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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의 자격’ 놓고 교육계 시끌시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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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벽에 부딪친 교장공모제… 자격증 지닌 소수에게만 승진 혜택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여학생이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랑합니다.” 학생은 인사와 함께 공책 한 권을 긴 책상에 올려놓았다. “교장 선생님! 배움공책 다 썼어요. 도장찍어 주세요.” 공책을 이리저리 살피던 교장은 학생에게 “정리를 참 잘했네,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상’이라고 각인된 도장을 꺼내 공책 맨 뒤에 큼지막하게 찍었다. 아이는 진로체험 교육시간에 초청강연왔던 유명 개그맨의 사인을 교장에게 보여주며 자랑했다. 이어 “저 (공책 정리 끝까지 한 게) 이번이 두 번째예요. 저희 반에 6권째 쓰고 있는 친구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교장은 “아, OOO 말이지? 다 쓰면 또 교장실로 갖고 오라고 해줘”라며 새 공책과 함께 각종 젤리와 사탕이 포장된 선물을 학생에게 건넸다. 아이는 교장실 책상에 놓여있는 친환경 연필 두 자루를 고른 뒤 새 공책과 선물을 들고 교장실 문을 나섰다.
 

김선자 서울 천일초등학교 교장이 교장실을 찾은 저학년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배움공책에 칭찬서명을 하고 있다. / 천일초 제공

김선자 서울 천일초등학교 교장이 교장실을 찾은 저학년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배움공책에 칭찬서명을 하고 있다. / 천일초 제공

열려있는 교장실, 시설 개선에 힘써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위치한 서울 천일초등학교는 전교생이 ‘배움공책’을 쓴다. 글씨 쓰기가 아직은 서툰 1~2학년 학생들은 단순한 알림장 형식의 공책을 사용하고, 3~6학년 학생은 그날 배운 내용이나, 한 줄 독서, 일기 등을 공책 한 권에 쓰고, 다 쓴 공책은 교장실로 가져가 교장이 마련한 작은 선물과 함께 새 공책을 받아간다. 김선자 천일초 교장은 “공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쓴다는 것은 어른들도 어려운 일이다”라며 “아이들이 공책 한 권을 끝까지 다 쓰면서 자기주도 학습을 해 나가고, 그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이 학교에 취임한 이후 꾸준히 하고 있는 일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교사일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지만 교장이 되기 전까지는 마음만 있을 뿐 추진하지 못했던 일들을 그는 하나씩 실현하고 있는 중”이다.

교장실은 늘 열려있다. 김 교장은 “누구나 들어와 이야기하다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지난 1월 공간혁신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등이 직접 방문해 학교를 살펴보기도 했다.

“제가 이 학교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 두 곳에서 5년 6개월간 교감생활을 했어요. 그래서 이 학교가 어떤 곳인지 잘 알았죠. 이미 교장임용 점수를 채웠기 때문에 발령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꼭 이 학교에서 일하고 싶어 초빙형 공모제에 지원했습니다.” 그는 3차에 걸친 심사를 통과해 2017년 9월 1일자로 부임했다. 경쟁률은 4대 1이었다.

김선자 교장은 ‘공모의 달인’이다. 학교의 시설 하나를 바꾸려 해도 결국 ‘돈’ 문제를 벗어날 수 없다. 그는 선생님들과 협의를 통해 각종 공모사업에 지원해 예산을 받아왔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실시하는 ‘1학년 꿈을 담은 교실’ 사업을 하기 위해 11장 분량의 공모계획서를 작성해 제출, 사업비를 따냈다. 또한 서울특별시의회 의장을 설득해 자동차와 학생들이 함께 사용하던 비탈진 통학로와 오래되고 좁은 교문을 바꿨다.

