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자-SNS시대, 진실이 드러나는 방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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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문기자

원제/영제 新聞記者/The Journalist

감독 후지이 미치히토

출연 심은경, 마츠자카 토리

일본개봉 2019년 6월 28일

국내개봉 2019년 10월 17일

상영시간 113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더쿱

㈜더쿱

모두 같은 생각은 아닌가 보다. 나는 그 남자의 입술을 ‘고멘네(ごめんね)’,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읽었다. 영화가 끝난 후 만난 평론가도 여기까지는 의견이 같았다. 그러나 그 남자가 왜 미안해 하는지에 대한 해석은 달랐다. 어쨌든 여운을 남기기 위한 연출의 선택이다. 일본 측 자료를 찾아보니, 감독은 스기하라 역을 맡은 마츠자카 토리에게 그 부분에 대해 프리스타일 연기를 맡긴 모양이다. “당신이 해석하는 대로 연기해!”쯤이다. 그리고 감독과 배우는 자신들의 뜻은 같았다고 생각한다고 제각기 말하는 중이고.

영화는 몇 달 전부터 한국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써니>(2011)의 그녀, 심은경이 이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기 때문이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신들린 욕설을 뽑아내던 그가 언제 일본까지 건너갔나. 무슨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 심은경의 캐스팅이 화제를 모은 까닭은 일본의 톱클래스급 여배우들이 이 캐스팅을 모두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고 돌아 바다 건너 한국의 심은경까지 배역 제안이 갔다는 이야기인데, 그냥 인터넷에 도는 풍문인 줄 알았더니 보도까지 됐다. 아마도 사실인 모양이다.

일본에는 만만치 않은 ‘사회파 영화’의 역사가 있다. <신문기자>는 오시마 나기사에서부터 최양일 감독까지 이어지는 이 ‘독립·자주영화’ 계보를 이어받은 영화다. 모처럼 훌륭한 작품이 나왔다.

심은경이 여주인공으로 발탁된 이유

사건은 신문사 팩스로 들어온 ‘제보’로부터 시작한다. 표지에는 양의 그림, 그리고 이어진 문서는 일본 정부 내각부가 추진하는 한 대학의 설립계획이다. 요시오카 에리카는 민완 사회부 기자다. 총리 퇴진 시위를 취재하는 한편, 양 그림 문서의 비밀을 추적한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이 있다. 내각정보조사실에서 일하는 스기하라다. 내각정보조사실은 한국의 국정원쯤 된다. 외무성 파견공무원인 그는 국가 또는 국민을 위해서 자기 일을 한다고 자부심을 가졌건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사명의식에 대한 회의에 사로잡혀 있다. 집권당 총리 반대 인사의 불륜관계를 파서 언론을 이용한 역공작 같은 일을 대의로 포장하기는 어렵다. 한국식으로 번안한다면 2012년 대선 때 인터넷 커뮤니티나 포털 뉴스 댓글공작에 동원된 국정원 요원들이 비슷한 심정이었을까.

영화는 두 남녀 주인공의 내면 갈등을 줄기차게 추적한다. 스기하라는 자신이 좋아하던 외무성 선배 간자키와 술자리를 갖는다. 대취한 선배는 그에게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선배의 투신자살. 각각의 의문점을 안고 사건을 추적하던 신문기자 요시오카와 스기하라는 마침내 조우한다. 집요한 추적 끝에 마침내 드러나는 진실.

일단 인상비평부터 하자면, 요시오카가 근무하는 <도토신문>(영화의 원작자인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가 근무하는 <도쿄신문>을 살짝 비튼 것으로 보인다) 기자들의 ‘파이팅’이 눈에 띈다. 수시로 회사 사무실에 소집된 기자들은 타사 신문을 보면서 특종을 축하하며 격려하고, 낙종은 안타까워하며 전의를 다진다. 영화 <1987>이 묘사하고 있는 30년 전쯤이면 모르되, 한국의 신문사 데스크에서는 사라진 풍경이다. 한국은 일단 모두들 너무 바쁘다. 굳이 비슷한 풍경을 묘사한다면 단톡방에서 오고가는 논의를 풀쇼트로 찍어야 할까. 그러고 보니 주인공 기자 요시오카가 트위터도 열심히 하지만, 회의하는 모습이나 취재·특종의 전달방식이 너무 아날로그다.

