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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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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허위정보인지 가짜뉴스에 대한 범위와 규정 명확지 않아

“사진과 경구가 있다고 인터넷에서 읽은 것을 모두 진짜로 믿으면 안 된다. -에이브러햄 링컨.” 인터넷에서는 유명한 사진 글이다. 사실 링컨이 저런 말을 했을 리 없다. 19세기엔 인터넷이 없었다. 역설이다. 이 사진 글은 정확히 ‘진짜로 믿으면 안 된다’는 그 형식을 따르고 있다. 가짜뉴스에 대한 풍자다.

8월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학생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고려대 입학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조국 촛불시위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아직 청문회도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가짜뉴스에 선동되어 열린 촛불시위”라고 비판하고 있다./이준헌 기자

8월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학생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고려대 입학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조국 촛불시위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아직 청문회도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가짜뉴스에 선동되어 열린 촛불시위”라고 비판하고 있다./이준헌 기자

‘가짜뉴스’라는 신조어 유행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여가 컸다. 미국 주류 언론들은 대선 과정에서 공화당의 유력후보로 떠오른 그의 자질과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들 앞에서 주류 언론의 보도에 대해 “그들은 가짜뉴스”라고 비난했다. ‘트럼프에 적대적인 언론=가짜뉴스’라는 그의 규정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언론들은 거의 80여년 전 대륙 건너편에서 거의 흡사한 주장을 편 집권세력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바로 나치다. 나치 정권의 선전상 괴벨스는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언론들에게 “가짜뉴스(Lugenpresse)”라는 딱지를 붙여 공격했다. 언론들은 트럼프의 사진에 히틀러의 콧수염을 붙이는 식으로 풍자했다.

트럼프 주류언론 공격하면서 확산

지난 미국 대선에서 최악의 ‘가짜뉴스’는 트럼프 지지자 그룹으로부터 나왔다. 2016년 10월 불거진 이른바 ‘피자 게이트’다.

위키리크스는 당시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인 힐러리의 선대본부장을 맡고 있던 존 포데스타의 e메일을 해킹해 공개했다. 방대한 분량의 e메일 가운데는 포데스타가 로비스트인 자신의 동생에게 ‘치즈피자(cheese pizza)’를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 치즈피자는 아동포르노(child porno)의 음어(둘 다 첫 글자가 c.p.로 같다)이며, 실제 그들이 저녁을 먹기로 한 워싱턴의 한 식당이 민주당 최고위층들과 연관된 아동 납치와 살해, 고문, 인신매매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루머는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에 잠깐 올라왔다가 삭제됐다. 그러나 몇몇 음모론자들은 이 식당 주인의 인스타그램을 뒤졌고, 몇 장의 사진들이 위와 같은 끔찍한 범죄가 은밀히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인터넷 페이크뉴스 사이트들을 통해 확대 재생산됐다. 보수성향의 유명 인사들이 “의혹은 규명되어야 한다”고 뒷받침하고 나섰다. 마침내 그해 12월 4일, 한 청년이 “납치된 아이를 구하겠다”며 레스토랑에 난입해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여러 주류 매체가 이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했지만, 트럼프 당선 이후에도 “피자 게이트는 가짜뉴스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집회가 백악관 앞에서 여러 차례 열렸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주류 언론을 공격하는 데 이 ‘가짜뉴스’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이후 개념은 더 확장되었다. 트럼프 진영에서 “언론은 틀렸고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며 유포시킨 말이 ‘대안적 진실(post-truth)’인데, 가짜뉴스는 이 ‘대안적 진실’을 포함해 뉴스 형식을 빌려 주류 언론 보도에 대한 불신을 담은 반박 주장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사진과 경구가 있다고 인터넷에서 읽은 것을 모두 진짜로 믿으면 안 된다.” (에이브러햄 링컨) 인터넷에 횡행하는 가짜뉴스 내지는 인용문에 대한 풍자 사진 글./경향자료

“사진과 경구가 있다고 인터넷에서 읽은 것을 모두 진짜로 믿으면 안 된다.” (에이브러햄 링컨) 인터넷에 횡행하는 가짜뉴스 내지는 인용문에 대한 풍자 사진 글./경향자료

이 경우도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세계 80개 언론단체·연구기관이 참여하는 비영리 단체 ‘퍼스트드래프트 뉴스’의 전략책임연구원을 맡고 있는 클레어 와들 박사는 가짜뉴스를 다시 셋으로 나눠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해를 끼칠 의도는 없지만 단순하게 틀린 정보(mis-information)’와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정보(dis-information)’, 그리고 ‘진짜 정보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유통하는 정보(mal-informatuon)’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검증 과정에서 가짜뉴스 논란이 벌어진 한국의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할까. 일단 현재 단독 경쟁을 벌이는 주류 언론 매체와 유튜브 등 인터넷 개인방송의 주장이 모두 ‘가짜뉴스’로 비판받고 있다. 여러 규정이 혼재된 양상이다.

“가짜뉴스 규정하기 쉽진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제기하는 의혹을 전부 다 가짜뉴스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가짜뉴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프레이밍이다. 가짜뉴스라고 하지만 팩트에 의견이 섞여 있는 복합적인 것이 많다. 민주당이 몇몇 체크포인트를 두고 가짜뉴스라고 이야기했는데 실제 가짜뉴스가 아닌 것이 태반이었다. 나중엔 가짜뉴스 주장 자체가 가짜뉴스였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팩트체크 언론사 뉴스톱 김준일 대표의 지적이다. 계속되는 그의 말이다. “팩트체크는 만능이 아니다. 너무 과도한 기대와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된다. ‘팩트체크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나’를 주제로 미국에서 여러 차례 연구조사가 이뤄졌는데 특히 사람들의 정치적 태도를 바꾸는 데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결과가 공통적으로 나왔다.”

특히 정치 영역에서는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한쪽으로 입장을 정하는 데는 팩트체크가 일정 역할을 하지만 특정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특정 신념을 가진 경우 자신에 반하는 팩트체크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반박하려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결론이었다.

조국 후보 검증국면에서 벌어진 논란도 비슷한 양상이다. 팩트체크 자체가 어느 한 편의 진영논리에 선 것으로 의심받는다. “오히려 팩트체크의 오·남용 문제를 제기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너도 나도 팩트체크라고 말하는데, 실제 팩트체크가 된 것이 맞느냐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팩트체크는 결국은 맥락의 문제다. 언론도 장기적으로는 맥락 저널리즘으로 가야 한다. 악의적인 시각에서 정보를 조작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팩트가 완벽하게 틀린 것은 없다. 다만 특정 맥락에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니 ‘그렇게 봐야 한다’든가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많다. 기존 저널리즘으로서는 ‘이런 것까지 기자가 해야 하느냐’고 반발할 수 있지만 이미 그런 식으로 언론환경이 바뀌었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학계에서도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그 범위나 규정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정해진 것이 없어 헌재에서도 엇갈린 판결이 나온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예컨대 미네르바 사건의 경우, 비록 틀린 정보라 하더라도 개인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의견을 규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기준으로는 허위정보를 가짜뉴스로 보고 규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어디까지를 허위정보로 봐야 하는지 관련 연구자들의 입장에서는 구분해내기가 가장 어려운 주제다.” 규제나 단속보다는 가짜뉴스를 판별할 수 있는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이나 증오·혐오선동 정보리스트 공유 등의 민간 차원의 대책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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