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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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다 밝혀지지 않은 그날의 7시간

5년 전 4월 16일, 진도 앞 맹골수도 바다에서 아무런 죄 없이 죽어갔던 304명의 원혼과 대비해 이 7시간의 공백은 ‘분노’로 채워진다. ‘기자는 기사로 말을 한다’고 흔히 말하지만 이 기자에게 영화는 일종의 살풀이 씻김굿이자 진혼곡이다.

제목 대통령의 7시간

감독 이상호

출연 이상호, 박근혜, 조응천, 안진걸, 김기춘 등

장르 다큐멘터리

상영시간 1시간 19분

상영등급 12세 관람가

개봉일 2019년 11월 14일

시네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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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다. 휴대폰으로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쓴 것은. <대통령의 7시간>은 따로 기자·배급 시사가 잡히지 않았다. 요즘엔 종종 있는 일이다. 극장에 가는 대신 온라인으로 동영상 주소와 비밀번호를 받아 하는 온라인 시사. 모바일 환경이 지금보다 더 대세가 되면 더 자주 있는 일이리라.

대통령의 7시간. 기자도 여전히 관심을 가진 대목이다. 아직 다 밝혀진 것은 없다. 어떤 부분은 의혹 제기에서 끝났다. 영화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과거 특정 시점에 어떤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의 분초 단위까지 다 밝히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라는 생각을 하더라도 어떤 사건들, 그 사건에서 핵심적인 행위자였던 개인의 경우는 다르다. 그 사건이 역사적 분기점이었다면 특히. 미국에서 케네디를 암살한 오스왈드의 행적이 수년 전부터 특히 암살 당일을 기준으로 수 주 전부터 낱낱이 파헤쳐져 있다. 케네디를 살해한 그는 정말 공산주의자였을까. 오스왈드마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므로 답할 사람은 없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청와대의 빈 7시간과 관련된 사람들 중 아직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은 거의 없다는 데 위안을 삼아야 할까. 영화는 이상호 고발뉴스 대표가 비선실세 최순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추적하는 2012년 대선 전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취재 성공기가 아니다. 대부분 무수한, 취재 실패담이다. 태블릿PC가 폭로된 뒤 영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최순실이 검찰에 출두할 때 수많은 기자들, 시위자들의 틈에 섞여 이 기자는 “세월호 사건이 나던 날, 대통령은 뭐하고 있었던 거냐”고 묻는다. 카메라는 최씨의 바로 옆에 이 기자가 있었다는 것을 잡아낸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비어 있는 ‘7시간 행적’을 주목하는 이유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 밝힌 것은 아니다. 최태민의 아들 최재석씨의 증언을 끌어낸 것이나, 당일이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으나 그날 전후 시점에 이른바 ‘비선진료’가 이뤄지고 있었다는 구체적 증언을 이 기자는 처음으로 밝혀냈다. 그건 온전히 이 기자의 공이다. 5년 전 4월 16일, 진도 앞 맹골수도 바다에서 아무런 죄 없이 죽어간 304명의 원혼과 대비해 이 7시간의 공백은 ‘분노’로 채워진다. ‘기자는 기사로 말을 한다’고 흔히 말하지만 이 기자에게 영화는 일종의 살풀이 씻김굿이자 진혼곡이다.

지난번 리뷰한 4대강 사업을 다룬 <삽질>도 그렇지만, 이 영화가 다루는 소재 역시 기자가 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들여다봤던 사안이다. 영화상에서 그저 풍경으로만 스쳐지나간 장소의 맥락, 영화의 사실상 주연인 이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댔던 인터뷰이들이 내뱉은 말의 진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최순실은 정말 아버지로부터 영통능력을 이어받아 대통령을 주술로 휘어잡고 있었을까.

탄핵 국면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서 꼭두각시 연극으로 풍자한 것처럼, 언제부터인가 박 대통령은 ‘최순실의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껍데기, 대리인으로 전락한 것은 사실일까. 그렇다면 왜? 대통령이기 전 ‘인간 박근혜’의 내밀한 모습을 오랫동안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던 사람들이 제기했던 의문이기도 하다. ‘이제야 말하건대’ 그들은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최씨의 안하무인-취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를 외국 어디의 슈퍼마켓에서 10여분간 만난 사람조차 유별난 최씨의 행동 덕분에 강한 인상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좋게 말하면 여장부적인 애티튜드는 알고 있었지만 철권통치자의 영애이자 그 자신이 권력의 정점에 오른 박근혜가 드러낸 ‘한없이 나약한’ 모습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언제부터 꼭두각시가 됐을까

기자는 과거 기사에서 최씨 일가와 박근혜의 40년 관계를 ‘포획’이라고 규정한 적이 있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박근혜 탄핵사태 언론보도를 다룬 책에서 <주간경향>의 이 기사를 언급하면서 “포획이라는 단어 이외에 달리 설명할 단어가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기자 역시 궁금하다. 세월호 사건 첫 보고 시점인 오전 10시 15분부터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 있는 국민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타난 오후 5시 15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현재까지 밝혀진 두 행적은 오후 2시 15분에 대통령 관사에서 이른바 ‘문고리 3인방’ 비서들·최순실과 회동이 있었고, 그 뒤 미용사 정매주·송주 자매가 청와대에 들어가 급히 머리를 만졌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최씨의 회동은 그날 갑작스레 잡힌 일정이 아니었다. 원래 다른 현안 논의가 예정되었지만, 세월호 사건 대책으로 주제는 바뀌었다. 원래 논의하기로 했던 현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최순실의 전 남편 정윤회는 왜 하필 그날 오전과 오후, 청와대 주변에서 행적이 포착되었을까. 지금도 당사자들 중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다.

운명의 날이었던 2014년 4월 16일

사실 ‘대통령의 7시간’이라는 주제는 지금도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면 묻고 다니는 주제다. 영화에서 재판을 받고 있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말을 아끼지만(오른쪽), 그 뒤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와 양정철 비서가 공을 들여 민주당으로 영입해 국회의원이 된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국회의원을 하기 전 홍대 앞에 문을 연 선술집에 찾아간 것은 문 대통령 일행만이 아니었다. 기자들도 작당하고 그를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에 나온 것보다 그는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를 만나고 난 다음 기자들끼리 나눈 인상평은 “정치에 뜻이 있나보네”였는데, 정말 그대로 되었다. 조 의원이 청와대에서 나온-정확히 말해 쫓겨난 날은 그해 4월 15일, 세월호 사건 하루 전이었다. 어찌 보면 천운이다.

시네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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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취재하면 할수록 부각되는 것은 세월호 사건이 나던 4월 16일이다. 세월호 사건만이 아니다. 그날을 전후로 많은 사건이 있었고, 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운명의 추가 기울었다. 운명론이나 팔자 같은 것을 믿지 않는 편이지만, 국가운영과 같은 대사(大事)와 관련해서는 천운 같은 게 있는 것인가,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의 결론 부분에서 이 감독은 ‘대통령의 7시간’ 중 자신이 밝혀낸 또는 추론하는 것을 네 가지로 정리해서 이야기한다. 앞의 두 사항은 기자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 그건 언제 다른 기사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가톨릭 세례까지 받았지만 결국 기성 종교는 ‘인간 박근혜’가 갖고 있던 정신적 허기를 만족시키진 못했던 것 같다. 서울구치소 503호에서, 그리고 지금은 성모병원 특실에 머물고 있는 그는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을까. 역시 궁금한 부분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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