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식의 눈

‘울엄마 미남’들의 정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우리 엄마 말로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미남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정말 미남이라고 믿으면 곤란하다. 우리는 거울을 보며 엄마의 칭찬이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의심해야 한다.

[정주식의 눈]‘울엄마 미남’들의 정치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 10월 3일 광화문에 모인 ‘조국 반대’ 인파를 보며 이렇게 감상을 전했다.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간선도로, 골목길조차 꽉 메운 300만 국민 여러분!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친북좌파 정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얼마나 하늘을 찌르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고….” 겸허하게 자신을 향한 비판을 수용하겠다던 조국 장관은 지난 주말 ‘조국 수호’ 구호가 울려 퍼지던 서초동 집회 사진을 본인의 프로필 사진으로 내걸었다.

정치인에게 열성 지지층의 사랑은 ‘엄마의 아가페’와 같다. 달콤하고 따뜻하지만, 객관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광화문이 옳은가, 서초동이 옳은가 따져볼 수 있겠지만 그 구심이 되는 플레이어들이 각자의 광장을 ‘이게 민심이다’라고 말하는 광경은 꼴불견이다. 광화문 ‘민심’에 감동한 홍 대표는 사흘 뒤 서초동에 모인 인파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조폭들끼리 서초동에서 단합대회를 해본들 그것은 마지막 발악일 뿐이다.” 나한테 달달한 여론은 민심이며 나한테 불쾌한 여론은 조폭이다. 이런 현상은 진영을 막론하고 벌어진다. 여야 대변인들은 자기네 촛불이 진짜 민심이며 상대 촛불은 동원이라고 으스대느라 바쁘다.

정치권에 ‘울엄마 미남’들이 많아졌다. 지상파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정치인들은 “어제 집회에 내 지인들이 진짜 많이 나왔다더라”, “내 주위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전부 XXX 물러나라고 하더라”, “이게 진짜 민심이다”라는 식의 ‘카더라 논평’을 당당하게 내뱉는다. 아무런 통계적 가치도 없는, ‘느낌적 느낌’들이 민심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눈에서 하트가 쏟아지는 지지층의 목소리를 너무 쉽게 ‘민심’이라고 말하는 낯뜨거운 정치인들.

나와 가까운 곳에서 나는 소리는 크게 들리고 먼 곳의 소리는 작게 들리는 것이 이 세계의 물리법칙이다. 민심의 원근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필연적으로 옹졸한 정치에 갇히게 된다. 3년 전 겨울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태극기 민심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덜 비참한 말로를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광장의 분열은 자연스럽고, 파편화된 민심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는 광장을 대변할 책임과 광장의 온도를 낮출 책임을 동시에 갖는다. 정치가 파편으로만 존재한다면 광장의 갈등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지금 정치권에 필요한 것은 자신의 광장이 얼마나 뜨거운지 뽐내는 마케팅이 아니라, 지지층의 열기에서 한 발 물러날 줄 아는 성숙함이다.

어릴 적 엄마의 칭찬을 진실이라 믿었던 ‘울엄마 미남’들은 내가 진짜 미남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어른이 된다.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거친 소개팅의 세계로 나아가는 소년처럼, 정치가 자기 진영의 목소리를 객관화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정주식 직썰 편집장>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