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가로수길 세로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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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을 즐기는 ‘힙하고’ ‘쿨한’ 젊은이들

골목인 듯하면서 골목이 아닌 것도 같은 골목길, 강남의 골목들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대로와 압구정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가로수길이 있고, 그 좌우로 뻗힌 길이 세로수길이다. 강남 개발이 1970년대부터 이루어졌으니 그 길의 역사도 그만큼이다. 개발 이전엔 넓은 황무지거나 과수원이 있거나 배추도 못심는 모래땅이었다. 뽕밭이 변해 바다가 된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고사가 바로 이곳에 어울린다. 강남은 그야말로 이름 없는 땅이라 한강 남쪽이라는 통칭으로 불릴 뿐이었고, 또 다른 명칭인 영동 또한 영등포 동쪽이라는 뜻에 불과했다.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던 곳이 이제는 부의 상징과 유행의 대명사가 됐다.

서울 강남 가로수길 세로수길 일대에는 요즘 젊은이들의 옷과 밥과 꿈이 있다.

서울 강남 가로수길 세로수길 일대에는 요즘 젊은이들의 옷과 밥과 꿈이 있다.

1970년대 강남 개발로 생긴 골목길

가로수길이라는 이름 또한 속절없이 얻은 것이다. 1980년대 중반쯤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들이 유명해 길 이름이 됐다고 전해진다. 물론 가을이 되면 그 열매는 기피와 미움의 대상이 되고 만다. 본격적인 골목은 가로수길에서 갈라져 뻗은 세로수길에 있다. 강북 구시가지의 골목들이 자연발생적으로 구불구불한 데 비해 이곳은 시작부터 계획된 길이라 반듯하고 차가 다닐 수 있다. 골목이라기보다는 뒷길이라는 느낌이 더 짙다.

독특한 가게와 디자이너숍들이 세로수길의 매력이다.

독특한 가게와 디자이너숍들이 세로수길의 매력이다.

세로수길 일대는 가로수길의 확장인 듯싶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예쁜 길가에 시내에서 밀려난 화랑들이 모이고, 신진 디자이너들의 가게와 작업실이 모여들었던 것이 가로수길이 유명해진 계기였다. 길이 유명세를 치르면서 가겟세는 솟고 뒷길로 밀려나 평범한 주택가 골목이던 세로수길도 특색이 생겼다. 그러나 영광의 빛은 잠깐이고 사람이 몰리는 곳엔 돈도 따라 욕망의 노래를 부르는 법이다. 반주류적이고 실험적이던 작은 가게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지금 길목을 메운 대부분의 가게는 카페거나 식당이거나 옷집이거나 화장품 가게들이다. 가로수길과 큰길 주변은 온통 성형외과가 진을 치고 있고, 그 사이사이 대형 화장품 매장들이 자리잡고 있다. 지하철을 나서면 마주치는 간판들은 온통 ‘당신의 얼굴을 확 뜯어고쳐줍니다’를 외치고 있다. 세상은 어찌 그리 옷과 화장품들로만 가득 차 있는지 오늘 강남의 문화와 세속의 관심사를 눈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골목의 모든 것을 소비하는 젊은이들은 모두 선남선녀들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일대에서 볼 수 있는 외국인은 일본인 관광객이 고작이었다. 일본의 여행 안내지에 세로수길의 빙수가게가 소개되고 맛집 지도가 알려졌다. 지도를 들고 식당을 묻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다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들고, 중국인 단체 성형관광객도 쉽게 볼 수 있더니 요즘엔 동남아인을 비롯해서 동·서양의 젊은이들로 뒤섞였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얼굴에 붕대를 감거나 코에 부목을 댄 얼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소위 ‘강남언니 스타일’의 얼굴만 봐서는 그의 국적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떠는 언어도 중국과 태국, 베트남어뿐 아니라 독일어, 영어에 동구권 말들도 간혹 들린다. 그야말로 이 골목은 진작부터 국제화됐다. 서양인이나 동양인 모두 밤시간 삼겹살집에서 불판을 앞에 두고 소셜미디어(SNS)에 인증사진을 올리는 모습들은 일상이고, 익숙하게 고기를 굽고 소주를 마시는 광경은 자연스럽다. 몇몇 식당들은 한국보다 동남아에 더 잘 알려졌고, 세로수길을 찾아 인증하는 것이 유행이 됐단다.

가로수길 세로수길 일대는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하다.