그는 “너무 절실했다”고 말했다. 이어 “1학년 아이들이 수업하는 교실 벽이 아이들 키보다 높아 교실 안에서 밖이 보이질 않았다. 화장실은 타일이 썩어서 악취가 나는데 어떻게 아이들한테 여기(학교)에서 꿈과 희망을 키우라고 할 수 있겠나 싶었다”고 했다. 김 교장은 각종 공모사업을 통해 따낸 예산으로 학교를 하나 하나 바꿔 나갔다. 1학년 교실은 바닥에 온돌을 깔았다. 또 교실 어디에서나 앉아 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갖고 놀 수 있도록 만들었다. 우중충하고 낡았던 도서관도 ‘상상나무 도서관’으로 전부 리모델링했다. 아이들이 햇살을 받으며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시설 하나하나를 전부 교체했다. 그는 “이번 도서관 리모델링이 교직생활 중 네 번째”라고 말했다. 교장이 되고서는 처음 하는 도서관 개선사업이라 그의 의지가 많이 담겼다. 김 교장은 “교사일 때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원하는 만큼 바꿀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화장실도 전부 교체했다. 화장실 칸막이부터 그림, 조명, 색깔 하나까지 학생들이 회의를 거쳐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친환경적인 디자인으로 바꿨다.

직접 수업도 진행하며 성교육까지

조문경 서울 정릉초등학교 교장은 지난 9월 1일 부임한 직후부터 5·6학년 교실을 돌며 수업을 하고 있다. 조 교장은 ‘섹스’에 대해서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지난 10월 28일 6학년 2교시 수업시간. 조문경 교장이 자신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부터 풀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여러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아요? 여러분은 아빠 몸의 2억~3억개의 정자 중 가장 힘이 세고 튼튼한 정자가 엄마의 가장 튼튼한 난자를 만나 만들어지고 태어났죠.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 태어났으니 여러분들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일까요. 여러분들도 이제 2차 성징을 하면서 여자는 가슴이 나오고, 허리가 잘록해지고, 남자는 목소리가 변하면서 고추 부분에 털도 나요. 그런데 이게 이상하거나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그 모든 것을 2차 성징이라고 해요. 사람이 성장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에요.”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몇몇 남학생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리기도 했다. “이렇게 소중하게 태어나 자연스러운 성장을 거치는 여러분들은 스스로를 ‘귀한 존재’라고 생각해야 돼요. 그래서 굳이 상대방이 나를 미워할 행동을 할 필요가 없어요.” 화제는 자연스럽게 학교폭력 문제로 넘어갔다. 그의 말을 차분히 듣던 한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제가 악플을 여러 번 받아봤는데요. 그때 신고는 안 했는데….” 학생의 말을 들은 조 교장은 “만약 아직도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면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선생님과 의논을 해볼까”라고 말했다. 아이는 “5학년 때 있었던 일인데요, 그때 제 ID도 삭제했고, 저에게 악플을 달았던 아이도 용서해줬고.” 그는 아이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었다. 마침 수업 종료 알림음이 울렸다. 조 교장은 직접 구입한 아동용 비타민을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수업을 마쳤다. 그는 “교장이 정규교과를 맡아 수업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선생님들이 맡기 어려워하는 성교육 수업이나 학교폭력 강의 등을 앞으로도 꾸준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문경 서울 정릉초등학교 교장이 지난 10월 28일 6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나는 소중하다’는 주제로 성교육·학교폭력 교육을 하고 있다. / 류인하 기자

조문경 서울 정릉초등학교 교장이 지난 10월 28일 6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나는 소중하다’는 주제로 성교육·학교폭력 교육을 하고 있다. / 류인하 기자

조 교장의 학교 운영 제1목표는 ‘교사가 행복한 학교’다.

“선생님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어요. 아이들이 ‘선생님 섹스가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젊은 선생님들은 대답하기 난감할 수 있어요. 때로는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고요. 저는 나이가 많은 선생님이니까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죠. 이렇게 수업을 하면 그 시간 동안 선생님도 잠깐 쉴 수 있고, 저도 아이들의 얼굴을 더 익힐 수 있어 좋습니다.”

‘교장의 자격’을 놓고 교육계가 들썩이고 있다. 대입 정시 확대 등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와닿는 내용은 아니지만 교장 선발제도를 둘러싼 각종 논란은 교육계 내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다.

