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기침체, 트럼프의 한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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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분쟁 여파 리세션 가시화…국채 마이너스 금리 시간문제

“정부 보조금으로 버팁니다만 계속 이대로 가기는 어려울 겁니다. 보조금만으로는 손실분을 다 메우지 못해요.”

미국 미주리주 지역은행인 센트럴뱅크의 지역공헌담당자 루친스키는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해 지역경제가 받는 타격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아직은 체감하기 어렵다”면서도 이같이 대답했다.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미주리는 콩, 옥수수 등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팜벨트다. 글로벌 농작물기업인 몬산토도 여기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앞줄 가운데)이 지난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뒷모습)과 악수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앞줄 가운데)이 지난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뒷모습)과 악수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AP연합뉴스

일본, 미국산 옥수수 수입키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도 미국산 콩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9월 1일 미국이 중국산 제품 1120억 달러어치에 대해 15%의 추가관세를 부과하자 중국도 콩, 돼지고기, 소고기 등에 5~10%의 관세를 추가했다. 팜벨트는 러스트벨트와 함께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던 대표적인 지역이다. 미주리도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다. 하지만 미·중 무역분쟁의 여파로 중국 수출길이 끊기면서 피해가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대중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로 소비재 가격이 인상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벌써부터 소비심리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때마침 주요 경제지표들이 ‘리세션(경기침체)’의 전조를 보이면서 대중 관세 부과는 부메랑이 되어 미국 경제를 겨누고 있다.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아르헨티나·브라질 등 신흥국의 경제위기도 새로운 악재다. 지난달까지 121개월째 역대 최장 경기확장을 이어간 미국 경제가 하반기에는 꺾일 것이라는 우려가 경제계 전반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 노동절이 끝난 9월 3일(현지시간)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미국의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1로 전달(51.2)보다 하락했다. PMI가 50선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16년 8월 이후 3년 만에 처음이다. PMI는 기업의 구매 책임자들을 설문해 경기 동향을 가늠하는 지표다. 50을 넘으면 경기 확장을, 50보다 낮으면 경기 위축을 의미한다. 같은 날 조사업체 IHS마킷이 발표한 미국의 8월 제조업 PMI도 50.3으로 전달(50.4)보다 하락하며 2009년 9월 이후 1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날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한때 1.4290%까지 떨어지며 2016년 7월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미국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나스닥 등 미국 3대 증시도 이날 일제히 하락했다. 앞서 발표된 한국과 독일, 일본 등의 제조업지수도 떨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글로벌 제조업 경기 위축이 미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주요 경제지들도 리세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경제 채널인 CNBC는 “리세션을 예측할 수 있는 주요 지표들에 빨간불이 켜졌다’며 “해외의 저성장과 미·중 무역갈등이 경제 리세션 신호를 불러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리세션 신호로는 역전된 미국의 장단기 국채 수익률, 둔화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악화된 S&P500지수 상장기업들의 수익률, 급락하는 구리 가격과 급등하는 금 가격 등을 제시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국채가 마이너스 금리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경기침체 가능성에 힘을 보탰다. 벨기에, 독일, 프랑스,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이미 마이너스 금리로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연준의 추가적인 금리인하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폭도 크다. 당장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5%포인트 인하설이 나온다.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미국 경제에 침체위험이 높아졌다”면서 “위험이 현실화할 경우 공격적으로 통화 완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우울한 전망에 트럼프 행정부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이 9월 1일 부과한 추가관세 대상 가운데 스마트폰, 노트북, 비디오콘솔게임, PC모니터 등을 제외한 것은 소비경기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지금 대중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할 경우 블랙프라이데이부터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연말 쇼핑시즌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 소비자기술협회(CTA)에 따르면 12월 15일 이후 적용되는 추가관세로 인해 영향을 받는 전자제품은 1150억 달러(약 139조60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추가관세의 영향을 받게 되는 전자제품(520억 달러·약 63조1000억원)의 두 배다.

내년 미국 대선 악재 불가피

팜벨트의 불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에 ‘구조신호’를 보냈다.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미·일 정상회담 직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농산물 구매 약속을 지키지 않아 미국 여러 지역에서 옥수수가 남아돌고 있다”면서 “아베 총리가 이를 모두 사주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일본이 수입키로 한 사료용 옥수수는 270만톤, 약 70억 달러(8조원)어치로 일본의 연간 수입량의 4분의 1에 달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미국 경제의 충격을 모두 흡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어떤 식으로든 관세전쟁이 진정되어야만 미국 경제도 숨을 돌릴 수 있다는 얘기다.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브렉시트도 미국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예정대로 10월 31일 브렉시트를 단행하겠다는 입장이고 영국 의회는 안 된다며 막아서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새로운 리더로 떠오르는 에마누렝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재협상은 해봤자 달라질 것이 거의 없을 것”이라며 브렉시트를 밀어붙이고 있다.

부채의 덫에 빠진 신흥국들의 움직임도 악재다. 아르헨티나는 9월 2일 자본통제, 즉 자국에서 달러가 새나가는 것을 막는 조치를 취했다. 아르헨티나는 이미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포함해 1000억 달러 규모의 채무 만기 연장을 국제사회에 요청했다. 이런 상황은 멕시코, 브라질, 동유럽, 터키도 비슷하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빌려 썼던 10년짜리 달러빚의 만기가 차례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신흥국들은 올해부터 2025년까지 매년 4000억 달러(약 480조원)를 상환해야 한다.

변수는 1년 2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이다. 하반기부터 경기침체가 진행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은 어려워진다. 당장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들에게 뒤지고 있다. 급한 불은 미·중 무역협상이다. 존 스톨츠퍼스 오펜하이머 애셋매니지먼트 수석 투자분석가는 “내년 2월 미 대선 프라이머리(예비선거)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무역합의를 이루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명분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백기투항이 아니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기 어렵다. 서둘러 중국에 양보한 것으로 비쳐지면 정치적으로는 되레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상 끌려가기보다 통화·금융으로 전선을 확대하며 판을 몰아붙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 경제는 지출 확대와 추가적인 감세, 금리인하 패키지로 단기처방하며 버틸 것으로 전망된다. 기세가 꺾인 미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신의 한 수’는 무엇이 될까.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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