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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을 어떻게 뽑아야 정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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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교사가 교장 될 수 있는 ‘내부형B’ 선발방식 놓고 계속 논란

불과 12년 전까지 교사가 교장이 될 수 있는 길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최소 20~25년간의 교직생활을 거쳐 최대한 많은 승진점수를 쌓아 교장 임용 후보군에 오르는 것이다. 여기에는 많은 폐해가 발생했다. 교사는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따기 위해 교감·교장에게 무조건 잘 보여야 했다. 실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사권자에게 승진 청탁을 하기 위해 금품 등을 상납했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현직 교장들조차도 교장 입직 경로가 하나로만 정해져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약 20년의 교직생활 동안 피치 못하게 승진에 필요한 경력을 쌓지 못한 교사는 능력과 관계없이 교장이 될 수 있는 길에서 탈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하윤수) 및 17개 시도교원단체총연합회 회원들이 지난해 1월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내부형 교장공모제 전면확대 규탄 집회를 열었다. / 한국교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하윤수) 및 17개 시도교원단체총연합회 회원들이 지난해 1월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내부형 교장공모제 전면확대 규탄 집회를 열었다. / 한국교총

서울 종로구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현직 교장 ㄱ씨는 “내 근무평정을 좌우하는 교감과 교장의 지시가 때로는 부당해도 여기에 저항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다”면서 “학교 현장은 설령 상대가 교장이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내 인사평정을 쥐고 있는 인사권자와 교사는 절대 수평적 관계가 될 수 없다. 이는 교육계의 불행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교장 자격 미소지자 임용은 5% 불과

교원 승진제도는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교감과 교장 승진이 지나치게 연공서열 중심으로 이뤄져 있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교사가 관리직으로 진출할 길이 차단돼 왔다는 점, 승진 경쟁에서 밀려난 교사들이 사실상 ‘승포자(교장 승진 포기자)’가 돼 교사로서 필요한 직무연수나 자격연수, 교과 개발 등을 등한시하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돼왔다. 교감 승진을 앞둔 한 현직 교사는 “교장 승진을 하려면 교사가 교과 연구보다도 행정업무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모순 중에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획일적인 교장승진제의 대안으로 나온 것이 ‘교장공모제’다. 하지만 이 역시 2007년 9월부터 2010년 3월까지 6차례에 걸쳐 526개교에서 시범운영된 이후 12년째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논란이 분분하다.

현재 교장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승진점수를 쌓아 임용되는 기존의 ‘승진형’과 선발을 통해 교장이 되는 ‘공모형’으로 이원화돼 있다.

공모형은 세부적으로 초빙형과 내부형A, 내부형B, 개방형으로 나뉜다. 초빙형과 내부형A는 교장자격증이 있는 교원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발령이냐, 선발이냐’ 하는 방법론 외에 기존 승진제와 차이가 없다. 개방형은 자율학교(학사운영 또는 교육과정을 비교적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학교. 학습 부진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거나, 개별 학생에 따른 특성화 교육을 하는 학교 및 농어촌학교, 특성화고 등이 자율학교에 해당한다)에 한해 공모를 하기 때문에 교원자격증 소지 여부와 별개로 특성화 교육이 가능한 사람이 교장으로 임용된다는 점에서 기존 교장승진제와는 별개로 볼 여지도 있다.

류청산 경인교대 교수가 지난해 1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주관으로 열린 ‘2018 교육 대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3월 1일 기준 초빙형으로 교장에 임용된 교장 1160명 전원이 교장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형 역시 선발된 573명 가운데 517명(90.2%)이 교장자격증 소지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대학교수 출신 등 외부에서 공모로 선발되는 개방형에서도 전체 선발인원 59명 가운데 26명(44.1%)이 교장자격증 소지자였다. 결국 교장자격증이 없는 15년차 이상 평교사가 공모를 통해 교장이 되는 경우(내부형B)는 교장공모제를 통해 임용된 교장자격증 소지자 교장 수에 비해 극히 적은 인원인 셈이다. 그동안 교장이 된 교장자격증 미소지 교사는 전체 교장 임용자의 5% 정도에 불과하다. 기존 승진제도 질서를 무너뜨릴 수준의 수치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계는 평교사가 교장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내부형B’ 선발방식을 두고 끊임없이 대립하고 있다.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내놓은 교육공약 중 하나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으로 내부형 공모 교장 임용비율을 자율학교 중 신청학교의 15% 이내로 제한했다. 이 제한규정 때문에 한 지역에서 교장 공모를 신청한 자율학교가 7개교 미만일 경우 단 한 학교도 교장 공모를 할 수 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문 대통령은 이러한 제한규정을 폐지해 적어도 일반학교가 아닌 자율학교에 한해서만큼은 공모제를 통해 평교사가 교장이 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이 공약은 지난해 3월 신청 자율학교의 50%만 공모가 가능한 것으로 확정됐다. 한국교총 등 기존 교육단체들의 반발에 부딪혀 전면폐지에서 50% 제한으로 후퇴한 것이었다.

문 대통령 공약도 원안보다 후퇴

그렇다면 교장자격증이 없는 15년차 이상 교사가 교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교총을 비롯한 보수성향의 교원단체들은 15년 이상의 근무경력만으로는 교장직을 수행할 실력이나 자격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20년 이상의 근무경력(70점), 다면평가에 따른 근무성적(100점), 연수 참여성적(27점), 연구실적(3점), 도서벽지 및 농어촌 학교 근무경력(가산점 14점) 등 교감 및 교장이 되기 위한 승진점수를 따낸 것 자체가 교장이 되기 위한 자격과 실력을 입증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고작 15년차 교사가 행정을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나”라며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결국 특정 교원단체(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간부 출신들에게 교장 자리를 내어주기 위한 또 다른 편법 아니냐”고 말했다.

교장공모제 확대를 주장하는 교원단체들은 지난 60년간 ‘교무부장→교감→교장’이라는 획일적인 교장승진제의 폐해가 많았던 점을 부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지난해 지방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자신의 임기 내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학교장의 지침이 내려지자 학교폭력이 발생했음에도 담임교사가 감추려다 피해학생 부모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던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 사례 역시 승진을 위한 각종 상납의 폐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또 교장자격증이 없는 교사가 교장공모제에 따라 교장이 된 이후 학교 운영이 파행을 겪은 사례 역시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한 현직 초등학교 교장은 “사립학교의 경우 학교 이사장이 평교사를 교장 자리에 앉히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평교사가 교장이 돼서 학교 운영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기존 교원단체를 설득하고 내부형 공모제를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의 내부형 공모제의 순기능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알리면서도, 기존 승진제를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20여년간 승진점수를 쌓아온 교사들의 노력은 그대로 인정하면서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는 방향을 서로 합의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장기계획을 세워 기존의 기득권도 인정하면서 공모제 비율을 서서히 늘려가는 형태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면서 “또 교장자격증이 없는 교사들 역시 경기도가 운영하는 리더십 아카데미 형태를 차용한 실질적인 교장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등의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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