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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전서에 ‘가짜 편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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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수록된 ‘상모숙서’ 내용은 이순신 장군 사후 30여년 뒤의 상황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실린 ‘上某叔書(상모숙서·어느 숙부에게 보낸 편지)’가 실제로는 이순신 장군의 편지가 아닌 위작이거나 잘못 들어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졌다. <이충무공전서>는 이순신 장군의 일기와 장계를 비롯한 모든 자료를 집대성했다. 여기에 실린 편지 역시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것으로 그동안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 편지에는 이순신 장군의 생전에 있지도 않았거니와, 전사 후 30여년 뒤에 벌어진 역사적 사실이 담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충무공전서> 1795년판. 미국 버클리대, 미국 국가기록원, Asami Collection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이충무공전서> 1795년판. 미국 버클리대, 미국 국가기록원, Asami Collection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이충무공전서>는 이순신 장군이 1598년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뒤 약 200년이 지난 1795년에 정조의 왕명으로 간행됐다. ‘상모숙서’는 <이충무공전서>에서 이순신 장군의 시와 편지를 담은 ‘권1’에 실려 있다. <이충무공전서>는 <난중일기>를 비롯해 이순신 장군의 자료에 관한 한 그동안 학계에서는 절대적인 자료집으로 인정받아 왔다. ‘상모숙서’ 역시 이순신 장군이 쓴 것으로 당연히 받아들여졌다.

임진왜란 당시와 동떨어진 내용 담겨

이 편지는 ‘상모숙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순신 장군이 어느 숙부에게 보낸 편지로 알려져 왔다. 모두 102자의 한자로 된 편지문이다. 편지의 시작은 몸이 좋지 않은 숙부의 안부를 묻고 있다. 조카(姪)는 나랏일에 바쁘다고 해, 이 조카가 바로 이순신 장군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어머님의 병환이 차도가 없음을 걱정하고 숙부에게 약재를 부탁하는 것 또한 이순신 장군에 관한 내용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뒷부분의 ‘서울에서는 호차(胡差·오랑캐 사절)가 성(城)으로 들어왔고, 호장(胡將·오랑캐 장수) 능거리(能巨里)는 1만 군사를 거느리고 사냥하는 일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의주 건너편 구련성(九連城)에 있습니다’ ‘도적의 모략을 예측하기 어려워 아주 걱정이 됩니다’라는 대목은 임진왜란 당시와 동떨어진 상황이다.

이순신 연구가였던 노산 이은상 선생은 이 편지와 관련해 “충무공전서에 실려 있는 충무공의 편지 한 장을 읽어보고 싶다. 그것은 충무공이 구태여 함경도만이 아니라 실지로 가본 일은 없는 곳이지마는 나라를 위해서는 평안도 방면의 오랑캐들도 걱정했던 것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태양이 비치는 길로(상)> 232쪽·삼중당·1973년)라고 밝혔다. 평안도 사정을 언급한 이 편지를 단지 <이충무공전서>에 실려 있다는 이유로 이순신 장군이 쓴 편지로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상모숙서’에는 임진왜란 당시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 등장하고 있다. 서울에 오랑캐(청나라)의 사절이 와 있고, 의주 건너편 구련성에는 능거리라는 오랑캐(청나라) 장수가 1만 군사를 거느리고 와 있다는 내용이다. <난중일기>를 국역한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는 “이 편지 내용은 이순신 장군이 살아있을 때의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다”면서 “이순신 장군에 관한 한 아무리 절대적인 자료집이라고 할지라도 <이충무공전서>에 실린 이 편지만은 이순신 장군의 이름을 빌린 위작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편지에 담긴 역사적 사실은 임진왜란 또는 정유재란 때가 아니라, 대략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호란의 사이에 일어났던 기록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결정적인 단서는 능거리라는 후금(1635년부터 청이라는 국호를 사용) 장수의 이름이다. 능거리는 <승정원일기> 인조 7년(1629년) 9월 24일의 기록에 ‘능거리(陵巨里)’로 등장한다. <승정원일기> 인조 9년(1631년) 6월 12일에서는 <이충무공전서>에서의 표기처럼 ‘능거리(能巨里)’로 나온다. 조경남의 <속잡록(續雜錄)> 인조 11년(1633년) 5월 6일 기록에서는 또 다른 한자인 ‘능거리(能去里)’로 등장한다. 박종평 연구가는 “표기만 다를 뿐 같은 인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 능거리는 1598년 이순신이 전사한 30년 뒤에 등장하는 후금의 장수라는 얘기다.