가로수길 세로수길 일대는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하다.

가로수길 세로수길 일대는 확실히 젊은이들의 길이다. 식당 메뉴도 젊고 파는 물건과 문화 모두가 젊은 취향뿐이다. 젊은이를 대상으로 하기에 골목의 유행 또한 강하고 빠르고 짧다. 골목 곳곳에 문을 닫고 임대 표지를 붙인 가게들이 보인다. 부동산업자에게 묻자 “웬만큼 잘해선 살아남기 어렵다. 한동안 일식주점들이 인기를 끌다가, 요즘엔 마라탕이 유행하더니 그것도 끝물이다. 뭐가 유행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자기만의 주특기로 한 번 터지면 오래 간다”고 답한다. 유행에 편승하든가 아니면 유행을 이길 무엇인가가 있어야 이 골목에서 버틴다는 얘기다.

세로수길 근처에 있던 강남 클럽들이 사고를 겪으면서 움츠러든 사이 골목 안에 새로 생긴 감성주점에 심야의 젊은이들이 몰리고 있었다. 감성주점이란 술도 마시고 음악도 즐기고 가볍게 춤도 출 수 있는 신세대 술집이란다. 주점 밖까지 쿵쿵 울리는 ‘힙한’ 음악에 맞춰 길 옆 아이스크림 가게의 젊은이나 거리를 걷는 청년들도 몸을 흔든다. 자연스럽고 ‘쿨’하게, 이것이 이 동네 문화인가 보다.

미남미녀들 많이 찾아 길거리 캐스팅

클럽의 인기가 한풀 꺾였다지만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클럽으로 몰리는 젊은 발길은 여전하다. 클럽을 가기 위해 이 일대의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에서 화장을 고치는 숙녀들은 자연스럽고, 청년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참 곱고 발랄하다. 다만 지난밤의 광란과 숙취를 못이겨 새벽에도 거리에 널브러진 모습들은 안쓰럽다. 겨울이 와도 저러면 어쩌나 싶다.

단독주택가였던 세로수길 일대는 새로 건물이나 공동주택이 들어섰다.

단독주택가였던 세로수길 일대는 새로 건물이나 공동주택이 들어섰다.

골목골목에 유난히 미남미녀가 많은 것은 일대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주변부이기 때문이란 점도 상관이 있다. 간간이 연기학원도 눈에 띄고, 노래 지도 연습실과 매니지먼트 회사들도 보인다. 광고 대행 사무실도 보이고, 과거엔 영화사 사무실도 많았다. 세로수길 동쪽 깊숙한 골목에는 모모 연예인의 건물이나 연예회사도 자리잡고 있다. 간간이 길거리 캐스팅도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연기학원과 부실한 매니지먼트 회사의 유인책들도 많다고 한다. 이 거리에서 화려한 ‘말발’과 현란한 몸짓으로 ‘당신도 스타가 될 수 있다’고 속삭이는 사탕발림을 부디 조심하길….

이 거리에서 연예산업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골목에서 만나는 특수한 가게에서 확인할 수 있다. 24시간 문을 열고 있는 대형 영상장비 대여업체가 여럿 있다. 조명에서 녹음, 촬영장비 일체를 빌려주는 업체는 항시 문을 열고 항상 사람들이 드나든다. 장비를 정리하던 직원은 “영화사나 광고회사가 주고객이다. 렌털업체가 충무로와 남대문 일대에도 있지만 그곳들은 대부분 방송쪽 장비가 주고 여기는 영화쪽 장비가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억대에 이르는 장비들이 줄줄이 진열돼 있고, 업체의 요구에 따라 시간 단위, 일 단위로 장비를 빌려준단다. 영화가 돌아가는 한 이 골목의 장비업체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1970년대 개발 당시만 해도 세로수길 일대는 대부분 단독주택가였다. 반듯이 널찍한 터를 끼고 앉은 집들은 이 도시에서 그럭저럭 자리잡은 중산층의 상징이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중산층의 씨가 마르고, 단독주택은 편리함보다는 관리와 생활에 불편한 점이 더 많아졌다. 강남에 터를 잡았던 세대는 하나둘씩 멀리 떠나버렸다. 주택은 빌라나 빌딩이 돼 사무실과 업장으로 임대가 됐고, 이제 가로수길 일대에서 옛 모습의 단독주택을 찾기란 쉽지 않게 됐다.

