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호랑이 떼죽음 ‘도대체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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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동물원에 가도 한두 마리 볼까말까 한 호랑이가 떼죽음을 당했다고?”

최근 태국에서는 정부가 보호하던 호랑이 147마리 가운데 절반이 넘는 86마리가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졌다.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놓여 있는 호랑이가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무더기로 죽어나간 사실이 당국 발표로 알려지면서 태국은 물론 세계가 떠들썩했다. 이들 호랑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야생동식물국 소속 직원들이 9월 20일 3년 전 ‘호랑이 사원’에서 구조된 이후 면역 결핍으로 사망한 호랑이 사체를 정리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야생동식물국 소속 직원들이 9월 20일 3년 전 ‘호랑이 사원’에서 구조된 이후 면역 결핍으로 사망한 호랑이 사체를 정리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두 얼굴의 ‘호랑이 사원’

<방콕포스트> 등 현지 언론은 2016년 방콕 서부 깐차나부리의 ‘호랑이 사원’에서 구조해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옮겨 살게 했던 호랑이 147마리 가운데 58%에 해당하는 86마리가 이주 이후 최근까지 숨졌다고 지난 9월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태국 국립공원 야생동식물국(DNP) 소속 빠타라뽄 마니온 수의사는 기자회견에서 호랑이 집단사망에 대해 “유전적인 문제가 주된 이유”라며 “근친교배로 태어난 호랑이들의 면역 결핍이 발견돼 치료를 진행했지만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DNP 관계자들은 시베리아 호랑이가 대부분인 이들 ‘정부 보호’ 호랑이를 치료하는 데 애를 썼지만 하나둘 차례로 급사했다고 설명했다. 개홍역바이러스 등에 감염된 이후 호흡곤란이 온 것이 주된 사망 이유였다. 한마디로 다른 포유류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근친교배로 태어난 유전적 특질상 개체군 유지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 기관이 왜 직접 나서서 150마리 가까이 되는 호랑이들을 보호구역에 ‘모시고’ 있었던 걸까. 여기에는 호랑이들이 구조되기 직전까지 살았던 ‘호랑이 사원’의 비밀에 답이 숨어 있다. 낙원인 줄로만 알았던 태국의 관광명소 ‘호랑이 사원’이 실상 호랑이에게는 생지옥나 다름없는 곳이었던 것이다.

1994년 건립된 이 사원은 숲에서 살다 목숨이 오락가락한 채로 발견된 호랑이 등 야생동물을 보살펴 키우기 시작했다. 다치거나 병든 호랑이와 개호주(새끼호랑이)를 보살피는 승려의 모습이 이색적인 풍경으로 각광받았고, 순식간에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세계 여행 전문서 <론리 플래닛> 등에서 태국에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는 등 필수 코스가 되기도 했다. ‘우유와 사료를 먹고 자라 충분히 길들여진 호랑이는 인간을 공격하지 않습니다’라는 그럴 듯한 배경설명도 곁들여졌다.

호랑이 사원을 찾는 이들은 갈수록 늘어났고, 그에 맞춰 호랑이 수도 함께 불어났다. 덩달아 전문적인 사육시설과 인력도 추가로 투입됐다. 돌고 돌아 호랑이 사원을 찾는 방문객은 더욱 증가했다. 관광객들은 호랑이에게 젖병을 물려보기도 하고, 잠자는 호랑이 등을 쓰다듬고 또 그 등에 누워도 보는 ‘이색 체험’을 하며 셀프카메라를 연신 찍어댔다.

물론 사원은 돈을 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종교시설이 아니라 사실상 동물원, 그것도 값비싼 동물원인 셈이다. 성체 호랑이 쓰다듬기에 5000바트(약 20만원), 사진촬영에 7000바트(약 27만원) 등을 받아 챙기며 사원은 연간 관광수입이 1억 바트(약 39억원)에 이를 정도로 이득을 취했다.