<이충무공전서> 표지(사진 왼쪽). / 미국 국가기록원 <이충무공전서>의 목차에 ‘上某叔書’가 들어가 있다. / 미국 국가기록원

<이충무공전서> 표지(사진 왼쪽). / 미국 국가기록원 <이충무공전서>의 목차에 ‘上某叔書’가 들어가 있다. / 미국 국가기록원

정묘호란~병자호란 사이 기록과 일치

박 연구가는 “능거리는 <승정원일기> 1629년과 1631년 기록으로 보면 <이충무공전서> 속 편지의 내용처럼 의주 건너편에 주둔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1만명이라는 숫자도 당시 역사적 사실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승정원일기> 인조 9년(1631년) 6월 8일 기록에서 ‘평안병사의 서목에 따르면 의주 군관(義州 軍官) 박사명(朴士明)이 와서 이달 4일에 호기(胡騎)

1만여명이 여울진 곳으로 강을 건너와서 먼저 복병(伏兵)을 출동시킨 다음 중남(仲男), 아지호(阿之好) 등이 한(汗·후금의 왕)의 서신을 가지고 나왔습니다라고 말했다’라고 적혀 있다.

이 해 6월 12일자 <승정원일기>에는 위에 언급된 중남과 아지호가 후금의 사절로 서울에 들어온 사실도 나온다. ‘상모숙서’의 편지 내용에서처럼 1631년에 서울로 후금의 사절이 들어오고, 후금의 능거리 군사 1만명이 의주에 온 내용이 그대로 일치하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 시기의 <대동야승> 기록에서도 똑같이 나타나 있다.

이 해 6월 10일자 <승정원일기>에는 ‘중남’이라는 사절이 들고 온 후금 왕(후에 청나라 태종이 됨)의 서신 내용이 나온다. 내용을 보면 왜 1만명의 후금 군대가 의주 근처로 몰려온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있다. 평안도 철산 밑 가도라는 섬에 명나라 군대가 와 있으니 이를 치기 위해 후금의 군대를 보냈고, 조선에 배를 빌려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편지에 등장하는 ‘호차’라는 단어 역시 이순신 장군 시대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은 표현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광해군일기(중초본)> 광해 3년(1611년) 3월 9일의 기사에 처음 등장했다.

이순신 장군의 유물은 유독 위작 논란에 많이 휩싸였다. 대표적인 예로 ‘함경도일기’가 있다. 한 장짜리 문서였지만 당초 이순신 장군이 함경도에서 쓴 것으로 알려졌다. 나중에 이 자료는 학봉 김성일의 일기와 거의 같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가짜로 판명됐다.

박종평 연구가는 “이순신 장군의 편지로 알려진 상모숙서는 정조 때 편찬과정에서 이순신 장군의 기록으로 오해해 잘못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 연구가는 “위인을 존경하는 것과 위인에 관한 자료의 진위(眞僞)를 확인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면서 “이순신 연구에 있어서도 정확한 사료 확인과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모숙서’의 원문과 국역

<上某叔書>
頃聞氣候違和 仰慮罔已 今則已見勿藥之喜耶 姪伏荷下賜 無事供劇 母親所患 或作或撤 久不得見差 伏悶伏悶 前稟藥材 隨所有下惠伏望 洛中胡差入城 胡將能巨里 領一萬兵 以田獵事號稱來 在義州越邊九連城 賊謀難測 極可慮也 適聞有便 憑候起居

<어느 숙부에게 보낸 편지>
지난번에 몸이 아프시다는 소식을 듣고는 걱정하는 마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은 이미 건강한 기쁨을 누리시고 있겠지요? 조카(편지의 저자)는 내려주신 물건 덕분에 아무 일 없이 나랏일에만 바쁠 뿐입니다. 어머님의 병환은 더하기도 덜하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차도가 없어 걱정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약재(藥材)를 있는대로 보내주시길 엎드려 바라옵니다.
서울에서는 호차(胡差·오랑캐 사절)가 성(城)으로 들어왔고, 호장(胡將·오랑캐 장수) 능거리(能巨里)는 1만 군사를 거느리고 사냥하는 일 때문이라고 일컬으면서 와서 의주(義州) 건너편 구련성(九連城)에 있습니다. 도적의 모략을 예측하기 어려워 아주 걱정이 됩니다. 때마침 오가는 사람(人便)이 있다고 들었기에 글을 올려 안부를 여쭙니다.(박종평 연구가의 국역)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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