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LG트윈스의 팬이다. 매년 시즌이 끝나면 LG트윈스 팬들은 한 지붕 이웃인 두산 베어스의 선전을 배 아파하며 경기 이천의 2군 구장인 챔피언스파크를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수분 야구’라고 불리는 두산의 탄탄한 신인 육성시스템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다.
![KBS](https://img.khan.co.kr/newsmaker/1353/1353_7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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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야구 얘기를 하는 것은 요즘 방송가의 화제인 KBS 2TV <동백꽃 필 무렵>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한때 케이블채널과 종합편성채널 드라마에 밀려 ‘애국가 시청률’을 전전했던 지상파 채널이 이 드라마의 선전으로 다시금 자존심을 챙길 수 있었다.
시청자들은 싱글맘 동백(공효진 분)과 시골청년 용식(강하늘 분)의 로맨스와 더불어 두 사람의 관계를 위협하는 연쇄살인범 까불이의 정체가 가장 큰 궁금증이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까불이만큼이나 대본을 집필하는 임상춘 작가의 정체가 궁금하다. 임상춘 작가는 30대 초반의 여성이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게 없을 만큼 베일에 싸여 있다. 임상춘이란 이름도 필명이다. 덕분에 방송 취재기자들 사이에선 어느 매체가 임 작가와 먼저 인터뷰를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임 작가의 대본은 쫀쫀한 흡입력과 빈틈없는 캐릭터 배치가 강점이다. 지난해 대본을 받은 공효진이 초반 스케줄 문제로 고사하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져 대본을 보여달라고 할 정도다. 결국 공효진이 출연을 결심했고 군에서 제대한 강하늘이 합류하면서 지금의 라인업이 완성됐으니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는 방송가의 속설이 어느 정도 들어맞은 셈이다.
임상춘 작가는 2013년 방송콘텐츠진흥재단의 <사막의 별똥별 찾기>에 당선되면서 방송가에 발을 디뎠다. 이후 KBS 2TV 4부작 단막극 <백희가 돌아왔다>를 통해 이름을 알렸고, <쌈, 마이웨이>로 안타를 날리다 <동백꽃 필 무렵>으로 대형 홈런을 쳤다. 야구로 치면 2군에서 두각을 드러내다 1군으로 발탁돼 존재감을 드러낸 셈이다.
단막극은 드라마 제작의 2군이다. 화수분처럼 업계의 새로운 인재를 키워낸다. JTBC 드라마 <SKY 캐슬>의 유현미 작가도 1992년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신인상을 받은 뒤 KBS에서 약 20편의 단막극을 쓰며 필력을 단련했다. <비밀>의 유보라 작가도, <정도전>의 정현민 작가도 KBS 단막극을 거쳤다. PD나 배우에게도 단막극은 훈련의 장이다. <커피프린스 1호점>, <모두의 거짓말> 등을 연출한 이윤정 PD는 MBC 재직 시절이던 2005년, <태릉선수촌>으로 영화 같은 감성을 선사했다.
안타깝게도 지상파 3사 중 단막극을 방송하는 채널은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뿐이다. KBS는 지난 10월 27일부터 12월 29일까지 총 10주에 걸쳐 <드라마 스페셜>을 매주 금요일 밤 11시에 내보내고 있다. 종합편성채널 JTBC도 하반기 단막극인 ‘드라마 페스타’로 <루왁인간>과 <안녕 드라큘라>를 선보인다. 아직 채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날것 같은 구성의 드라마를 보는 것은 색다른 재미다. 단막극을 통해 더 많은 임상춘·유현미가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조은별 브릿지경제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