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동화와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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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겨울왕국 2

원제 Frozen Ⅱ

감독 크리스 벅, 제니퍼 리

출연 크리스틴 벨, 이디나 멘젤, 조시 게드, 조나단 그로프, 스털링 K. 브라운, 에반 레이첼 우드 외

개봉 2019년 11월 21일

상영시간 103분

관람등급 전체관람가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현실은 동화와 다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게 되었답니다’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현실의 소녀는 여인이 되고 할머니가 된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이다. 여왕은 한때 폭주해 북쪽 산에 얼음궁전을 짓고 칩거했다. 생과 사를 건 동생의 모험 덕분에 개과천선해 다시 돌아와 권좌에 앉았다. 자매애가 언제까지나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재산과 달리 권력은 나눌 수 없다. 누군가는 떠나야 한다. 언젠가는…. 그게 역사 속 현실이다. 북유럽의 크고 작은 왕국 내지는 공국들 분화의 운명이기도 했다.

전작 <겨울왕국>은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으로는 현재까지 유일하게 1000만이 넘은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2편도? 글쎄, 잘 모르겠다. 극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좋은 작품은 연령이나 세대, 성별 등을 떠나 각자 자신의 눈높이에서 환상이든, 간접경험이든, 교훈이든 얻어가는 것이다.

‘렛 잇 고’ 인기 넘어설까

5년 만에 나온 속편 <겨울왕국 2>의 작품완성도는 뛰어나다. 앞서 좋은 작품이 가져야 할 요건은 모두 갖췄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뮤지컬 번안이 가능한 대중적인 곡들로 가득 차 있다(이 영화의 노래들도 로페즈 부부가 모두 작사·작곡했다). 사전에 유튜브 등에 공개된 이 영화의 대표주제곡 ‘인투 디 언노운(Into the Unknown)’도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전작의 ‘렛 잇 고(Let it Go)’만 할까.

영화의 설정은 전작이 다룬 사건 3년 후의 이야기다. 언제부터인가 엘사는 ‘자신의 귀에만 들리는 누군가의 허밍’에 사로잡혀 있다. 그건 어떤 존재가 자신을 부르는 메시지다. 여기에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린 시절 들려주던 자장가의 추억이 묘하게 겹쳐 있다. 전편에서 엘사와 안나의 부모는 이웃공국을 가다가 폭풍우를 만나 난파되어 사망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 후 얼음여왕 엘사가 폭주한 것이고. 엘사의 고민은 근원적인 질문, 이 세상에서 나의 ‘존재 이유(Raison d′^etre)’는 무엇인가에 이어져 있다.

신통하게도 그녀가 마법으로 만들어낸 눈사람 올라프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 그렇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세상에 던져진 ‘나’라는 존재에 대해 모두 궁금해한다. 이 영화를 보게 될 다섯 살 꼬마부터 아이의 손을 붙잡고 온 아빠·엄마까지 평생 얻지 못할, 어쩌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을 만큼 세상의 땟국물에 절어서야 문득 깨닫게 되는 답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엘사는 떠난다. 해답을 얻기 위해 눈보라가 몰아치는 머나먼 북국으로. 북국과 그녀의 왕국 아렌델 사이에 놓인 사납고 거친 바다는 인생사가 그렇듯 진실을 깨닫기 위해서 돌파해야 하는 시련에 대한 비유다. 안나에게 청혼하려는 크리스토프의 시도는 매번 오해를 낳으며 좌절한다.

이야기의 구조는 전편과 유사하게 설계되어 있다. 엘사의 모험이 있고, 안나의 모험이 있다. 안나는 자신의 모험(희생)이 뒷받침되어야 엘사가 완성된다고 믿는다. 내러티브는 관객들도 그렇게 믿도록 흘러간다. 즉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은 신분 차이를 넘어 하늘이 맺어준 인연인 크리스토프와 짝을 이룬 안나이며, 그녀의 목격 내지는 희생담이다. 종국에 이르러 아렌델 왕국을 떠나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는 이미 예정된 결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권력은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다시 동화의 결말구조로 봉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사와 안나, 크리스토프와 스벤, 올라프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결국 동화 속 왕국을 떠날 주인공은

나이가 든 뒤로는 동화가 단순한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다. 헨젤을 잡아먹으려 했던 과자의 집 마녀는 자신의 욕심에 대한 대가로 화덕에 갇혀 불타 죽는다. 마녀를 그렇게 처리한 오누이가 집을 차지했다면 그걸로 이 가족의 ‘정상성’은 회복될 수 있을까.

동화적 이야기 구조를 가진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이웃집 토토로>(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1988)에서 대충 얼버무려져 감춰져 있는 이야기는 전후 1950년대 치료약이 없어 시골 요양원에서 폐병으로 죽어간 엄마와 어느 날 엄마를 찾겠다고 나갔다가 둠벙에 빠져 익사한 여동생의 사연을 간직한 소녀가장의 어두운 회고담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명시적으로 길을 잃고 헤매던 여동생은 토토로 덕분에 해가 지기 전에 발견됐고, 내친김에 고양이 버스를 타고 엄마 문병까지 다녀온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은 현실 세계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행복한 존재는 이야기 속에서만 영생한다. 물론 손잡고 함께 이 영화를 보러갈 초등학생 딸이 당장 떠올릴 고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아렌델 왕국은 무엇으로 먹고살았을까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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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부터 궁금했던 것은 엘사·안나 자매가 이어받게 된 아렌델 왕국은 도대체 무엇으로 먹고사느냐는 것이다. 교역 내지는 무역중개로 국부를 쌓은 것처럼 묘사하는데, 말이 좋아 교역이지 일종의 ‘깡패짓’이다. 다뉴브강이나 라인강처럼 유럽 여러 나라를 경유하는 강은 도로나 철로가 발달하기 전까지 주요 교통로였다. 중세 공국들은 멀쩡한 강을 가로막고 통과하는 배들을 대상으로 통행세를 걷어 먹고살았다. 영화에서 댐은 아렌델 왕국이 북쪽의 원시부족을 쫓아내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허울 내지는 명분이었다. “기독교 문명을 전파하기 위해 왔다”며 아메리카 원주민을 토벌한 포르투갈 사람들이나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철도를 부설했다는 일제의 논리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기후변화처럼 전 지구적 위기가 발생했다면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쪽은 누구일까.

사실 자매의 할아버지, 아렌델의 선친왕이 댐을 선물했다는 영화 초반의 설정부터 알아차렸다. 아하, 결국 저게 문제가 되겠구나. 사이좋았던 아렌델 왕국과 이웃 노털드라 부족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결국 거대한 안개장벽이 그들을 갈라놓는다. 인간이 자연을 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장벽(댐)이 무너져야 이들 사이의 갈등은 해결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 그 해결 주체는 당연히 영화의 두 주인공 자매들일 것이고.

실제 중세 유럽의 왕정사를 살펴보면 서로 다른 왕가 사이의 결혼은 문자 그대로 정략적인 경우가 많았다. 두 나라의 왕가가 사돈을 맺은 것은 ‘전쟁 대신 친교’의 상징이다. 엘사와 안나 자매가 해결의 주체인 것은 전편에서는 생략했던 이들의 ‘출생 비밀’과 관련 있다. 앞으로 영화를 볼 사람을 위해 “영화 내용에 대한 언급은 가급적 삼가달라”고 영화사 측으로부터 신신당부 받았는데, 아마 눈썰미 좋은 사람이라면 무슨 이야기인지 눈치챘을 것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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