는 성산 후보지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다”라며 “국토부가 제주공항의 조류 종류를 그대로 적용해 평가하니 성산후보지에 중·대형 조류가 없는 것처럼 평가됐다”고 말했다.

동굴·소음평가도 부실

조류 충돌은 항공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2014년부터 올해 7월 말까지 발생한 조류 충돌은 총 1459건에 달했다. 2009년 뉴욕 허드슨강의 항공기 비상착륙도 조류 충돌이 원인이었다. 이 때문에 신규공항을 지으려면 항공기와 조류 또는 야생동물의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국토교통부 고시인 ‘조류 및 야생동물 충돌 위험 감소에 관한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항에서 3㎞ 이내에는 조류를 유인하는 양돈장, 과수원, 승마연습장, 경마장, 야외극장, 드라이브인 음식점, 식품가공 공장을 설치할 수 없다. 8㎞ 이내에는 조류보호구역, 사냥금지구역, 음식물쓰레기처리장이 없어야 한다. 공항으로부터 13㎞ 이내의 ‘공항 주변’은 조류 충돌로부터 안전해야 한다.

공항 부지 인근에 철새도래지 벨트가 형성된 성산부지에 제2공항을 예정대로 건설할 경우 국토부 고시에도 어긋날 가능성이 있다. 주용기 연구원은 “제2공항 계획대로라면 비행기가 철새도래지 방향으로 뜨고 내려앉기 때문에 이 주변을 선회하는 철새와 부딪칠 위험이 높다”며 “오리 종류 등 큰 새들이 많아 비행기 안전에 더 큰 위험을 준다”고 말했다. 새들이 날아다니는 높이보다 비행기의 이·착륙 고도가 높아 안전하다는 국토부 주장에 대해서도 “날다가 먹이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면 거의 60~70도 각도로 급강하하기도 하고, 이동할 때는 더 높이 날기도 한다”며 “인위적으로 비행기의 이·착륙이 안전하다는 걸 맞추기 위한 보고서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소음피해 사전 예방을 위한 방안 검토나 동굴 등 지하 동공 조사도 부실했다는 게 KEI의 검토 의견이다. 실제 환경단체가 조사한 결과 국토부가 찾은 9개를 훨씬 넘는 69개의 숨골과 동굴 등이 발견됐다.

소음피해도 일부러 축소하기 위해 제주도의 풍향 통계를 왜곡했다는 게 환경단체의 주장이다. 국토부는 활주로 이용 방향을 ‘남측 방향 이륙/북측에서 착륙’을 80%, ‘북측 방향 이륙/남측에서 착륙’을 20%로 설정했다. 비행기는 이륙에 필요한 양력을 얻기 위해 주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마주해 이륙 방향 설정을 한다. 성산의 주풍이 서북서풍 계열임을 고려하면 북측 방향으로의 이륙이 더 많아야 한다.

비행기의 경우 이륙 시 최대 출력을 내기 때문에 소음이 크다. 내륙 쪽으로 이륙하는 비율이 많을 경우 그만큼 소음피해가 커진다. 문상빈 의장은 “지금 국토부 계획대로 남측으로 이륙 80%를 잡으면 뒷바람을 안고 이륙하게 된다”며 “뒷바람을 안고 가면 적재된 화물이나 탑승객이 만석일 경우 무게가 상당해 자연적으로 이·착륙 길이가 길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 공항이 건설되면 주풍이 서북서풍이라는 이유로 바다 쪽에서 신산리 방향으로 착륙하고, 이륙은 북쪽으로 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문 의장은 “실제 공항 운영에서 북쪽으로 이륙할 수밖에 없는데 동쪽의 구좌나 세화, 우도 쪽의 소음 피해가 커지게 된다”며 “이쪽이 주로 공항 찬성 지역이라 반대로 잡아서 소음 피해를 일부러 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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