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6’ 두산, 이제 ‘왕조’라 불러도 손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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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 9번째 투수로 등판한 두산 배영수가 키움 제리 샌즈를 상대로 공을 던졌다. 샌즈가 받아친 공은 힘없이 투수 방면으로 떨어졌다. 배영수는 이 공을 잡아 1루 오재일에게 송구했다. 고척돔에는 환호성이 쏟아졌고 3루 더그아웃에서 두산 선수들이 쏟아져나왔다. 두산이 ‘V6’를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두산의 2019시즌이 148경기에서 끝났다. 이로써 두산은 최근 5년 동안 우승을 세 차례나 달성하는 위업을 이뤘다. 이 중 두 차례는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모두를 제패한 통합 우승. 이제는 ‘왕조’라는 수식어가 온전히 어울리는 팀이 됐다.

두산베어스 김태형 감독과 오재원이 10월 2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마이카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4차전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승리,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후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다. / 고척 | 이석우 기자

두산베어스 김태형 감독과 오재원이 10월 2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마이카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4차전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승리,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후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다. / 고척 | 이석우 기자

사실 두산이 올 시즌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우승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전력 누수가 된 채로 시즌을 시작했고, 시즌 초중반까지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시즌 후반 막판 뒤집기로 극적으로 정규시즌 1위를 달성한 뒤 한국시리즈에서도 한 경기도 내주지 않고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기적을 썼다.

양의지 없이 시작한 두산 이번 시즌을 앞두고 스토브리그를 가장 뜨겁게 만들었던 일은 양의지의 행선지였다. 양의지는 2018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머니 게임’에서 NC가 이겼다. 두산은 4년 총액 120억원이라는 거액을 제시했으나 양의지는 4년 125억원에 NC행을 택했다. 거액을 제시하고도 양의지를 빼앗긴 두산은 허탈함 속에 시즌을 맞이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양의지는 10승 선발투수 하나와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두산은 최근 몇 년 동안 굵직한 선수들을 잡지 못하고 놓치곤 했다. 2018시즌을 앞두고는 미국에서 돌아온 김현수가 LG와 계약하는 모습을 그대로 바라봐야만 했다. 같은 해에 두산에서 롯데로 팀을 옮긴 민병헌도 마찬가지였다. 계속된 전력 누수를 겪던 두산은 양의지의 이탈로 큰 위기를 맞게 됐다.

‘1위는 할 수 없겠다’ 우려도 개막 직후 뚜껑을 열어보니 ‘산 넘어 산’이었다. 새로 바뀐 공인구는 KBO리그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두산도 마찬가지였다. 팀의 장타자 김재환의 타격감이 급격히 떨어졌다. 김재환은 지난 4월까지 32경기에서 타율 0.303 7홈런 등으로 나름 선전했으나 이후에는 한 달에 2개꼴로 홈런을 겨우 쳐냈다. 겨우내 미국에서 덕 레타 타격코치에게 ‘과외’를 받고 온 오재원, 오재일 등은 오히려 타격감이 떨어졌다. 오재원은 4월까지 18경기에서 타율 0.161을 기록했다. 5월에도 1할대 타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7월에는 타율이 1할도 채 되지 못했다. 오재일도 4월까지 23경기 타율 0.190으로 헤매다가 6월부터 차츰 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뜻하지 않게 부상선수들이 줄줄이 나왔다. 2015~2016시즌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었던 장원준은 지난해에 이어 올 시즌에도 제대로 뛰지 못했고 시즌 말미에는 무릎 수술을 받았다. 외국인 투수 세스 후랭코프도 전반기에는 부상과 부진으로 13경기에서 4승6패 평균자책점 4.41로 예년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좌완 불펜 이현승도 4월 말 종아리 통증으로 1군에서 말소돼 오랜 재활기간을 거쳤다.