이 마을이 주택가이던 때의 마지막 흔적은 강남시장에 남아있다. 주상복합건물의 1층 넓은 공간에 100여개 상점 좌판에서 배추며 생선을 팔던 재래시장은 이제 썰렁한 식당가로 바뀌었다. 그 옆에 중소형 마트 하나가 문을 열고 있어 인근 주민들의 시장 역할을 한다. 100명도 넘던 상인의 일터는 겨우 마트 하나가 감당하게 됐고, 더 이상 마을의 시장은 자취를 감췄다.

골목 곳곳에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들어서 있다.

골목 곳곳에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들어서 있다.

가방 공방·의류 편집숍들도 밀려나

상권이 좋아지면서 주택을 개조해 사무실로 임대하는 일이 유행이 됐다. 다만 요즘 들어 공실이 늘어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부동산업자의 말에 따르면 “경기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새로 짓는 건물들이 너무 많아졌다. 수요 이상으로 공급됐고 임대료가 너무 비싼 것도 공실이 늘어나는 이유”라는 것이다. 한적한 뒷길에 리모델링한 건물들도 대로변에 비해 그다지 싸지 않다고 했다. 계산 잘못하고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반년을 못넘기고 항복하는 곳도 많다고 한다. “유명세만큼 상권이 활성화됐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 부동산업자의 분석이다.

세로수길 서쪽 골목과 가로수길에서 밀려난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은 좀 더 한적한 곳을 찾아 스며들었는데, 그곳이 압구정동 방향의 동쪽 세로수길이다. 수제 액세서리를 만들거나 가방 공방, 의류 편집숍들로 옛 가로수길의 분위기가 흠씬 풍겼지만 이젠 이쪽 길에서도 밀려나 사라지는 추세다. 다만 골목골목마다 ‘학생 작품, 다이마루, 패턴’ 등의 간판을 건 소규모 봉제공방들 수십 곳이 자리를 잡고 있다. ‘다이마루’란 니트류 옷을 만드는 옷감의 통칭이다. 가로수길의 황금시대에 국내에 터를 잡기 시작한 유학파 젊은 디자이너들과 손발을 맞춰 옷감을 재단하고 패턴과 샘플을 만들던 작업공방들은 다세대주택이나 지하 작업실에 아직도 자리를 잡고 있다. 돋보기를 쓰고 미싱을 돌리던 60대 작업자는 “대개 30년 이상 베테랑들이다. 일감이 없을 때는 명품 수선도 하는데, 백화점 명품매장에서 일을 맡길 정도로 실력은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겨우 신문지 반 장 정도 될 만한 작은 간판에 자신의 이력을 걸어두고 일감을 기다리는 모습은 화려한 강남의 숨은 그림자이다.

줄줄이 고급차량이 서 있고 말쑥한 직원이 주차를 유도한다. 차가 빠져나갈 때 깍듯이 절을 하며 배웅하는 모습은 일급호텔보다 더 정중하다. 세로수길 뒤쪽 여성전용 찜질방은 한낮에도 차 댈 곳이 없었다. 그 안쪽에서 벌어지는 일이야 볼 수 없지만, 한 귀 건너 들어본 이야기는 옷을 벗고도 사치를 과시하려는 인간의 모습은 똑같다고 한다. 강남은 확실히 부유하고 도도하다.

강남이 개발된 지는 채 50년이 되지 않았다. 강북의 골목길들이 100년 혹은 더 이상 된 곳도 수두룩하다면 세월로서야 댈 바가 없다. 하지만 부귀와 번영과 화려함으로는 비할 바가 못된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곳이 아니라 철저히 계획되고 효율적으로 설계한 것이 강남의 골목길이다. 특히 세로수길과 가로수길 일대는 고도성장기 도시의 이상을 담아 만들어졌다. 그렇게 길이 생긴 후 한 세대가 지났고, 또 한 세대가 지나고 있다. 처음 정착했던 사람 중 아직까지 터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거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 골목에서 아이를 키우고 직장에서 돌아와 대문을 열던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돈과 더 즐거운 쾌락을 바라고, 더 예뻐져야 하고, 더 인기를 얻어야 하며, 더 유명해지기 위해 애써야 하는 거리다. 시간은 오로지 소비의 대상일 뿐이다. ‘힙하고’ ‘쿨한’ 젊은이들이 밤과 낮을 즐긴다. 우리 시대가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 그 생생한 모습을 보려면 세로수길 골목들을 걸으면 된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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