국제동물보호단체들은 호랑이 개체 수 급증 등에 의혹을 제기하며 사원을 주요 감시대상으로 지목했다. 호주 환경보호단체 시포라이프가 2016년 2월 확인한 호랑이 출생기록 자료 등에 따르면 개원 초기 4마리에 불과했던 사원의 호랑이는 번식을 통해 281마리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당시 사원에는 147마리만이 남겨져 있었고 나머지 134마리는 행방불명 상태였다. 밀거래나 도살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뒤따랐다. 두 해 전인 2014년 사원 인근에서 트럭이 암컷 세 마리를 몰래 반출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전과’도 있던 터였다. 호랑이는 국제기구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EN(위기·Endangered) 등급으로 지정한 멸종위기종이다. 호랑이 성체는 물론 특정부위나 뼈, 가죽도 철저히 매매가 금지돼 있는 동물이다.

동물보호단체의 의혹 제기는 이내 사실로 드러났다. 2016년 5월 말 이 사원에서 꽁꽁 얼어붙은 새끼호랑이 사체 40구가 발견된 것이다.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본부 등이 나서 태국 정부에 줄기찬 압력을 가한 끝에 태국 경찰 등이 압수수색에 나섰고 동물 학대와 불법거래·번식 등의 증거를 찾아냈다. 살아있던 호랑이 147마리는 모두 보호구역으로 옮겨졌고, 이 사원은 수사를 통해 불법거래·번식 혐의 등으로 폐쇄조치됐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동물 ‘사람’

하루 아침에 호랑이의 낙원이 지옥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경찰이 나서기 전부터 이미 승려들이 호랑이에게 채찍질이나 몽둥이질을 한다는 목격담도 있었고, 약물을 투여한다거나 위생관리가 엉망이어서 병든 호랑이가 부지기수였다는 제보도 꾸준히 이어졌다고 한다.

사원과 승려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덮어 씌우기도 찜찜한 측면이 있다. 야생에 사는 맹수인 호랑이를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처럼 만들려면 잔인한 방법이 동원되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호랑이를 애완동물처럼 다루는 자신의 모습을 사진 찍고 싶어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길고 튼튼한 송곳니와 날카로운 발톱은 뽑혀나가야 했다. 사람의 욕망이 호랑이에게는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돌아온 것이다.

냉동 상태로 잘 보관된 개호주 사체도 만약 압수수색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용됐을지 추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죽인 호피를 비롯한 뼈, 관절, 생식기에 이르기까지 호랑이 몸의 온갖 부위는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애호가들이 넘쳐난다. 호랑이는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데 호랑이 뼈를 담가 만든 술인 호골주가 여전히 팔려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 밀매도 그만큼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인간의 욕구를 채워주려면 호랑이 개체수를 인위적으로 늘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원에서는 근친교배, 즉 자연 본성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불법 번식을 강제로 시행했고, 그 결과가 호랑이의 무더기 죽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사원만의 지극히 예외적인 사례로 보기도 어렵다. <뉴욕타임스> 기자가 호랑이 300마리 이상을 보유한 태국 스리라차 호랑이 동물원 등을 둘러보고 지난 9월 25일자 지면에 내보낸 기사에 따르면, 태국 전역에는 현재 20곳이 넘는 동물원에서 관람객이 호랑이 새끼에게 먹이를 주거나 함께 사진촬영이 가능하도록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 있다. 태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스리라차 동물원에서는 우리 안에 갇힌 호랑이의 머리 위 표적을 향해 고무총을 쏠 수 있도록 하는 ‘간접 사냥’ 체험도 제공하고 있었다. 호랑이가 불타는 후프를 통과하는 서커스 쇼도 여전히 성행 중이다.

사원에서 호랑이를 구조해 온 태국 정부도 책임론에 휩싸였다. 로이터통신은 호랑이 사원의 승려 아티탓 스리마니가 “호랑이 사망사태는 근친교배 탓이 아니라 좁은 우리에서 호랑이를 보호했기 때문”이라며 당국을 직격했다고 보도했다. 승려의 주장은 ‘적반하장’ 격이긴 하다.

그러나 태국 정부는 밀렵 등으로 유지되는 호랑이 암시장을 ‘미필적 고의’로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는 호랑이가 관광산업이나 호랑이에서 유래한 각종 약품 판매 등에 기여를 하다보니 정부가 강력한 보호대책을 세우거나 집행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야생에서 다 큰 호랑이에게는 천적이 없다고 한다. 밀림 최고의 포식자이자 과거에는 경외의 대상이던 호랑이에게 가장 무서운 동물은 사람이다.

<정환보 국제부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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