버팀목이 된 선수들 그럼에도 두산은 시즌 초부터 2위권 안에서 꾸준히 자리를 지켰다. 마운드의 중심을 조쉬 린드블럼이 잡았다. 2015년 롯데와 계약해 KBO리그에 발을 들인 린드블럼은 2018시즌 두산으로 옮기면서부터 마운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지난 시즌 15승(4패)으로 다승 부문 리그 2위를 기록했던 린드블럼은 올 시즌에는 20승 고지에 올랐다. 개인 13연승·잠실 18연승·홈 16연승 등을 기록했다.

여기에 영건 이영하가 선발진의 한 자리를 채웠다. 4월까지 5경기에서 4승 평균자책점 1.97을 기록하며 순항한 이영하는 시즌 17승(4패)째를 올리며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특히 9월 19일 SK전에서는 완투승을 이끌기도 했다.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인 10월 1일 NC전에서 마지막 투수로 마운드를 지킨 선수도 이영하였다.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는 144경기를 풀타임으로 뛰면서 타율 0.344 15홈런 88타점을 기록했다. 197개의 안타를 때려내며 이 부문 리그 1위를 기록했다.

9경기 차 뒤집은 기적 2위권에서 꾸준히 자리를 지키던 두산은 시즌 중·후반부에 점차 선두 자리에서 멀어져갔다. 8월 15일 당시 1위였던 SK와 경기 차이는 9경기였다. 게다가 9월 중순에는 3위인 키움에게 쫓겨 2위 자리까지 잠시 내줬다. 우승은커녕 포스트시즌을 일찍 준비해야 하는 걱정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시즌 막판 ‘기적’을 만들어냈다. 시작은 SK와의 더블헤더였다. 9월 19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2경기를 모두 잡으면서 2위 자리를 탈환했다. 게다가 SK와의 격차를 2.5경기로 줄였다. 그리고 9월 28일 잠실 한화전에서 연장 10회말 혈투 끝에 7-6으로 승리, 같은 날 삼성에 패한 SK와 공동 선두에 올랐다. 두산은 기세를 이어나갔다. SK와 상대전적에서 우위에 있던 두산은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인 10월 1일 NC전을 6-5로 승리한 뒤 정규시즌 1위를 확정지었다. 9경기 차이를 뒤집고 우승의 자리에까지 오른 최초의 사례였다. 두산의 9월 이후 승률은 12승1무7패 승률 0.632였다.

4경기 만에 끝낸 한국시리즈 두산의 한국시리즈 상대는 키움이었다. 키움은 정규시즌 3위를 차지한 뒤 준플레이오프에서 LG를 3승1패로 꺾고 플레이오프에서는 SK를 상대로 3연승으로 파죽지세를 이어갔다. 1·2차전까지 두 팀의 팽팽한 승부가 펼쳐졌다. 두산은 3차전에서는 상대 타선을 꽁꽁 묶으며 쉽게 승리를 가져왔다. 후랭코프가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고 3회 박세혁의 1타점 3루타, 박건우의 2점 홈런으로 승기를 잡아 경기 끝까지 이어갔다. 4차전은 더 극적이었다. 선발투수 유희관이 1이닝 6실점(4자책)으로 조기 강판됐고 이어 등판한 함덕주도 2점을 더 내줬다. 2회까지 3-8로 이미 승부가 기울어졌지만 두산은 5회에만 5점을 뽑아내며 9-8로 역전했다. 9회말 키움에 동점을 허용했으나 연장 10회 2점을 뽑아내며 다시 리드를 가져왔다. 승리를 차지한 두산은 경기 후 ‘셀카 세리머니’를 맘껏 즐겼다.

김태형 감독, 역대 최고 대우 받다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에도 경사가 이어졌다. 김태형 감독은 10월 29일 3년 28억원(계약금 7억원, 연봉 7억원)에 재계약했다. 2017시즌을 앞두고는 두산 사령탑 역대 최고인 3년 총 20억원(계약금 5억원, 연봉 5억원)에 재계약했던 김 감독은 두 번째 재계약을 할 때는 KBO리그 최고 대우를 받았다. 김 감독은 “최고 대우를 해주신 구단주께 감사드린다. ‘늘 팬들을 위한 야구를 해달라’는 구단주님의 야구 철학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매 경기 두산베어스다운 야구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김하진 기자 h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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