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프로그램에 ‘차별과 배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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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국밥!” 무슨 음식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한 외국인 출연자가 말한다. “미국에서 한식 파는 분들이 많이 생기는데 불고기·삼겹살은 있지만 국밥은 찾을 수가 없어요. 새우젓 찍어 먹으면 정말 맛있어요” 패널들은 감탄한다. “진짜 한국 사람이다”, “국밥 좋아하면 끝나는 거지.”

#미국에서 온 운동코치가 동네에서 수업을 한다. 운동복 차림의 이주여성들이 공원에 모여 있다. 그 위로 ‘중국·몽골·필리핀·네팔·캄보디아 다문화 이주여성들을 위한 수업’이라는 자막이 뜬다.


일러스트/김상민 기자

일러스트/김상민 기자

대다수는 무슨 이야기인지 갸우뚱할 것이다. 이주민 이야기를 다룬 예능·교양 프로그램 속 차별 요소들이다. 방송이 공익성과 오락성을 적절히 버무려가며 다문화를 다루는 건 반가운 일이다. ‘서로를 이해하자’는 기획의도 아래 만들어진 프로그램인데 차별이라니. 무슨 소리일까.

선량한 차별 “한국에서 음식문화가 굉장히 중요하고, 같이 먹는다는 게 가까워진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처음엔 한국음식 먹는다고 ‘한국 사람 다 됐다’는 말 들었을 땐 칭찬 같았죠. 많이 듣다보니 나는 나인데, 한국 사람이 돼야 하는가. 무언의 압력으로 느껴져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지원사로 일하는 장동희씨(49·일본)는 말한다. 이주한 지 20년이 넘었다. 매운 걸 잘 못 먹어서 김치를 즐기진 않는다. 한국음식을 잘 먹어야만 인정해주는 듯한 분위기가 부담될 때가 있다.

이주민이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한국인다운 식습관과 일상생활을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꼭 ‘한국 사람 다 됐다’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이는 한국문화를 흡수하도록 하는 ‘동화주의’와 맞닿아 있다. 이주민들이 하루빨리 한국문화에 동화되기를 기대하지만 그들 문화를 배우려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다문화’라는 용어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한다. 단적인 예로 서구에서 온 사람들의 국제결혼은 ‘글로벌’이라고 포장되지만 다른 지역이면 ‘다문화’가 돼버린다. 다문화는 동남아시아 등 일부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다. 어린이용 사전에서도 다문화 사회를 ‘한 국가나 한 사회 속에 다른 인종·민족·계급 등 여러 집단이 지닌 문화가 함께 존재하는 사회’라고 알려준다. 다문화 개념을 잘못 쓰면 주류사회 성원과 구분하고 배제하는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교실에선 이주 배경이 있는 아이들의 이름이 사라지기도 한다. ‘다문화’로 불리기 때문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모니터링 결과를 보자. 이주민 4명, 한국인 4명이 지난 6월부터 3개월간 이주민이 출연하는 7개 프로그램을 살펴봤다. EBS의 <다문화 고부열전>·<글로벌 아빠 찾아 삼만리>, KBS1의 <이웃집 찰스>, MBC에브리원의 <대한외국인>·<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등이다.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동화주의’ 요소가 발견됐다. 결혼 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를 가난하고 도움을 줘야 할 대상으로 묘사하는 관행도 여전했다. 모니터링 보고서는 “방송이 차별과 배제의 원인을 인종적인 편견과 차별로 다루기보다 개인적인 감정이나 일시적·감정적 갈등 상황으로만 봉합하고 있다”며 “공적 매체인 방송이 차별과 배제를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위험한 포맷 <다문화 고부열전>은 가장 많이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프로그램이다. 갈등의 원인 제공자는 주로 이주여성으로 그려진다. 이후 두 사람이 며느리의 고향을 여행하고, 서로 이해하게 됐다는 결말을 낸다. 갈등과 화해 구도지만 이주 배경이 있는 가정의 부정적 모습만 부각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지금은 종영한 KBS1 <러브 인 아시아>가 ‘착한 며느리와 순종적 아내’ 포맷이었다면, <다문화 고부열전>은 ‘못된 며느리’를 등장시켰다는 평도 나온다.

민언련 모니터링 기간에는 짧은 바지를 즐겨입는 며느리가 등장했다. 시어머니는 “한국에 왔으니 한국 법을 알라”며 며느리를 나무란다. 일터에서 늦게 돌아온 며느리 때문에 밥때를 놓쳤다며 “날 놀리느냐”고 타박하는 시어머니도 있었다. 며느리는 “늦게 들어와서 잘못했어요”라고 어머니를 달랬다. 내레이션은 이 상황을 화기애애하게 전한다. “금세 화가 풀린 시어머니. 아이처럼 투정 부리다가도 며느리가 살뜰하게 챙겨주면 금세 촤~ 풀립니다.”

정혜실 이주민방송 MWTV 대표는 “위험한 포맷”이라고 지적했다. 이주여성이 가부장 문화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그는 “이주여성들은 굉장히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데 (시청자들은) 개인의 맥락은 알지 못한 채 갈등 구조 안에서 성차별적인 것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여성이니 내가 당연히 우월한 위치에 있다’, ‘돈 주고 사왔는데 그렇게 사는 게 어디야’라는 인식을 내면화한다”고 말했다.

찍어야 한다 “(방송을) 찍는 건 너무 중요하다. 아무것도 안 만드는 건 더 큰 문제다.” 모니터링 참가자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불편한 것도 참 많다’는 비웃음 섞인 시선을 거두기 힘들다. 핵심은 이것이 개인이 아닌 미디어의 문제라는 데 있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다양한 1인 미디어들이 유튜브 등에서 개인 표현을 자유롭게 하는 시대다. 이들은 이주민같이 소수자에 대해 편견이나 선입견이 들어간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언론·방송이 그 단서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소수자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만 담아두거나 친구와 이야기하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개인적인 네트워크에 의해 사회적으로 확산된다”며 “방송의 사회적 책임이 더 커졌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일 의무도 커졌다”고 했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자꾸 차이를 드러내 서로의 경계를 보여주려 하지 말고,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감의 요소를 찾아나가는 데 방점을 찍으면 실수가 덜 나올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차이를 말한다면 우위를 따지지 않고 그대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며 “방송을 만드는 사람에겐 취사선택의 여지가 아니고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라고 했다.

이주여성 단체 ‘톡투미’를 이끄는 이레샤(44·스리랑카)는 말한다. “저는 20년을 이레샤가 아닌 ‘다문화 여성’으로 살고 있어요. 방송이 이주민들을 신기하고 특별한 존재로만 다루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방송의 힘이 정치인의 말, 다문화 정책보다 크다고 보거든요. 사람들은 이주민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고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대답을 기대하지만, ‘안양에서 왔어요’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요.”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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