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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로 처벌해야 유령수술 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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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수술 의료진을 살인죄로 고소한 피해자 변호사

유령수술 도중 환자가 사망했다면 의사를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질문을 완화해 유령수술 도중 환자가 영구적인 상처나 장애를 입었다면 의사를 상해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기준을 제시할 판례가 단 한 건이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나라에는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진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령수술 또는 동시수술(집도의와 유령의사가 번갈아가며 여러 환자를 수술하는 행위) 도중 환자가 사망했더라도 검찰은 ‘업무상 과실치사’ 및 ‘사기죄’로 기소해왔고, 법원도 검찰이 기소한 죄명에 따라 판결을 해왔기 때문이다. 수술 도중 환자가 사망했더라도 수술과정에서 중대한 과실이 발견되지 않는 한 가벼운 과실은 형사처벌 대상도 되지 않는다. 민사소송을 통한 손해배상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말이다.

양진석 변호사(법무법인 다한)가 9월 4일 사무실에서 유령 대리수술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양진석 변호사(법무법인 다한)가 9월 4일 사무실에서 유령 대리수술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지난해 4월 경기 파주의 한 척추수술 전문병원에서 73세의 남성 이모씨가 척추체간골유합술 및 나사고정술을 받던 도중 심장이 멈췄다. 의료진은 심폐소생술(CPR)을 진행한 뒤 이씨를 인근 큰 병원으로 옮겼으나 그는 결국 숨졌다. 언뜻 고령의 노인이 수술 도중 사망한 일반적인 사건으로 보이지만 여기에는 환자와 가족만 몰랐던 비밀이 있었다. 이씨의 수술을 한 사람은 이 병원 의사가 아닌, 수술기구 판매상 속칭 ‘기구상’이었다. 명백한 불법 의료행위이자 정형외과에서 전형적으로 벌어지는 ‘유령수술’이었다. 집도의는 기구상이 주도한 수술실을 한두 번 들러본 것이 전부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씨의 수술을 집도한 것은 기구상이었다. 유가족은 의료기록분석업체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병원 원장은 기구상이 수술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이씨와 수술상담을 했던 의사가 실제 수술한 것처럼 수술기록지도 조작했다.

‘업무상 과실치사’ 및 ‘사기죄’가 관례

이씨의 유가족은 지난 1월 병원장을 비롯해 수술을 집도한 기구상, 유령수술을 보조한 간호사 등 8명을 고소했다. 또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고소장에 적시한 이들 8명의 죄명은 무엇일까. 살인 및 업무상과실치사, 의료법위반(무면허 및 진료기록위조)이다. 주목할 것은 살인죄가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지금껏 유령수술 도중 환자를 숨지게 한 의료진 가운데 단 한 명도 살인죄로 기소된 사람은 없다. 기껏해야 사기죄다. 법은 의사가 든 칼을 살인의 도구로 보지 않는다. 강도가 든 칼은 살인의 고의가 인정되지만 의사가 메스를 들고 환자의 신체를 절개하고 절단하는 것은 환자의 건강 증진을 위한 일시적 위해(危害) 즉, 살인의 고의가 없는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는 의사를 상대로 ‘살인’의 죄책을 물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찌보면 무지하거나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게 아닐까. 유령수술로 설령 사람이 죽어도 ‘의료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라는 정답이 이미 나와 있는데 다른 길을 가고 있으니 말이다.

“가능성 높지 않지만 해볼 만한 싸움”

양진석 변호사(36·연수원 42기)는 그러나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한 번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여타의 유령수술과 달리 이 사건은 ‘유령의사’가 아닌 ‘유령 기구상’ 즉 비의료진에 의한 수술이었고, 아무리 능숙한 의료기술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의사가 아닌 기구상이 환자의 몸에 칼을 대는 등의 행위는 이미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미필적 고의를 갖고 행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4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유가족을 설득해 쉬운 길을 찾아갈 수도 있었다.

“손해배상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업무상과실치사든 살인이든 받아낼 수 있는 액수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업무상과실치사로 가면 ‘과실’을 이유로 책임이 감경될 수는 있겠지만 이미 망인은 사망 당시 73세의 고령으로 일실수익 등 피해자에게 인정될 수 있는 금액은 많아야 최대 2억원 수준이다. 변호사가 형사사건에서 검찰에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해 반드시 살인으로 기소해달라고 하는 것 역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검사의 기소독점주의에 따라 기소시 적용할 죄명도 검사가 판단한다). 그러나 유령수술, 특히 의사가 아닌 자에 의한 유령수술을 살인으로 처벌할 수 없다면 이 같은 범죄를 근절하는 게 가능할까. 의료행위 과정에서의 업무상과실치상 또는 과실치사는 법정형이 너무 낮다.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으로 가게 되면 형량은 더 낮아진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나. 유사한 일이 터지면 유가족과 합의하고, 또 같은 짓을 반복하게 되지 않겠나.”

-사건은 변호사 개인이 맡더라도 로펌 차원의 회의는 있었을 텐데 반대의견도 있지 않았나.

“내부적인 회의 내용을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사실 기존 방식대로 업무상과실치사로 가자는 의견도 많았고, 반면 고의범으로 밀어붙여보는 것도 해볼 만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만약 형사단계에서 검찰이 우리가 고소한 죄명대로 기소하지 않더라도 민사소송을 통해 ‘과실이냐, 고의냐’ 여부에 대한 판단을 받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민사소송에서는 우리가 일방 당사자이기 때문에 충분히 의견개진을 할 수 있지 않겠나. 형사로는 어렵더라도 민사 판결문에 ‘비자격자에 의한 유령수술은 살인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적힐 수만 있다면 한 단계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살인의 죄책을 물을 근거가 있나.

“의료행위는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행위로 정하고 있다. 기구상은 해당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의사보다 전문가이겠지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살인의 고의라는 것은 예견 가능성만 있으면 미필적 고의로 인정된다. 확정적일 필요까지는 없다. 의사가 없는 수술실에서 기구상이 환자의 동의 없이 사람의 몸에 침습적 행위를 할 경우 환자가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미필적 살인을 예견할 수는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기자님이 환자의 동의 없이 몸에 칼을 대고 수술을 했다고 치자. 당연히 이 사람을 죽여야겠다는 확정적 살인 의도는 없더라도 내가 칼을 대서 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예견은 가능하다는 말이다.”

-고소를 지난 1월에 했다고 했는데 지금 9월이다. 기소중지까지 돼 있는 것으로 안다.

“기소중지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감정결과 회신 문제 때문이다. 처음 경찰에 고소했을 때만 해도 수사 진척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유가족이 자비로 의료기록분석업체를 고용해 스스로 증거를 수집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검찰 출신 변호사가 포함된 병원 대책회의 내용을 입수할 수 있었다. 거기에 의사 스스로 유령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자백하는 대화가 등장하면서 수사 속도도 빨라지게 됐다. 현재 감정결과 회신은 이 사건에 2개의 병원이 걸려 있다. 책임유무를 묻기 위한 절차다. 고인을 수술한 가해 병원 측은 자신들이 환자를 대형병원으로 이송하기 전까지 사망하지 않았고, 대형병원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들의 책임을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한정지으려는 게 아닌가 싶다. 사망의 책임을 전원한 병원에 물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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