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손편지를 쓰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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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세월 따라 갔다. 푸른 잎새 사이로 물든 홍엽이 간간이 보인다. 하늘이 높다. 속살이 보일 듯하다. 넘실대는 건들바람은 작은 나뭇가지를 춤추게 한다. 가을이다. 머리맡에 밀쳐 놓았던 책을 펴는 독서의 계절이다.

서울 양강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편지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서울 양강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편지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최근 독서만큼이나 글쓰기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간혹 아는 이가 글쓰기 공부에 도움이 될 책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필자는 상허 이태준 선생의 <문장강화(文章講話)>를 추천하곤 했다. 이태준은 1930년대를 대표하는 문인이다. ‘시는 정지용, 산문은 이태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문장강화>는 바로 그 이태준이 쓴 ‘글쓰기의 기법’이다. <문장강화>는 글쓰기를 생활도구로 규정한다.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글쓰기 도구를 잘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글쓰기도 하나의 기술이라는 얘기다.

필자는 글쓰기 기술을 익히는 방법으로 손편지 쓰기를 권하고 싶다. 흔히 읽기 쉬운 글이 좋은 글이라고 얘기한다. 읽기 쉬운 글은 정리가 잘 되어서 이해하기 쉽다. 대화하듯 쓰는 글도 그런 글이다. 말하듯이 쓴 글은 읽기 쉽다. 종교적 가르침을 주는 경전은 대부분이 대화체다. 모세오경, 논어, 장자, 도덕경, 우파니샤드 등이 일문일답으로 꾸며져 있다. 그 까닭은 따져볼 필요도 없다. 학식이 깊지 않은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쓴 것이다. 편지는 기본적으로 대화를 전제로 쓴다. 쉬운 글쓰기 훈련에 편지만한 것이 없다.

편지는 경험으로 쓰는 글이다. 지식정보화시대에서 경험 정보와 가치가 지식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다. 경험은 정보화시대에 콘텐츠가 된다. 미국 하버드대의 교육목표는 설득력 있는 인재 키우기다. 그 목표 실현을 위해 글쓰기를 필수 교육과정에 포함시킨다. 1872년부터 글쓰기 교육을 실시했다. 하버드대 로빈 워드 박사가 1977년 이후 하버드를 졸업한 40대 1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당신이 하버드대에서 배운 수업 중 현재 일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게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90% 이상이 ‘글쓰기’라고 답했다. 사회에서도 그만큼 글쓰기 능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사실 하버드대만 글쓰기 교육을 시키는 게 아니다. 미 MIT나 스탠퍼드, 영국 옥스퍼드 등 세계 최고 명문 대학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는 지도교수가 일대 일로 학생이 쓴 에세이를 꼼꼼하게 코칭한다. MIT에도 글쓰기 전문 튜너가 있다.

최근 ‘설득산업’이라는 용어가 주목받고 있다. 언어를 통해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미쳐 기업 이익을 창출하는 산업을 통칭한다. 광고, 홍보, 마케팅, 변호, 보험, 펀드레이징, TV홈쇼핑, 콜센터, 로비, 비즈니스 컨설팅, 이미지 컨설팅, 카운슬링 등이 설득산업에 포함된다. 미국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28%를 차지한다. 1999년 데이비드 매클로스키 박사의 연구 결과다. 지금은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가 올해 임직원에게 보낸 편지도 이를 뒷받침하는 예다. 그는 편지에서 ‘임원 회의에서 파워포인트 사용 금지’를 명령했다. 대신 임원의 관점이 담긴 완결된 이야기를 담은 6장 이내의 메모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스토리텔링식 기획을 주문한 것이다. 기획의 핵심은 소통과 설득이다. 편지의 본질은 소통이다. 편지를 자주 쓰면 스스로 소통과 설득의 스킬이 향상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경험을 이야기한다는 측면에서 편지 그 자체가 스토리이다. 편지가 곧 삶이기 때문이다. 편지를 쓰면 삶이 보다 풍부해질 것이다. 고은 시인이 쓴 ‘가을편지’가 생각난다. ‘가을편지’는 그리움이 쓴 편지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김경은 기획위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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