실제 어떤 교장이 부임하느냐에 따라 학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교장은 운동장의 돌멩이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교장의 자격’ 문제는 아이들의 교육권 문제와도 직결될 수밖에 없다.

현재 교장이 되는 방법은 ‘투 트랙’으로 이뤄진다. 20년 이상의 교직근무 경험에 각종 근무가산점 등을 쌓아 교장자격증을 취득하는 ‘교장승진제’와 ‘지원과 선발’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교장공모제’ 방식이다. 교장 공모제도 지원자격이나 유형에 따라 ‘초빙형’ ‘내부형A’ ‘내부형B’ ‘개방형’ 등으로 세분화된다.

수십 년간 ‘교장승진제’로만 운영되던 교장 임용방식에 변화를 꾀하게 된 것은 민주적 소통방식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부터다. 자신의 근무평정을 좌우하는 인사권자의 지시에 반대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드물다. 그런데 교직사회는 그동안 철저히 ‘교장 > 교감 > 교무부장 > 1급 정교사 > 2급 정교사’의 위계질서로 운영돼 왔다. 교장 승진 코스에 진입한 교무부장의 인사평정은 교감이 하고, 교장은 이를 추인하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교감의 인사평정은 교장이 하기 때문이다. 교무부장이 평교사들의 업무 경감이나 각종 고충 해소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행정에 주력하는 존재로 전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감과 교장에게 잘 보여야 할 시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포자(교장이 되기를 포기한 교사)’가 많아졌다고 해도, 교사들의 최종 목표는 교장일 수밖에 없습니다. 20년 가까이 교직생활을 하면 교사로서뿐만 아니라 학교 행정가로서 학교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상대하는 사람들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뭔가 권력을 쥐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퇴임한 전직 초등학교 교장 ㄱ씨)

교장 선생님 따라 학교 분위기 달라져

문제는 여전히 교장은 소수의 ‘교장자격증’이 있는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승진혜택’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교장공모제 시행으로 교장자격증이 없어도 학교와 지역사회의 신임을 얻는 성실한 교사들도 교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상태다. 교장공모제를 통해 교장에 임용되는 교원 또는 외부인들 대부분이 ‘교장자격증’ 취득자들이고, 그나마 내부형B 유형 선발에 따라 15년 이상 교직경력이 있는 교사들도 교장에 공모할 수 있게 됐지만 극히 제한적이다.

게다가 특정 노조(전교조)에 교장 몰아주기로 변질됐다는 일부 교원단체의 비판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진보성향의 초등학교 교사 ㄴ씨는 “전교조가 교장선출보직제를 주장할 때만 해도 4년의 교장 임기가 끝나면 다시 교실로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현실은 어떤가”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언론에서 교장공모제로 교장에 임용된 교사의 출신을 분석한 보도내용을 봐도 전교조 출신이 절대적으로 많은 건 그럴 수 있다 해도, 그들이 공모제 교장으로 교장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면 대부분이 교실로 돌아오지 않는 건 사실 아닌가. 정말 좋은 뜻으로 교장공모제를 찬성하는 교사들까지 싸잡아 비난을 받고 있다. ‘전교조의 배신’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초등학교 교사 ㄷ씨는 “주변에 교장 공모를 해보겠다는 15년차 이상 선생님들을 보면 작은 시골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며 다양한 교육을 해보고 싶다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면서 “교장승진제를 고집하느냐, 교장공모제를 찬성하느냐에 따라 보수, 진보로 선을 그어버리는 것도 잘못이다. 어차피 아무도 가고 싶어하지 않는 낙후된 지역 학교는 교장공모제를 통해 의욕 있는 선생님이 가시는 게 아이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결국 획일화된 교장 승진제도를 개선하려는 목소리가 진영논리에 묻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교장공모제를 통해 선발된 평교사 출신 교사가 학교를 잘 꾸려나가는 좋은 선례를 꾸준히 쌓아가면서 반대하는 목소리를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하다”며 “또한 자격증이 없는 공모제 교장들도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 더 많은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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