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의 전쟁…침체(Recession)일까 회복(Recovery)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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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분쟁 봉합 수순 등 호재 불구 제조업 부진으로 미국 경제성장세 꺾일 가능성 전망도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10월 15일 내년도 세계 경제 전망을 발표했다. 미·중 무역분쟁, 브렉시트, 중동정세 불안, 유럽 경기침체 등 유례없는 불확실성 속에 시작했던 2019년 글로벌 경제는 대폭적인 성장률 하향조정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해 10월 2019년도 성장률 3.7%로 전망했던 IMF는 성장률을 3.0%로 전망, 1년 만에 무려 0.7%포인트나 내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10년 7개월 만에 금리를 인하하고 단기국채를 매입해 유동성을 다시 푸는 등 통화정책도 2019년 이전으로 돌아갔다.

트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신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10월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트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신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10월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든 글로벌 경기가 올해 바닥을 찍은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바닥이 멀었는지를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내년도 세계 경제 긍정 시각 우세

전반적인 분위기는 올해보다는 내년이 나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고문’이 10년간 계속돼 왔다는 점에서 내년도 그리 좋게 보기 힘들다는 비관론도 만만찮다. 만약 글로벌 경기가 좋아진다면 한국 경제도 내년 반등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수렁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일단 긍정적인 신호가 더 많다. IMF는 내년이 올해보다 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IMF는 내년 글로벌 성장률을 3.4%로 예측해 올해(3.0%)보다는 높게 봤다. 지난 4월 예측(3.6%)보다는 0.2%포인트 떨어뜨린 것이지만 바닥을 친 올해보다는 상황이 나을 것이라는 얘기다. 재밌는 것은 미국이다. IMF는 미국의 내년 성장률을 2.1%로 지난 4월에 한 예상치(1.9%)보다 끌어올렸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2.4%)보다는 낮지만 지난 4월에 생각했던 것보다 미국의 경기둔화가 연착륙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커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3년 안에는 미국에 경기침체가 오지 않을 것”이라며 “소비자 지출이 탄탄하게 유지되는 환경을 트럼프 대통령이 만들고 있으며 이는 경기침체를 저지하는 주요 동력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친기업적 성향과 사치스러운 삶의 표본인 트럼프 대통령의 생활방식이 대중에게 소비를 지속하도록 영감을 줬다고 본다”며 “(침체가) 목전에 와 있다고 가정하는 실수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행동경제학자인 실러 교수는 경제주체들의 소비활동이 심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주장해왔다.

미·중 무역분쟁에 대한 백악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도 호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0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미·중 무역 1차합의 전 경제 참모와 전문가들로부터 ‘미·중 무역 긴장 고조가 재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고 입장을 바꿨다”고 보도했다.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이 재개되기 이틀 전인 10월 8일 백악관에서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의 주선으로 스티븐 무어, 로렌스 린지 등 외부 경제전문가들이 참석한 무역 관련 회의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경제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과의 화해가 경제성장의 장애물을 지금 당장 제거해 줄 것”이라며 “내년에는 멋진 반등을 보여줄 것이고, 대통령은 2020년 선거에서 재선이 가능한 매우 강력한 위치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국 강경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을 불러 설득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미국을 죽이고 있다>는 제목의 저서를 쓴 나바로 국장은 ‘초강경 대중국 매파’로 백악관의 대중국 경제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이틀 뒤 미·중 양국은 워싱턴에서 고위급 무역협상을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실질적인 1단계 합의를 이뤘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 400억~500억 달러어치를 구매하고, 미국은 10월 15일부터 부과할 예정이었던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를 유보하기로 했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이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미·중 무역분쟁이 마무리되는 것 아니냐는 긍정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커들로 위원장은 <폭스비즈니스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 “(1단계) 협상 상황이 꽤 좋아 보인다”며 “12월에 예정된 대중국 관세도 철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올 한 해 안갯속에 있던 브렉시트도 연말에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난다는 것도 내년 경제에는 긍정적이다. AFP통신은 “유럽연합(EU) 관계자에 따르면 27개 회원국 대사들이 만나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영국의 EU 탈퇴)를 피하기 위해 연기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며 “다만 연장기한은 여전히 논의중”이라고 10월 24일 보도했다. 앞서 도널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노딜 브렉시트를 피하기 위해 27개 회원국이 영국의 연기 요청을 받아들일 것을 권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10월 31일까지 브렉시트 법안을 신속처리하는 데 실패했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연말까지는 불확실성이 제거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 영향 피하기 어려운 국내 전망은

한층 밝아진 시그널은 최근 원·달러 환율 흐름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한때 달러당 1220원이 넘어섰던 원·달러 환율은 1170원대로 내려앉았다. 대외경제 불안, 성장률 하락 등으로 연말께 1250원대로 갈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예상 밖의 흐름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020년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나고 있고 5G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반도체 업황도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내년도 올해만큼 나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여전히 많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경기침체 수준이 데프콘3로 격상됐다”며 비관적인 시각을 거두지 않고 있다. 경기침체 가능성이 전시상태인 ‘데프콘1’은 아니더라도 전투 준비태세를 해야 하는 수준이 됐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도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에 무게를 싣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20년 미국 경제 전망과 5대 이슈’ 보고서를 통해 “미국 경제가 무역전쟁 후폭풍, 제조업 부진 등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세가 꺾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연구원은 올 초부터 지속된 불확실성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다는 데 주목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더라도 이미 미국 금리(연 1.75~2.00%)가 낮아 인하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그간 계속된 감세로 2020년 미국 재정수지 적자가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환율 개선에도 불구하고 내년 환율 상승을 전망하는 시각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 경기가 부진하면 다른 나라의 경기는 더 나빠져 안전자산인 달러가 더 강해진다. LG경제연구원은 내년 원·달러 환율을 1220원으로, 소시에테제네랄(SG)은 1250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전문가들은 2021년까지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을 70% 이상으로 보고 있다”며 “미국 경제는 내년 중 성장세가 1%대 중반까지 크게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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