‘아날로그’는 의도된 것일까

<도토신문>의 1면 머리기사로 실린 요시오카의 특종이 전파되는 방식은 종이신문으로 대량으로 인쇄돼-여기서 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있는 종이신문들을 스패닝쇼트로 잡는다-배달원들의 스쿠터 앞 바구니에 실려 불이 꺼진 편의점 가판대에 진열되는 식으로 묘사되고 있다. 비슷한 묘사를 담고 있는 영화가 있다. 이 코너에서도 리뷰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더 포스트>(2018)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에서 ‘특종기사가 실린 신문이 제작되고 지면으로 인쇄되어 전국 각지로 배달되는 모습’이 남긴 진한 여운을 기억하고 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아날로그 신문 제작의 풍경. 벌써 4~5년 전 이야기이지만 한국영화 <열정같은 소리 하고 있네>(2015)나 <찌라시>(2014)와 같은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대특종’의 플랫폼도 이미 스마트폰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일본의 독립·자주영화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연출력이 뛰어난 점은 본받을 만하다. 프레임마다 구성에서 계획된 구도와 의미가 살아있는 영화다. 편견일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택시운전사>나

<변호인>처럼 메이저 제작사가 정치성 소재를 오락거리로 적극 택하는 추세인 데 비해 거꾸로 독립영화 진영은 가족이나 개인 정체성과 같은 주제로 움츠러드는 느낌이다. <신문기자>가 자극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본 기자의 분투와 한국의 경우

角川新書

角川新書


알려진 것처럼 영화에는 원작이 있다. 일본 <도쿄신문> 사회부 소속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가 쓴 같은 이름의 책이다.(사진) 한국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모치즈키 기자는 2017년 6월 8일, 스가 관방장관과 40분에 걸친 설전으로 유명하다. 아베 정권의 가케학원 스캔들과 일본 미투의 시발점인 이토 시오리 사건에 대한 질문이었다. 통상 한두 차례 질문하고 넘어가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녀는 ‘정치부 기자가 아닌 사회부 기자로서’ 총 23번에 걸쳐 끈질기게 질문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동영상을 보면 모치즈키 기자의 끈질긴 질문에 대해 스가 관방장관의 답변태도는 그리 신중해 보이진 않는다.

아마 이 영화가 정식 개봉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현실에 비춰 영화를 해석할 것이다. 상투적으로 등장할 말은 아마 이런 게 아닐까. 기자는 없고 ‘기레기’만 남은 한국 언론에 경종을~. 글쎄. 출입처에서 보다 많은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협력자, 사실 위조의 공모자까지 되었다면 규탄하는 것이 맞다.

일본 쪽의 서평을 보니 모치즈키 기자가 책을 통해 통렬히 비판하고 있는 것도 그 지점이다. 그런데 원경을 넘어 디테일한 내부에 주목하면 바다 건너 한국의 풍경은 상당히 달라진다. 개혁의 대상에 언론이 거론되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것을 언급할 수 있을 만큼 커뮤니케이션의 민주화가 무르익었다는 뜻이 된다. 이른바 ‘기레기’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것도 과거 어느 정권 때보다도 민주화된 언론환경 덕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훌륭한 영화가 언론혐오 확증편향 확산의 도구로 쓰이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 또한 통제할 수 없는 수용자의 몫이다.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큰 주제 중 하나는 정보 접근에 특권이 사라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은폐에 맞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실을 드러내는 기자의 분투기다. 트위터에 올라온 멘션은 하나의 의견을 넘어 여론일 수는 있지만, 꽁꽁 숨으려는 진실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영화는 환기하고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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